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 마르티노 5세 교황 Martin Ⅴ. 1417~1431
교황 마르티노 5세는 원래 이름이 오도(Odo Colonna)였고, 1386년경 로마 근교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부제 추기경으로서 1417년 11월 11일 약2년 반 동안이나 계속된 공위 기간을 거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교황으로 선출된 날의 성인의 이름에 따라 마르티노라는 이름을 선택하였다. 드디어 약 40년 만에 전체 교회가 인정하는 교황이 선출되었다. 교황 마르티노 5세는 피사의 공의회 준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교황 요한 23세와 함께 콘스탄츠 공의회에 참석하였으며, 그의 도피 여행 때 수행하기도 하였다, 교황 마르티노 5세는 교황 선출과 더불어 공의회를 주재하였다. 교회 개혁을 위한 노력은 여러 국가들과의 정교 조약의 체결로 결실을 보았다. 교황 마르티노 5세는 추기경의 숫자를 24명에서 26명 선을 제한하였다. 교황 마르티노 5세는 1423년 파비아에서 자기 공의회가 소집될 것이라는 사실을 공표하면서 1418년 4월 22일 콘스탄츠 공의회를 폐회하였다.
교황 마르티노 5세는 콘스탄츠를 떠나기 전에 교황을 거슬러 공의회에 제소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 금지로써 교황 마르티노 5세는 공의회가 교황보다 우위에 있다는 이른바 공의회 지상주의를 비난하였다.
교황 마르티노 5세가 로마에 입성하기까지 – 1420년 9월 28일 – 는 약 2년이나 걸렸다. 로마에 입성하기는 했으나 로마의 상황은 매우 비극적인 상태였다. 로마의 경당과 성전들은 물론 바티칸의 교황궁도 심하게 파괴된 상태에 있었다. 교황 마르티노 5세는 즉시 온갖 힘을 동원하여 복구 작업을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교회 국가가 처해 있던 상황은 더 비극적이었지만, 교황 마르티노 5세는 어렵게 질서를 잡아 갔다. 교회 내적으로 교황 마르티노 5세는 교회의 개혁을 지속적으로 진행시켰고, 그사이 분열로 인해 실추되었던 교황권의 회복을 위해 몰두하였다.
파비아의 공의회는 예정대로 1423년 3월 23일 개최되었으나, 교황에 대한 저대적인 분위기가 싹트기 전에 교황 마르티노 5세는 공의회의 장소를 시에나로 옮겼다. 하지만 교황 마르티노 5세는 1431년 새로운 공의회 장소로 바젤을 결정하였다. 교황 마르티노 5세는 소박하고 모범적인 생활을 보여 주었다. 특히 교회 국가의 조직을 재정비하는 데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교황 마르티노 5세를 제3의 교회 국가의 건설자로 평가하고 있다. 1431년 2월 20일 서거할 당시 교황 마르티노 5세는 자신의 후임자에게 질서 잡힌 교회 국가를 이양하였다. 교황 마르티노 5세의 묘비명은 그를 그 시대가 누린 행운으로 칭송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