첼레스티노 5세 교황 Coelestin 5.

 224. 첼레스티노 5세 교황  Coelestin Ⅴ.  1294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의 원래 이름은 피에트로(Pietro del Murrone)였다. 그는 베네딕토회 회원이었으며, 은수자로서 살았다. 그리고 은수자 공동체를 창설하였다. 이 공동체는 나중에 베네딕토 수도회에 편입되었다. 첼레스티노 5세가 1294년 페루자에서 2년간 공위 기간을 거친 후 교황으로 선출될 당시 그는 이미 80세를 넘은 고령이었다. 그래서 교황직의 수락을 두고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294년 8월 29일 아퀼라(Aquila)에서 교황좌에 등극하였다.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은 신심이 매우 돈독한 인물이었으나, 교회의 통치자로서는 별다른 경험이 없었다. 그 결과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은 프랑스의 국왕 샤를 2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였으며, 샤를 2세 국왕은 교황 첼레스티노 5세의 로마 정주를 방해하였다. 아울러 교황 첼레스티노 5세에게 교황 그레고리오 10세가 반포한 바 있던 교황 선거 교령 – 그사이 이 교령은 그 효력을 중지당하고 있었다 -을 다시금 실시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이 로마로 정주지를 옮길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자 샤를 2세 국왕은 로마 대신 나폴리를 천거하였다.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은 자신의 직무 수행에 수반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실패 때문에 은퇴 문제를 고려하였다. 교황의 은퇴를 지지하는 추기경들과 상의한 결과,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은 1294년 12월 10일 자신의 은퇴 교령을 공표하였다.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은 자신의 은퇴와 관련해서 후임자 보니파시오 8세의 조언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후임자는 은수자 생활로 되돌아가고자 하였던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의 기대를 존중하지 않았다. 이 문제로 분열을 우려한 후임자 보니파시오 8세의 개입으로 – 교황의 은퇴에 대한 적법성을 둘러싸고 논의가 계속되었다 –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은 체포되어 1296년 5월 19일 서거할 때까지 구금 상태에서 지냈다. 교황 클레멘스 5세는 1313년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을 시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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