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속에 나타나는 삼위일체

1. 구약성서
구약성서에서는 직접적인 삼위일체에 관한 설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구약에서는 유일신 야훼에 대한 신앙을 강조했습니다.(신명 6, 4; 32, 39)
그러나 하느님께 대한 구별된 위격들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거나 그 계시를 준비하는 구절이 몇 가지 나옵니다. 예를 들면 하느님을 복수 대명사로 표현한 창세 1, 26의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라든가 하느님의 신성을 구별하는 “지혜, 말씀, 영”이라는 특정한 칭호들이 그것입니다.

2. 신약성서
신약성서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삼위일체에 대한 신비가 계시됩니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몇가지 예를 찾아 봅시다.
1) 예수 탠생예고의 순간에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루가 1, 35)라고 성삼위에 대한 신비를 표현했습니다.
2) 예수의 세례기록을 보면 “····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그에게 내려 오셨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너는 내 사랑하는, 내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루가 3, 21-22)라고 삼위일체가 동시에 현존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예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를 명하실 때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드로가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9-20)라고 성삼위의 위격을 말씀하십니다.
4) 최후의 만찬 때도 성삼위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계시하십니다. 요한 14, 1-17절을 함께 읽어보실까요?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을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가 ‘주님, 저희느 주님이 어디로 가시느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려주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하고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르 ㄹ모른다는 말이냐? 나르 ㄹ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니 무슨 말이냐?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 께서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일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제 아버지께 가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 줄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 세상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사시며,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5)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원역사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하신 하느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사랑으로 일치하여 계시며, 같은 속성을 지닌 하느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는 인간 상호간에 또 인간과 하느님간에 사람을 신비체를 이루도록 마련해 주셨습니다.(요한 17, 10-23)
6)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한에 머물러 있어라.’(요한 15, 9) 하시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서로 구별되면서도 사랑으로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계심을 가르치셨고, 우리도 하느님 안에 일치를 이루도록 마련해 주셨습니다. 사랑안에 일치야 말로 삼위일체의 신비를 깨닫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지름길입니다.
크리스챤은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의 용서를 받으며,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어려운 삼위일체의 계시진리는 지성으로는 알아 듣기어렵고 다만 신앙의 은총으로 믿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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