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초기교회 교부들의 하느님
5.1 사도 교부
하느님은 한분이시다. 하느님은 모든 사물의 창조주이시며 아버지이시다라는 이론은 교회가 시작하면서 부터 근본적인 신앙으로 정착되었다. 유다이즘으부터 상속받은 유일신론은 우선 다신론적인 이교인들을 대항하여 자신을 방어하는 첫번째 것이었다. 마르치오니즘은 이원론을 주장하였다. 다시말해 그들 이단을 따르면 두가지 상반된 동등한 세력을 인정하고 있다. 하느님과 악의 세력이다. 이 밖에도 여러가지 이단들이 많이 있었다. 이 때까지만해도 그리스도교의 신학은 역사적인 시기로 보아서도 충분히 발전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부들로부터 수집될 수 있었전 것들은 극히 미미한 것이었다. 제 4대교황이었던 로마의 클레멘스(100년경)은 코린토 교회가 서로 싸우고 이단으로 갈리고, 내적 분열을 일으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같이 선언하였다“우리는 한분 하느님, 한분이신 그리스도, 그리고 한분이신 은총의 성령을 지니고 있지 않읍니까? 우리에게서 성령이 다른 곳으로 흘러버렸다는 것입니까?(코린토 교회에 보내는 편지, 42)”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하느님으로서의 정체와 서로간의 구별은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에 의해서 제시되었다(에페소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의 성전의 돌(주춧돌)로 하느님 아버지의 건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기중기, 즉 십자가에 의해 들어 올려지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있읍니다. 한편 성령은 여려분을 하나의 로프로 이용하고 있읍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여려분의 영을 감아 올리는 기계요, 여러분의 사랑은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도로가 됩니다.
5.2 호교시대의 교부들
호교론자들의 저서에는 어떤 애매모호성이 없을 수 없다. 왜냐하면 플라토니즘적 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스티노는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그리고 에언적 성령께 경배하고 흠숭을 드린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교의신앙은 예수를 하느님의 오직 한분이신 아드님, 하느님으로부터 낳음을 받으셨으며, 그 분의 말씀이시며, 첫 아들이심을 믿는데 그 근거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호교론 1권 6장, 23장). 성자의 출생은 하느님 의지로부터 이루어지고 조건 지워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자와 성부사이의 어떤 분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유스티누스는 다른 호교론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유일성을 옹호하고 보존하려는 것을 시도하고 있지 않다.
어떤 신학자도 이레네우스처럼 2세기의 사상을 권위있게 요약하고 있지 못하다. 그는 두가지 방향에서 하느님의 신비에 접근하고 있다. 하느님이 존재하는 내재적인 측면에서, 또 하나는 구원역사에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으로서.
역사안에서 드러내고 있는 것은 즉,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경향이다. 영원으로부터 상당히 활동적인 것이다. 특히 마르치오니스트의 이원론과 영지주의를 거슬러 투쟁하였다.이레네오는 ”오직 한분이신 하느님, 창조주가 계실 뿐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 한분이시고 창조주이신 하느님은 모든 것 위에 계시는 원리, 힘, 지배권, 덕행이시다. 그분은 아버지시며, 하느님이시며, 기초자요, 작업자요, 창조자이시다. 그분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이시다. 그분의 아들이신 그의 말씀을 통하여 그는 자신을 게시하고 드러낸다. 아들이야말로 그분을 알고 계시하는 유일한 분이다. 하느님은 단순히 모든 것의 창조주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은 모든 것을 선으로, 자비로, 인내와 지헤, 저의로써 다스리시고, 모든 것이 보기에 좋게 지탱하는 분이시다.
5.3 3세기경의 교부들: 테르뚤리아누스, 오리게네스, 로마의 디오니시우스
교회의 초기 신학자들의 관심거리는 여전히 하느님의 유일성과 일치였다. 교부들은 하느님의 하나이심에 대한 도전들이 가라앉자 창조와 구원과 화해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으이복수적인 표현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구원경륜적 삼위일체론- 이것은 하느님의 내재적 삼위일체론과 대칭되는 것으로 사용되어왔다. 이것은 영어의 economic 다시말해 집안 경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측정될 수 있는 것, 경험 될 수 있는것을 의미하며, 하느님의 내재적 삼위일체는 측량할 수 없는 내적인 것과 대비되는 것이다.) 그렇긴 해도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론 역시 그 자체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과거의 이론이 하느님을 만물의 창조주라고 할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역시 만물의 창조주 아버지와 동등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다.
테르뚤리아누스는 이 문제를 유비적이고, 성서적이고 인간학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첫째로 아버지와 아들은 동일한 유기체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유기체 그 자체는 분리될 수 없다. 그유기체의 힘은 하나이다. 둘째,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구별된다할 지라도 마음과 의지에 있어서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어떠 유비적인것 유사함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이 문제는 사유의문제로 남아있는데, 이 두가지는 모두 이미지, 상상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오리게네스는 3세기의 최고의 신학자였다. 그는 이 문제를 좀더 높은 수준에서 접근하고 있다. 당시의 플라톤적 사상을 빌려오고 있다. 오리게네스는 하느님은 한분이시다. 그러나 거기에는 로고스가 한분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유출되고, 그 한분이신 하느님에 참여하고 있다. 마치 하느님의 선서의 이미지로서. 성부는 하느님(the God)- 오리게네스는 오직 하느님 성부에게만 정관사를 사용하고 있다. 로고스는 the God이 아니다. 그는 단순히 God이다. 그에게 로고스는 플라톤적 개념으로서 유출과 참여로서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로고스는 두번째 계급으로서의 하느님이다. 플라톤의 사상을 따르면 유출된 것은 어떤 질이 삭감되는 것이다. 그처럼 유출된 하느님은 본래의 하느님보다 질이 떨어지는 어떤 존재가 된다. 불행하게도 오리게네스의 해결은 로고스가 조금도 덜하지 않은 신적 존재라는 교회의 신앙을 정당하게 해 주지 못했다. 최고의 도구로 생각했던 플란톤적 철학이 그 대답을 제대로 마련 해주지 못하였다. 어떻든 오리게네스의 이러한 시도가 비록 이단적인 아리우스의 해결법을 초래케 하였지만, 계속되는 신학적 연구의 길을 마련해 주었다. 아리우스는 본래 알렉산드리아으이 사제였다 그는 로고스가 하느님의 창조물이었다고 논증하였다 비록 완전하기는 했지만 창조물에 불과 했다는 것이었다. 로고스는 무로부터 생성되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그가 없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디오니시우스는 26번쩨 로마의 주교, 즉 교황이었다. 그는 삼우일체 문제 해결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한 당시의 신학자였다. 그가 교황으로 있을 때 이미 세가지의 이단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사벨리아니즘: 모달리즘이라고 하는 양태론자들이 있었고, 그들의 생각은 하느님이 한 인격으로서 세가지 상이한 역할을 상이한 기능을 따라 수행하였다는 것이다. 창조주로서, 구원자로서, 그리고 성화자로서. 두번째는 종속론이었다. Subordinationism은 하느님의 세 위격을 인정하면서 성자는 성부보다 덜한, 성령은 성자보다 덜한 신적 존재라는 것이다. 세번째로 삼신론(Tritheismo)이다. 이 이론은 하느님은 한 분이 아니라 세분이라는 것이다.
디오니시우스는 로마로 공의회(시노두스)를 소집하였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역시 디오니시우스였다. 마침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우스가 이단을 주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기 때문에 시노두스를 소집하였던 것이다. 디오니시우스 교황은 세가지 오류를 지적하며서 다음과같이 정리였다. 1. 한분의 전능하신 창조주가 게시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 즉, 바로 그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다. 3.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조주이신 성자는 아버지 이신 the God으로부터 구별되는 성자다. 디오니시우스 교황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정통 이론들의 이해와 토론의 한계를 분명히 하였다. 문제 해결과 설명을 위해 제시되는것은 무엇이든지 유지하려고 하였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