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아리아니즘과 니체아 공의회
교회 역사의 초기에 있어서 신학자들은 신앙의 신비를 세가지 방법 중에서 적어도 한가지 방법으로 대처해야 했다. 첫째는 그들은 신비를 제거하려 하였고, 모든것을 이성으로서 포착하려고 하였다. 두번째로 우리 인간은 그런 신비들을 깊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것으로서 더 이상 질문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손을 드는 것이었다(신앙주의 또는 비지성주의적 접근이라고 할 수있다). 셋째로 신비는 결코 해결될 수업슨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문제를 분명하게 하고, 어떤 커다란 이해의 기준에 도달하기를 희망하였다(이것은 정통적이고 많은 교부들이 시도했던 접근 방식이었다).
아리우스는 첫번째 방법을 추구하였다. 우리는 어떻게 우주 만물의 창조물보다 뛰어난 성자의 탁월함을 부인하지 않고 하느님의 유일성, 한분이심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인가? 간단하였다. 성자는 구원경륜에 있어서 그분의 현양된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분 역시 우리와 같은 창조물로 이해하는 것이다. 성자는 너와 나 보다 더한 어떤 신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아리우스의 시도는 시작에 있어서 경솔하였고, 결론에 있어서 무책임하였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있는 것은 못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지성은 어떻게 그리고 왜라는 질문을 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보는 사물의 인상(description)으로부터 그 사물 자체안에 그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규정을 얻고자 한다. 성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신 하느님의 활동으로서 창조적이고, 구원적이며, 성화적인 활동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위격들이 실제로 서로와 관련되고 있는가? 특별히 성자의 성부와의 관계는 어떤 특이함을 지니고 있는가? 우리가 성자를 성부와 완전히 동등한 분으로 강조할 때 과연 하느님이 한분이심을 실제로 보존할 수 있는가?
또 다른 한편으로 아리안 논쟁은 지성적인 논쟁이상의 어떤 것이 었다.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구원을 걸고 있는 매우 실제적인 문제에 봉착한 것이었다. 성서도 그리스도안에 우리의 구원이 걸려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성자가 하느님이 아니라면, 온전하게 전능하신 분이 아니라면, 신성에 있어서 성부와 동등한 위치가 아니라면, 더 이상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고 우리는 구원되지 못한다는 처지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성자가 우리와 같이 하나의 피조물이라면, 우리가 그의 피조물로서 그를 거스려 죄 짓게 된 창조주 하느님앞에 그는 더 이상 특별하게 나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이바지하는 그의 보상행위는 궁극적인 효과를 지니지 못한다.
325년 이런 그리스도교의 실존문제에 직면해서 소집하게 된것이 니체아공의회였다. 아니러니칼하게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 이 첫번 세계 공의회의가 소집되었다. 황제는 이 문제가 잘 해결되어 교회의 일치를 회복하기를 희망하였다. (여기엔 어떤 정치적인 배경도 없지 않다. 황제는 자신의 제국안에서 발생한 이 문제로 제국이 분열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 공의회는 아리안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주었다. “우리는 한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믿는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으로서 유형 무형의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한분이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아버지로부터 낳음을 받으셨으며, 바로 그분의 독생성자이시다”. 그로부터 이 신앙의 확언은 전통적인 것이 되었다. 따라서 아주 초기의 신앙고백, 성서적 형식처럼 전통적 가르침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아리우스가 정면으로 시비를 걸었던 문제에 대한 공의회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니체아 신경에서 보듯이, “ 오직 한분이신 주 예수 그릿도 모든 세대에 앞서 성부께로부터 나신 천주의 외아들이시며, 천주로부터 나신 천주시요, 빛으로부터 나신 빛이시요, 참 천주로부터 나신 참 천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일체이시며…” 이와같이 성자는 피조물처럼 성부의 의지로부터 유출된 것이 아니라. 성부의 본질로부터 나신 것이며, 그분의 출현은 다른 어떤 창조행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성자는 “창조되지 않고 나셨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하느님의 질서 밖에 있는 완전한 창조물이 아니다. 그는 하느님의 질서안에서 나신 분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질서 안에 머문다. 그분의 존재에 창조성이 끼어들지 못한다. 결국 그분은 하느님과 하나의 동일한 본질을 지닌다 (homoousios).
그러므로 니체아 공의회는 단순히 하느님의 실재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저의하고 있는 것이다. 성자는 누구인지, 성자는 하나이신 하느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것인지 규정하고 있다. 성자는 성부로부터 독특하고 다른 피조물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아들로 낳음을 받은 것이지 창조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자는 이름을 제외하고 아버지의 모든 것이다. 이것은 “존재함에 있어 하나” 또는 공동본질을 지닌 존재(homoousios)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성자란 무엇인가를 이야기 한 것이다. 이러한 공의회를 두고 어느 신학자가, 이것은 우리에게 성자가 누구냐 하는 개념으로부터 성자 자신에게 성자가 누구냐 하는 개념으로의 전향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말해서 소묘적이고, 상호 인격적이고, 역사적이며, 실존적인 양식에서 규정적이고, 설명적이며, 절대적이고, ontological 존재론적인 양식으로 전환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 양식의 변화가 공의회가 단언한 것의 의미를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유형에 있어서 니체아 공의회의 선언을 새로운 것으로 만든다.
니체아 신경에 도전하는 반대는 양 극단으로부터 나온다. 단순히 좌파적인 아리아니즘으로부터 뿐만이 아니라, 역시 우파적인 극단적 보수주의로부터도 문제가 발생하였다.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는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를 중심으로 한 일파들이었다.(에비오니즘). 그는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가로도 간주되고 있다. 이 일파들은 성서가 말하는 것 이상을 말하지 말자고 하는 견해를 지녔다. 성서에서는 성자가 성부와 모든 것에 있어서 homoios (like) 비슷하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와같은 견해는 다시 한번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61)의 정식안에서 나타난다. 그들의주장에 의하면, homoioousios 는 성서적 단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니체아 공의회의 정식은 신앙의 정식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에우세비안은 그다음세대의 전통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론적 이해(doctrinal understanding)의 진보, 발전의 가능성의 인식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fundamentalist들이었으며, 성서 중심주의자들이었다. 신앙의 진술는 결코 변화할 수 없다는 에우세비안의 특별한 과거(archaism) 재현을 위한 영향력은 반대의 경향을 불러 일으켰다. 예건대 어떤 신앙의 진술도 결코 종결될 수 없다(modernism).
니체아 공의회의 정식은 이 양극단을 피하고 있다. archaism을 거부하고 있다. 성자에 관련한 성서적 진술들은 새로운 이해양식 안에서 이항 내지 호환될 수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성서적인 것과 함께 구성요소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 mordernism을 거부하고 있다. 신앙의 이해에 있어서 “consubstantial (homoousios)“라는 개념은 최종적인 것으로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비에 대한 이해가 점점 더 성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편 니체아 공의회가 그 다음에 따라 오는 공의회, 예컨대 에페소 공의회, 칼체돈 공의회에 어떤 헌장의 역할을 제공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에페소 공의회와 칼체돈 공의회에서도 성서적 정식을 를 넘어서서 철학적인 사고 범주 안에서 그리스도의 본성과 위격을 다루고 그 것을 표현하고자 시도하는 것을 보게된다. 그리스도론의 논쟁은 칼체돈 공의회에서 종지부를 찍게되는 것을 보게된다.
니체아 공의회느 아타나시우스와 힐라리오의 노력으로 에우세비오(homoiousion파)들이 정통파(homoousion)들과 화해를 이룬다. 힐라리오는 그의 ”공의회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양편 모두가 옳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서로 상대현의 관련되고 있는 본질적인 정통성을 인식하는 일이 의무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니체아 정통파들은 신성안에서의 위격의 구별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실제적으로 homoiousion을 거부하지 않았다. homoiousion 파들은 만일 진지하게 본질적인 완전한 유사성(likeness)을 믿는다면 본질의일치성(homoousion)을 인정할 수 있었다. 362년 알렉산드리아의 공의회에서 그들은 서로 화해를 하였다. 거기서 에우세비안 파가 제시한 정식 “세 위격”을 단순히 삼위일체안에서 하느님의 세위격의 본질을구분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을 합법적으로 인정하였다. 여기서 새로운 정통적 정식이 생겨난다. ”하나의 본질 (ousia) 세 위격 (hypostases)”.
5.5 4세기 까빠도치아의 교부들: 바실리오, 닛싸의 그레고리오,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
이제는 단지 성령이 신성안에서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 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성령과 성부와의 관계, 성령과 성자의 관계가 문제가 되었다. 오리게네스의 시대에는 성령이 문제거리의 중심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문제로 등장하였다. 특히 에집트의 그리스도교인들 가운데 성령은 무로부터 존재가 유래된 하나의 창조물이라는, 성령의 신성을 부인하는 충돌하에 특별히 신학적인 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성령역시 성부와 성자와 동등한 신성을 지닌다는 주장이 아타나시오에 의해서 시작되면서 까빠도치아의 세 교부들(바실리오와 그의 형제였던 닛싸의 그레고리오, 그의 친구였던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정립하게 되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마찬가지로 갇은 영광과 흠승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바실리오 였다. 니싸의 그레고리오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의 세 위격이 서로 나누고 있는 본성이 하나임을 강조하였다.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는 성령은 성자와 마찬가지로 동일본질(homoousion: consubstantial)을 성부와 성자와 함께 지니고, 그 존재에 있어서 하나임을 주장하였다.(이러한 관점은 444년에 사망한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교부에 의해 더욱 발전 되었다). 바실리오에게 성령은 단순히 (성자가 성부로부터 낳음을 받은 것처럼) 낳음을 통해서서가 아니라, “성부의 입으로부터 내쉬는 숨으로부터” 출현하게 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는 요한복음이 말하고 있듯이, 성부로부터 단순히 “진행되어(proceed)(파견되어) 나왔다“고 보았다. 그런데 닛싸의 그레고리오는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왔으며 (out of God), 그리스도의 소유(of Christ)로 보았다. 성부는 원인을 지니지 않으며, 성자와 성신은 원인을 지니는 것이다. 성자는 직접적으로 성부로부터 나오게 되었으며, 성령은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어떤 종속적인 면을 찿을 수 없다는 것이다.(여기서 이단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서로 동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교부들의 저서에서 본질적인 하느님에 관한 이론은 하느님은 한분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세가지 존재 방법 또는 세가지 hypostases로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각 신적 Hypostases, 또는 각 위격은 신적 본질 ousia이라는 것이다. 이 위격들은 서로간의 그들의 관게에 의해서 구별될 뿐이다. 이 관계가 결정적이다. 다시말해 그 기원이 결정적이 관계를 이룬다. 성부는 낳음을 받지 않았다. 성자는 출생(generation)을 통해 낳음을 받으셨다는 사실이 서로 다르다. 성자는 성령과도 다른데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파견되었다.( is generated, -is spirated, or preceeds).
이 세 까빠도치아의 교부들의 삼위일체 신비에 관한 대표적인 사상을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의 표현에서 찿아 볼 수 있다.
” 표현의 차이, 또는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차이는 그들의 이름이 서로 다르다는 데 있다. 사실 그것은 성자에게 있어서 그의 존재가 아버지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어떤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아들됨은 어떤 결핍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뿐이다. 그런 식으로 논리를 따르면 어떤 결핍이 아버지에게 있다는 말이 될수 있다, 성부가 성자일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러나 그런의미가 아니다. 성부가 성자가 아니라는 것 뿐이고, 거기에는 어떠한 결핍 또는 본질의 종속적 관계에 의해서 기인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낳음을 받지 않으신 분을 첫번째로 아버지라는 이름을, 낳음을 받으신 분을 두번째로 성자라는 이름을, 그리고 파견되신 분을 세번째로 성령이라는 이름을 부를 뿐이다. 세위격의 구별은 하나의 본성, 하나의 신적 존엄성안에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성부는 성자가 아니다. 성부는 한분이시며, 오직 그분만이 아버지이신 그분이다. 성자는 성신이 아니다.낳음을 받으신 분은 오직 한분이시기 빼문이다. 그분은 아들로서 존재하는 그분이다. 이 세위격은 신성안에서 하나이며, 이 한분이신 하느님은 그 고유성에 있어서 셋이다…(The Fifth Theological Oration).
이러한 그리이스 교부들의 삼위일체 신비에 대한 접근은 나중에 다마스커스의 요한(749경 사망)에게서 요약되어 나타난다 (The Source of Kowledge).
5.6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과 로마 공의회(382)
이러한 후기 니체아적 신학은 공식적으로 두 공의회에서 승인을 받는다. 하나는 세계 공의회였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였으며, 다른 하나는 지역 공의회 였던 로마 공의회였다. 이때 로마제국은 둘로 나누어져 서방은 테오도시우스황제가 다스리고 있었고, 동방은 그라씨안 황제가 다스리고 있었다. 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150명의 주교들이 모여 니체아의 신앙을 다시한번 확인하였다.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던 Macedonians들을 거스려 그들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마찬가지로 동일본질을 지니고 있으며, 동일하게 영원성을 지닌다고 천명하였다. 여기서부터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나오게 되었다. 이때부터 카톨릭 교회는 매 주일 미사에 이 신경을 고백하게 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들이 이 신경을 작성한 것은 아니다. 이 주교들은 이미 니체아 공의회의 이론을 정식화 한것을 존중하여 받아들인 것이다.
다마소 교황(384)은 이 공의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가 이 공의회의 결정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는지에 관해서 역사적으로 분명하지가 않다. 어떻든 교황은 그 다음해 로마에서 공의회를 열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관해 그릇된 가르침을 가르치는자들을 거스려 단죄하였다. 로마공의회는 긍정적인 입장에서 한분 하느님, 세 위격을 이야기 하며 서로 동등하고, 공동으로 영원성을 지니고, 서로 구별되지만, 세분의 신으로 분리할 수 있는 구별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5.7 아우구스티누스
서방 교회는 아우구스티노가 출현하기까지 동방교회에 비견할 만한 박학한 신학자가 없었다고 본다. 물론 이레네우스나 테르뚤리아노, 힐라리오같은 교부들이 괄목한 만한 업적을 남긴 것도 사실이지만.신플라토니즘은 교회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무런 문제없이 한분이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동일본질을 이루는 동시에 구별되는 하느님이심을 받아들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consubstantial이라는 표현보다 co-essential이라는 표현을 선호했다. 의미롭게도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는 이런 이론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어디 곳에서도 찿아볼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관점에서 성서가 선포한 것을 계시의 자료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그의 관심은 증명이 아니라 이해였다.우리는 그의 이런 기본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credo ut intelligam)라고 고백하는 사실에서 잘 볼 수 있다.
동방교부들과는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역사안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수행한 기능으로서 세위격에 대해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하느님의 유일성, 일치성으로부터 다룬다. 하나인 신 본성 그 자체로 시작해서 어떻게 세 위격이 그 하나의 신본성을 갈림없이 공유하고 있느냐하는 것을 이해하고자 시도했다. 그는 어떤 종속론의 형태도 거부하였다. 하느님에 관한 어떤 진술도 바로 동등하게 세 위격에 대한 진술로 이해했다. “성부는 성자보다 신성의 관점에 있어서 더 위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성부와 성자는 성령보다도 더 위대하지도 않다. 어떤 위격도 세위격의 하느님 전체보다도 더 작은 것도 아니다”. 그와같이 우리는 여기서 구분하는 세 위격을 마치 인간존재를 셋으로 구분하듯이 분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본다. 거기에 세가지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의지가 있다고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렇다고 세위격의 여러가지 역할을 파괴하고 있다(마치 모달리즘에 떨어진 것으로 보는)는 이견을 거스려서, 그는 비록 성자가 그를 낳으신 성부가 아니며, 성자는 수난받고 죽으셨다고 주장하는 것을 본다.성부는 육화, 수난, 그리고 부활에 있어서 성자와 전적으로 함께 협력하셨다고 말한다. 다만 성자는 각각의 신적 위격들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적 본성을 성부의 외적 작용안에서 가짓적인 것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지니고 있으며, 그 기원은 항상 성부께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세 위격은 모든 외적 행위안에서 하나로서 연루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이론에 원천적으로 공헌한 아우구스타누스의 한가지 업적은 그의 “실제적”(real) 또는 “본질적 관계”(subsistent relations)라는 개념이다. 안셀모의 가르침이나 플로렌스 공의회에 앞서서 “삼위 안에서 삼위가 관계상 서로 대응하고 있다는 이유로 상이할뿐 그 이외에는 모두가 하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낳음을 받지 않으신 분이 성부요, 그는 낳음을 받으신 분인 성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리우스파가 신성안에서 본질적인 것뿐만(거기에 세분의 신이 계시다는 주장)아니라, 우연적인, 비본질적인 것(하느님은 순전히 단순하지 않다는 주장)에서도 세위격이 구별된다고 하는 이해를 반대하고 있다. 성부, 성자, 성신 누구도 서로 다른 위격과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안에 셋이라는 것은 본질이나 또는 우연적인 것에서 셋이라는 데 근거하지 않고, 관계에 있어서 셋이라는 것이다. 낳음을 받지 않고, 낳음을 받으시고, 진행되어 나오는 관계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초적인 삼위일체론에 대한 공헌은 하느님의 내재적 삶에 대한 설명을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유출하여 이끌어 낸점이다.(이것은 그의 논증이 따르기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는 오늘날 전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인식괒엉에는 세가지 구별되는 요소가 있다. 외적 대상, 그 대상을 재연하는 마음의 감수성, 그리고 마음의 촛점을 두는 행위가 있다. 외적 대상이 움직일 때, 우리는 높은 삼위일체의 수준으로 올려지는 것이다. 처음 상태보다 더 높이 오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과정은 전적으로 지금 마음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그리고 같은 주체안에”, 다시말해서 기억적 인상, 내적 기억의 이미지, 그리고 의지의 촛점에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저서 「삼위일체」에서 이 세가지 상태에 대해 길게 유추하고 있다. (1) 마음, 그 자체의 그의 지식, 자체의 그의 사랑 (2)기억 또는 그 자신의 마음의 잠재적 지식, 그 자신의 이해와 사랑, (3) 하느님을 기억하고 알고 사랑하는 것으로서의 마음.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지막 이 세가지 유추를 대단히 만족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마음이 기억가 이해와 사랑의 모든 능력과 더불어 그 창조주에 대해서 그 자체에 촛점을 맞추고 있을 때, 하느님을 지탱하는 이미지는 완전히 회복될 수 있다. “거기엔 기억, 이해, 그리고 의지 셋이 있다. 그러므로 셋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삶이 있다. 마음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마음이 있다. 따라서 세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주체가 있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은 이러한 유추적인 접근의 한계에 대해서 현실적이다. 유추라는 것은 항상 절름발이이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사물들이 다른 사물들과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에게 동시에 더떤 사물의 존재가 다른 사물들과 역시 같지 않다는 점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게 해 준다. 그와같이 인간 의식의 작용들은 삼위일체의 내재적 작용과 동일시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기억하는 것, 이해하는 것,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서 나눌 수 있는 세가지 능력이다. 신성안에서는 능력들이 구별되지 않는다. 하느님은 절대적으로 하나이시다. 더우기 인간의 마음안에서 이 세가지 능력들은 독립적으로 작용한다. 하느님 안에서 모든 행위와 작용들은 불가분의 것이다. 게다가 하느님의 신성에는 왜 두가지의 진행(낳음)이 있는데 세 위격이 있는가 질문될 수 있다.
결국 이것은 신비로 남는다. 성서와 그리스도교의 이론은 하느님을 세 위격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와 그리스도교 이론은 역시 강력하게 하느님의 유일성에 대해서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에 영향을 준 아우구스틴의 이론은 확실히 거대한 것이다. 보에티우스는 인격(person)을 이성적 본성의 개체적 주체라고 정의하였다. 후세기에 와서 아무도 아우구스티누스와 비교할 만한 신학자는 없다. 그의 접근의 직접적인 효과는 역시 고려해 볼만한 것이었다. 삼위일체 신앙의 고전적 언명이 뚜렷한 소위 5세기의 아타나시오 신경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취가 서려있다. 그것이 아타나시오에 의한 것으로 여겨졌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은 역시 11차 톨레도 공의회(675)에도, 아타나시오 신경에서 처럼 잘 드러나고 있다. 하느님은 한분이시며 또한 세위격의 하느님이시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의 사앗아이 신앙고백에 잘 드러나고 있다.
5.8 캔터베리의 안셀모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사이에 가장 독특하고 중요한 신학자는 안셀모 성인이다. 그리스도교적 하느님 이해에 안셀모 성인이 공헌한 것은 적어도 세가지다.첫째는 소위 말하는 하느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논증”이다. 둘째는 빚-보속이라는 보상이론이다. 셋째는 하느님에게 있어서 세 위격 사이의 관계적 위치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외에는 모든 것이 하나라는 원칙이다. 첫번째 점에 대해서 안셀모는 하느님은 더 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만일 마음안에서 또는 이해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만 한다면, 실제적 실존은 더 이상 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상의 것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큰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엔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이상의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상상이나 또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논증은 후에 아퀴나스와 칸트에 의해서 거부되었다. 마음이나 상상의 질서안에서 진실인 것은 반드시 실제의 질서안에서 실제일수는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 점에 대해서 안셀모는 아담의 죄는 오직 충분한 댓가(보속)를 성부께 드려야만 용서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죄로 초래된 부채를 합당하게 해결할 수 있는 자는 단지 신적존재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의 우정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하느님은 인간이 되셔야 했다.
세번째 점에 대해서 안셀모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전승을 따라서 하느님은 세 위격간의 관계에 있어서 자리하고 있는 위치상 복수적인 위격으로 구분되었다는 점 이외에는 절대적으로 한분이시라는 점을 주장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은 한분이신 하느님이시다. 단지 하느님은 낳음을 받지 않으셨으며, 성자는 낳음을 받으셨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 부터 내 불어졌다는 것이다. 신적 위격간의 상호 거주에 대한 이론을 위한 신학적 기초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성부는 항상 성자와 성령안에 계신다. 성자는 항상 성부와 성령안에 계신다. 성령은 항상 성부와 성자안에 계신다. 이러한 상호교환적 거주는 역시 circumincession (지속적순환)으로 알려지고 있다. 플로렌스 공의회(1442)는 ”야고버파를 위한 선언“이라는 데서 이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성부는 홀로 당신의 주체밖으로 성자를 낳았으며, 성자는 홀로 성부로 부터 낳음을 받았으며, 성령은 홀로 성부와 성자 양편으로부터 진행되어 나온다“. 이 세 위격은 한분이신 하느님이며 세 신이 아니다. 이 세 위격에게는 하나의 주체, 하나의 본질, 하나의 본성, 하나의 신성, 하나의 무한성, 하나의 영원성을 지니며, 그 위격안에 모든 것은 관계에 있어서 서로 대치하고 있는 곳이 아닌 곳에서는 항상 하나다.
마지막으로 보아야 할 것은 안셀모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의 신비가 인간 지성의 모든 비젼을 초월하는 것, 즉 ” 그렇게 숭고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런 존재들이 어떻게 있는가 설명하려는 시도를 삼가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안셀모에게 하느님이 계시다는 지식안에서 안전하게 되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성의 모순 없이” 있다는 것이다. 신학을 위해 이해하고자 하는 신학을 추구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