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1. 말씀읽기: 루카9,22-27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다 (마태 16,21-23 ; 마르 8,31-33)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마태 16,24-28 ; 마르 8,34)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곳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요? 당신의 죽음을 말해야 하는 스승의 마음. 제자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당신은 배려하시지만 제자들은 어떻게 들었을까요? 당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했을까요?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당신의 마음은 어떠하셨는지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인자, 곧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인자”는 하늘에 살다가 종말에 세상을 심판하러 내려올 초월적 존재이며 종말론적 심판관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내려오신 분이요, 우리를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인간의 몸을 지니셨기에 당신의 인성이 받아야 하는 고통과 비허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말씀이었습니다.
당신은 유다의 권력자들에게 버림을 받고 죽게 되시지만, 그것으로써 비로소 구원의 신비는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이 슬퍼할 것을 알고 계셨기에 당신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미리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뿔뿔이 흩어진 것을 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수난과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세상 쪽으로 기울어져가는 나를 버리고 예수님께로 향할 때, 나는 부활의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만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만 부활을 맛볼 수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당신을 따르는 이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 두 가지.
하나는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니.
둘 중의 하나라도 해보고 싶지만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어찌할까? 내 처지를,
어찌할까? 내 마음을…
신앙인은 죽어야 삽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내 안의 불의를 죽여야 합니다. 성령께서 나를 이끄시게 하기 위해서는 악으로 기울어져가는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나를 통해서 역사하실 수 있고, 그래야 구원의 도구가 되어 하느님 나라를 전할 수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후손인 우리들. 우리가 받은 신앙은 피로써 물려받은 신앙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시며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비록 현세에서는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것이 영원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굳게 믿고 있던 그분들은 박해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가끔은 어려움에 처하면 “아닌 것처럼 ” 행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죽기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죽기까지…
성인들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순교자들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열심한 신앙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나를 버리고, 유혹에 빠져드는 나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만을 바라볼 수 있고, 잘 죽을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제자들은 이름조차도 알려지지 않았는데, 역사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첫 제자는 베르나르도입니다. 베르나르도는 귀족이었는데, 프란치스코의 회개생활을 멀리서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베르나르도는 처음에는 프란치스코의 회개와 성당 보수를 새로 시작한 광기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프라치스코의 생활을 보면서 베르나르도의 의심은 존경심으로, 의아심은 감동으로 바뀌었습니다.
베르나르도는 훌륭한 시민이었고, 영혼의 불꽃이 타오르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프란치스코를 따르고자 하는 결심이 무르익어갔습니다. 프란치스코처럼 가난해지고 싶었고, 프란치스코처럼 옷을 입고 싶었고, 프란치스코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베르나라도는 프란치스코에게 자신을 내맡기기 전에 프란치스코의 신심이 참된 것인지를 시험해보았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여러 차례 자기 집에 와서 묶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 당시 프란치스코는 숙소가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기꺼이 이 초대를 받아들였습니다. 어느날 저녁 베르나르도는 자기 침실로 프란치스코를 맞아들였습니다. 당시 상류 집안에서는 밤새도록 침실에 등불을 켜 놓은 것이 관습이었으므로 등불은 밤새 켜 있었습니다.
성프란치스코는 그의 성덕을 감추기 위해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자는 척 했습니다. 잠시 후 베르나르도도 들어와서 똑같이 자는 척 하고 깊은 잠이 든 것처럼 코를 크게 골았습니다. 성프란치스코는 베르나르도가 정말 자는 줄 알고 침대에서 일어나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두 눈과 두 팔을 하늘을 향해 올리고 뜨거운 열정과 신심으로 외쳤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시여!” 그는 아침이 될 때까지 기도하면서 몹시 울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시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베르나르도는 보았습니다. 새벽이 되자 베르나르도는 프란치스코를 끝까지 따를 결심을 하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재산을 관리하도록 주인에게서 재산을 받았습니다. 여러 해 동안 그 재산을 관리 해 왔는데 이제 그 일을 그만하고 싶어졌습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제일 잘 하는 것일까요?”
프란치스코는 “재산을 받은 주인에게 되돌려 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베르나르도는 “형제님, 그런데 그게 나의 일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은 다 나의 하느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이제 다시 되돌려 드리고 싶은데 당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처리하고 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프란치스코는 “내일 아침 성당에 가서 복음서를 펴고 주님이 당신 제자들에게 뭐라고 하셨는지 읽어 봅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성당에 들어가서 함께 기도한 후, 프란치스코가 제대에 올라가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펼쳤더니,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 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는 말씀과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돈도 여행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는 구절을 그들 앞에 펼쳐졌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이것이 그대들의 삶이고, 우리의 회칙입니다. 우리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회칙입니다. 이제 가서 지금 우리가 들은 대로 실행합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개인적인, 이 세상에 속한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만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생활태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모든 시련을 참아 내며, 하느님과 함께 살기 위하여 세상에 얽매이는 마음을 죽인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미 율법의 손에 죽어서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위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은 망할 것이요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이 말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단호해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 말씀은 맞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랑 저희랑 좀 다르지 않습니까? 좀 봐주시면 좋겠는데요. 사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가 할 말 하나도 없는 것 아시죠?
절 죽여야 하겠지요?
어떻게 죽여야 할까요. 미운형제 떡 하나 더 주고, 꼴 보기 싫은 사람에게 상냥한 미소를 날려야 하겠지요. 만나기 싫은 사람 밥 한 끼 더 사주고, 두들겨 패고 싶은 사람 이해하고 예뻐해 줘야 합니다.
아이고~~넘 힘듭니다.
그런데 자존심 상하고 치사하지만 해야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그들을 사랑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지요. 다시 살고 싶으면 말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건 너무 고통스럽고 어렵습니다.
– “지나가는 나그네의 묵상 글 인용 –
자기의 개인적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은 비록 그 이익을 얻을 지언정 하느님 나라에는 망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는 자는 비록 세상에서는 목숨을 잃을 지언정 하느님 나라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해야 되는 것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래서 비록 세상에서 순교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이득이라는 것입니다.
바쁘다고 성당 안 다니는 사람들. 시험이라고 성당 안 오는 학생들. 고3이라고 성당 멀리하는 학생들. 비록 그들이 세상 안에서 출세를 하고 부를 쌓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느님 나라에서까지 통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성당 다닌다고 해서 가난해 지는 것도 아니고, 시험 때 미사 나온다고 해서 성적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며, 고3 때 미사에 참례했다고 해서 대학 못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인격과 가르침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버린다면 심판 날 사람의 아들에게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때 심판자로서 우리 앞에 서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자기를 버리고 세속에 대해서는 죽어야만 합니다.
내가 죽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다른 이를 앞에서 당당하게 신앙인임을 고백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 식사할 때 당당하게 성호경을 긋는 것.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의 청을 외면하지 않는 것. 핑계를 대면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곳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지금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서로 이해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서로 용서하고 끌어 안아주는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나는 하느님의 나라를 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보는 것 뿐만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예수님의 수난을 예고하실 때의 마음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제자들의 마음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서로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2.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시는데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3.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인격과 가르침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버린다면 심판 날 사람의 아들에게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때 심판자로서 우리 앞에 서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자기를 버리고 세속에 대해서는 죽어야만 합니다. 내가 죽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다른 이를 앞에서 당당하게 신앙인임을 고백하는 것. 다른 사람들과 식사할 때 당당하게 성호경을 긋는 것.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의 청을 외면하지 않는 것. 핑계를 대면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어려움은 어떤 것입니까? “이것만은 하기 싫다고 생각되는 것”을 이야기해 봅시다.
4. “온 세상을 벌어들인다 해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손해를 본다면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는 말씀하시는데, 세상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내가 하느님 나라에도 가지고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