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적 하느님 이해-칼 라너의 초월신학적 하느님 이해(중)

 

마레샬은 신(新) 스콜라 철학계에서 처음으로 20년대에 칸트의 초월적 방법을 긍정적으로 원용하여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을 해석하였다.1) 하지만 그는 칸트의 입장을 일부 수정하려고 시도하였다. 그에 의하면 칸트는 인식과정의 가능성의 모든 조건들을 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마레샬은 인식의 개별적 질료대상(質料對象, objectum materiale)이 인식될 수 있게 하는 지평(地平)으로서의 ‘형식대상’(形式對象, objectum formale)에 관한 토마스-스콜라 신학의 학설이 ‘선험적인 것’의 통찰을 포함하고 있어서 이 통찰 역시 개별적 대상인식의 가능성의 조건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2) 그래서 마레샬에게서는 초월적인 것의 수평적 방향만을 인정하는 칸트와는 달리 초월적인 것의 수직적 방향을 아울러 인정하여 신인식(神認識)이 가능하다.


라너는 칸트-마레샬 노선에서 정립된 초월적 방법에 의거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 사상을 주석하였다.3) 토마스가 말하는 ‘감관적 대상에로의 정신의 정향’은 모든 인간 인식은 유한하고 감관적 직관에 의존하며, 감성이란 정신에 의해 작용된 정신자신의 수용성이라고 하는 칸트의 통찰에 해당한다고 라너는 간주하였다. 그래서 인식대상을 초월하는 정신의 초월능력으로서의 전취(前取, Vorgriff)가 대상인식의 가능성의 조건으로 규정된 것이다. 그리고 라너는 이 초월적 방법을 적용하여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을 이룩하고자 시도한 것이다.4)


라너에 의해 사용되는 ‘초월적’(traszendental)이란 표현이 칸트의 의미에서의 ‘초월적’ 개념과 반드시 부합되지는 않는다. 라너는 이 표현을 거의 통속적 의미로 사용한다.5) 일반적으로 ‘초월적’이란 말은 ‘넘어서다’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동사 ‘transcendere’에서 유래하는 말로서 경험적인 역사 세계를 넘어서는 실재에로 초역사적(超歷史的)이고 선험적(先驗的)으로 모든 인간 안에 필연적이고 불가피하게 정초되어 있는 약동적 정향성을 뜻한다. 선험적인 것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 구체적으로 친교를 맺고 접촉하게 되면서 비로소 터득하게 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이러한 친교와 접촉 이전에 앞서 있는 어떤 것을 뜻한다.


인간이 세계 안에서 하게 되는 체험 일반은 하나의 ‘후험적’(後驗的) 지식이고 인식이며 체험이다. 라너에게서 인간이 살고 생각하며 행동하게 되는 구체적 세계 일반을 ‘범주적’(範疇的, kategorial)이라고 지칭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친교를 맺고 접촉하게 되는 사람이나 사물들은 라너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범주적 실재’들이다. ‘범주적’이라는 말은 구체적이고 경험적이며, 시공간적 실재로서의 인간과 세상사물을 뜻한다. 그런데 그에게서 ‘범주적’이란 인간에게 소여되어 있는 일차적 실재로서의 사람이나 사물들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 안에서 이룩한 대상화되고 객관화된 역사적 행위도 아울러 지칭한다. 사랑과 신의, 그리고 감사와 같은 내적 처신이 외면화됨으로써 ‘대상화’와 ‘객관화’를 이룩할 때에, ‘범주적 실재’가 된다는 것이다.


라너에 따르면 ‘선험적인 것’의 실상을 규명하는 것이 ‘초월적 방법’의 목표설정이다. 초기 종교철학자로서의 라너가 사물적 대상인식의 가능성의 조건 규명에 치중했던 데 비해서 후기 신학자로서의 라너는 사물뿐 아니라 사물화되어서는 안되는 인간인식을 포함하는 일체의 주체행위의 가능성의 조건을 인간과 인간역사의 자기 해석 속에서 구명하고 있다. 그래서 라너는 초월적 방법이란 한 특정한 대상과의 상호연관 내지 조건관계 등을 구명하는 원리라고 그 나름대로의 일반적 정의를 내린다.6) 여하한 인식 본질상 하나의 인식대상에 대한 질문은 곧 인식주체인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이기도 한데, 이는 모든 인식이 대상의 특성에 의해서뿐만이 아니라 인식주체의 본질구조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 라너의 초월신학의 일반적 취지의 맥락 안에서 그의 신규정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다. 인간을 ‘세계내 정신’(Geist in Welt) 또는 ‘하느님 지향의 초월자’ 등으로 규정하면서 하느님이 인간의 심층적 내적 소인임을 제시하고 있다.


라너는 인간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던져진 세계내 존재자라는 철학적 통찰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 세계에 피투된 존재이지만 다른ㅇ 존재자들처럼 단순히 현전(現前, vorhanden-sein)하지만 않고 현존(현존, da-sein)한다는 사실을 존재일반에 대한 질문(Frage nach dem Sein überhaupt)을 제기하는 현상으로부터 제시한다. 존재일반에 대한 질문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성취하게 되는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 속에서 표출된다. 라너는 질문자가 감성적으로 체험된 대상으로부터 분리하여 대치하는 가운데 주체로서 자기자신에게로 귀환하는 것을 토마스 아퀴나스의 표현을 원용하여 ‘주체의 완전귀환’(reditio completa in seipsum; Insichständigkeit des Subjekts)이라고 지칭하면서 여기서 정신성을 대한다.7)


이러한 인지적 ‘주체의 완전귀환’ 과정은 현실적으로 모든 판단(判斷, das Urteil) 속에서 생긴다.8) 존재일반에 대한 질문 자체가 인간의 모든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 속에서 발생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형식적 판단이다. 판단 속에서 감성 속에 소여된 개별적 사상을 개념화하는, 즉 특수한 실재 속에서 일반적인 것을 파악하는 일이 발생한다. 개별적이고 특수한 시재로부터 일반적인 것을 파악하는 것은 추상(抽象, Abstraktion)을 통해서 이루어진다.9) 이 추상능력을 지성이 소유한다. 지성이 감각에 소여된 개별 실재로부터 일반적 형식(形式, Form)을 추상해낸다. 여기서 존재질문 제기의 가능성의 조건을 규명하는 일이 지성의 본질에 대한 물음의 규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10)


어떠한 실재의 한계는 사실상 인식자가 그 한계를 넘어섰을 때에만 비로소 인식할 수 있다. 이거은 감성을 통해서 제한된 개별대상의 하성(何性, quidditas: Washeit)의 한계성 인식에도 해당된다. 감성 속에서 체험된 하성의 제한성이 감각적으로 소여된 개별사물 속에서 인식되려면, 이 개별사물을 파악하는 행위가 이 사물의 한계를 넘어서 ‘보다 많은 것’(das Mehr)을 지향해야만 가능하다.11) 라너는 감성 속에서 구체적으로 소여되어 있는 형식을 제한된 것으로 파악하고 추상하는 가능성을 ‘전취’(前取, Vorgriff)라고 부른다.12) 전취는 말하자면 인간이 세계 안에서 만나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개별 대상을 유한한 것으로 파악하고 이 개별 대상의 하성(何性)을 추상해내는 지성적 가능성이다. 라너는 이 전취 속에서 지성의 본질을 보고 있다. 이 전취가 개별사물을 능가하여 지향하는 ‘보다 많은 것’은 개별사물과 같은 유형의 대상일 수는 없고, 인식될 수 있는 개별대상들의 절대폭(絶對幅, Absolute Weite)이라고 라너는 지칭한다.13) 개별대상은 이 절대폭을 채우지 못하는 속에서 제한된 실재로 인식된다. 그리고 개별대상이 제한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한, 그것의 하성적(何性的) 규정이 추상화된다.14) 라너에 의하면 전취가 개별대상의 인식을 가능케 하는 지평을 의식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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