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성월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5월은 교회에서 성모님께 바쳐진 시기이다. 장미꽃 향기가 가득한 이 한달 동안 교회는 특별히 모든 신자들이 성모님께 공경을 드리며 그분의 신앙의 모범을 본받아 그분께 전구와 은총을 청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5월 성모성월을 맞아 구세주의 어머니이시며 모든 인류의 자애로운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 우리의 마음을 모아 기도를 드리며 성모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1.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1) 5월 성모성월의 선포
교회가 5월을 성모성월로 확정한 것은 1921년 교황 베네딕도 15세가 성모 마리아를 ‘모든 은총의 중개자’로 선포하면서 5월을 성모성월로 공식 인준한 것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와 비슷한 성모공경 예절은 이미 1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고 교황 비오 7세와 바오로 6세도 성모공경을 권장하였다.
교회는 특정한 달을 정해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성인들께 봉헌하면서 그분들께 특별한 은총을 청하고 신앙의 모범을 따르도록 성월을 정해 놓았다.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5월을 성모성월로 정한 것은 성모 마리아가 구세사에 있어서 차지하는 위치와 하느님께 순명한 그분의 신앙의 모범을 신자들이 따르도록 권고하는 의미를 지닌다.
성모성월에 모둔 신자들이 기려야 할 뜻은 하느님께서 동정 마리아를 통해 인간의 역사에 들어오시어 당신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셨으며 이는 바로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루가 1,38)라고 응답했던 마리아의 자유스러운 응답으로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믿음의 본보기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 신자들은 성모성월을 맞아 일상적인 성모공경 이외에 그분의 삶과 덕을 묵상하며 은혜를 간구하는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2)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성서를 보면 구약성서에는 마리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찾아볼 수 없고, 신약성서에서도 마리아에 대한 언급은 짤막하고 매우 드물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성서를 통해 ‘역사적인 마리아’를 알아내기는 매우 힘들며 다만 하느님의 구원 계획 속에 나타난 마리아의 모습과 그분의 위치를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성서에서의 마리아는 복음 선포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그분의 어머니로서 언급되고 있으며, 또한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고 그분을 따르는 참된 신앙인의 모범으로 제시되고 있다.
마리아에 관해 선포된 교회의 교의는 평생 동정이시며 하느님의 모친이신 마리아. 또한 원죄에 물들지 않았으며 사망 후 승천했다는 것이다.
①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루가복음과 마태오복음의 성서적인 근거에 따라(루가 1,34; 마태 1,20-25)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잉태를 정통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어 나시고…”. 동정녀 잉태와 탄생은 그리스도로 인한 하느님의 구원 행위가 인간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능에서 나오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마리아는 평생 동정으로 지냈다는 전통이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공인되었으며, 이러한 교회의 신앙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53년) 때 신조(信條) 안에 ‘영원한 동정’이라는 표현으로 삽입되었다.
②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오랜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문들은 한결같이 마리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선포하고 있다. ‘하느님의 어머니’(θεοτοκος, Theotokos)라는 칭호는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교의로 선포되었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이었다. 이 교의는 이후 칼체돈 공의회 등을 거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재확인되었다.
이 칭호는 성자와 마리아의 밀접한 관계에서 연유되고 있다. 마리아가 출산한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성부와 동일한 신성을 지닌 만큼 예수를 낳으신 마리아는 바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교회의 신앙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③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무염시태)
첫 인간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간은 누구나 원죄의 멍에를 지니고 있지만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루가 1,28)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존되었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마리아 역시 여느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인간이지만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공로와 하느님의 은총으로 무죄성(無罪性)의 특권을 지니게 된다. 마리아는 구세주의 모친으로서 그리스도께 완전히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④ 마리아의 승천
마리아의 승천에 관한 교의는 아들 성자의 영광과 어머니의 현양,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기쁨을 표현한다.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고 8월 15일을 축일로 선포하였다.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지금 이미 그리스도의 부활과 천상의 영광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승천은 마리아가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의 예형이요 모범으로서 죽음을 극복했음을 의미한다.
3) 마리아 공경과 성모신심행위들
가톨릭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어머니인 거룩한 동정녀를 존경하고 그분께 자녀다운 사랑을 드리며 성자께 전구(轉求)하여 주시기를 청하고 그 덕행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마리아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으로서 공경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성모공경은 이미 2세기부터 시작돼 4-5세기경 동방교회에서 마리아 축일이 제정되어 전례적인 공경이 시작되었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마리아 공경이 보급되고 권장되었다. 마리아 공경은 공적인 전례나 사적인 기도로 표현된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 안에는 600가지 이상의 성모와 관련된 축일이 있다. 그 중에는 세계 교회(보편 교회)가 다함께 거행하는 것과 지역이나 일부 교구 혹은 수도 단체에서만 거행하는 것들이 있으며 공식적인 교회의 신심은 주로 미사 전례와 성무일도를 통해 표현된다.
교회는 또 성모 마리아와 관련하여 전례적인 공적 공경 이외에도 성모께 대한 사적인 공경과 신심행위를 승인해왔다. 흔히 마리아 신심을 가장 잘 나타내는 기도로 알려져 있는 묵주 기도도 이에 속한다.
① 묵주 기도(로사리오 기도)
전례 축일(10월 7일)과 묵주의 달이 제정돼 있을 만큼 신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성모신심 기도이다. 성 도미니코에 의해 보급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묵주 기도의 기념일은 1571년 10월 6일 레판토 해전에서 묵주의 힘으로 터키를 무찌르고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비오 5세 교황이 제정하였다.
이처럼 가톨릭 교회에서 묵주의 달을 제정한 것은 이 기도를 통해 신자들이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고 마리아께 대한 합당한 신심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교회는 특히 루르드, 파티마 등의 성모 발현에서 묵주 기도가 특별히 권장된 것을 인정하고 있다.
② 기적의 메달
1830년 성모님이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에게 친히 알려준 무염시태 성모 공경을 기념하기 위한 메달이다. 1832년 교회인가를 받아 보급되기 시작했고 빈센트회 사제들이 이 보급에 힘썼다. 특히 1858년 루르드와 1932-1933년 보렝에서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무염시태의 칭호 아래 공경받기를 원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③ 성모 칠고(七苦)의 로사리오
성모 칠고는 ⓐ 시메온이 예언한 성모의 고통(루가 2,34-35), ⓑ 이집트 피난, ⓒ 성전에서 소년 예수를 잃음, ⓓ 그리스도의 매맞음과 가시관 쓰심, ⓔ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 ⓕ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심, ⓖ 무덤에 묻히심 등을 말한다. 이 신심은 각 슬픔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기도 1번, 성모송 7번씩을 봉헌하는 것을 말한다.
④ 스카풀라(Scapular)
가르멜의 스카풀라는 기적의 메달과 함께 준성사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인정된 가르멜산 및 성모 무염시태의 신심을 나타낸다. 원래 가르멜회 회원 수도복을 지칭했으나 현재는 두 개의 작은 옷조각과 끈으로 이루어져 회원 휘장처럼 목에 거는 것으로 변형되었다.
⑤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신심
20세기 들어 전 세계에 보급된 신심으로 1917년 파티마 발현이 큰 계기가 되었다. 1799년 비오 6세가 이 축일을 승인하였고, 1861년 비오 9세는 미사와 성무일도를 인정했다. 비오 12세는 1945년 이 축일을 전 교회 축일로 보편화시키는 한편 이에 앞서 1942년 인류를 성모성심께 봉헌하였다. 이 신심은 파티마 성모신심, ‘푸른군대’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4) 한국교회와 성모신심
한국교회에는 ‘바다의 별’, 즉 성모 마리아게 특별한 보호를 요청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해성’(海星)이라는 이름을 지닌 단체나 학교가 유난히 많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각별한 성모신심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한국교회의 깊은 성모신심은 초기 교회로부터 내려온다. 1801년 순교한 홍낙민은 배교했다가 이를 취소하고 순교했는데 이는 그가 매일 묵주 기도를 열렬히 바침으로써 성모의 도움을 얻어 가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달레의 『한국교회사』는 성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귀국할 당시에 뱃길에서 풍랑을 만났으나 성모님께 전구를 청함으로써 구원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김 신부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선교사들이 조각배를 타고 황해를 건널 때 성모님께 전구하였으며 이로 인해 뱃길의 위험뿐만 아니라 그후 박해의 위험도 여러 차례 모면했다고 한다.
초기 한국교회의 교우들은 매일 묵주 기도를 5단씩 바쳤고 주일이면 15단씩 바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고 한다. 한국교회가 1841년 무염시태의 성모를 한국교회 새 주보로 모시게 된 것은 이러한 초기 교회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제2대 조선교구장인 앵베르 주교는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게 당시 주보로 모시던 성요셉 대신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로 정해줄 것을 요청하여 1841년 이를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교회는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1846년 충남 공주시 수리치골에 ‘성모성심회’를 창설했고, 1861년 제4대 조선교구장인 베르뇌 주교는 선교사들이 담당하고 있는 구역을 성모에 관계된 호칭으로 명명해 한국교회 전 지역을 성모님의 보호 아래 있도록 하였다.
1898년 명동대성당은 무염시태 성모님께 봉헌되었고, 1954년에는 다시 한국교회가 성모 마리아께 봉헌되었다. 그후 30년이 흐른 1984년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5월 6일 명동대성당에서 한국 겨레와 교회를 성모 마리아께 봉헌하였다.
2. 성모님의 발현과 그 메시지
성모님은 세상이 혼탁할 때 자주 발현하시어 자모(慈母)의 심정을 가득 담은 메시지를 통해 우리들의 나약해지거나 왜곡된 신심을 추스를 것을 간곡히 당부하시고 때로는 경고하셨다. 새로운 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은 세상이다. 성모님의 메시지는 혼란한 이 시기를 어떻게 살아야하는 가를 가르쳐줄 것이다. 이에 ① 성모님의 발현지와 그 시대적인 배경, ② 발현 모습과 그 목격자, ③ 성모님의 메시지와 그 결과의 순으로 성모님의 발현지에 대한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다.
1) 멕시코의 과달루페
① 1531년 12월 9일 멕시코가 스페인에 정복당한 지 10년째 되는 해에, 정복자들의 폭정에 시달리던 원주민들이 이교신의 모친을 위해 신전을 세웠던 테페약 언덕에서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다. 과달루페란 말은 ‘뱀의 머리를 짓밟는 분’이라는 뜻의 인디언 말이다. 성모님이 ’과달루페의 성 마리아로 불리길 원한다‘는 메시지를 주셨는데 이 말이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옮겨져 순례지의 명칭이 되었다.
② 성모님께서는 인디언의 피부에 장밋빛 옷과 푸른 망토를 두르고 있었으며, 손은 합장한 채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으로 식민 치하에서 처음으로 입교한 원주민 중 한 사람인 55세의 환 디에고에게 발현하셨다.
③ “나는 평생 동정이며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어머니임이 알려지기를 원한다. 나를 찾는 이들에게 나의 동정심을 보여주도록 정성을 다해 이 자리에 성당을 짓기를 바란다”며 디에고의 망토에 성모님의 모습을 새겨주셨다. 발현 후 7년 사이에 800만 명의 인디언들이 개종했고, 전 미주 대륙의 복음화의 기틀을 잡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2) 프랑스의 파리 뤼드박
① 프랑스 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고, 사회의 가치관의 혼란으로 신심이 사라지고 있었으며,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매우 심했던 1830년 프랑스 파리의 뤼드박에서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다.
② 지구 위에 서서 두 팔을 활짝 펼친 모습으로 성 빈첸시오 데 바울로의 ‘사랑의 딸’ 수녀원 청원자였던 성녀 카트린느 라부르에게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는데, 당시 그 주변에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③ “십자가가 멸시를 받으면 모든 인간은 더욱 고통에 잠길 것이다. 내가 보여준 모상대로 메달을 만들어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큰 은총을 받을 것이다. 또 신앙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에게도 큰 은총을 충만히 내릴 것이다”고 성모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메달은 급속도로 보급되었고, 이를 통해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 ‘기적의 메달’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24년 후인 1854년 비오 9세가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되었고, 카트린느는 1947년 7월 17일 시성되었다.
3) 프랑스 라 살레트
① 1846년 프랑스 가르가스산 기슭의 라 살레트에서 발현하신 것으로 과학의 발달로 신앙이 뒷전으로 밀리고 자유사상가와 무신론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② 순백색의 부인복에 황금색 앞치마를 두른 성모님께서는 어깨에 장미술이 달린 망토를 걸치고 장미 면류관을 쓰신 모습으로 11살의 막시망 지로와 15살의 멜라니 칼바에게 발현하셨다.
③ 성모님은 눈물을 흘리며 당신을 ‘죄인들의 화해자’로 밝히시고 나서 “회개하고 잘못을 뉘우쳐 하느님과 화해하라. 내 말을 잘 들으면 축복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중에서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과 예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을 특별히 지적하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큰 흉년이 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사람들이 이 메시지를 무시하자 1846년이래 혹독한 흉년이 들어 유럽에서 100만 명 이상이 굶어죽고 각종 혁명과 폭동이 일어나고 1870년 보불전쟁까지 터지자 회개의 순례객이 몰려들었다.
4) 프랑스 루르드
① 19세기 들어 극심해진 자유주의 사상 등의 영향으로 지식층의 교회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던 시대에 성모님께서 1858년 2월 11일 프랑스 루르드의 서쪽에 있는 마사비엘 동굴에서 발현하셨다.
② 흰옷을 입고 푸른색 허리띠를 두르신 성모님께서는 오른팔에 묵주를 늘어뜨리고 양손을 가슴에 모은 모습으로 가난한 농부 집안의 일기도 쓰지 못했던 14세의 베르나데트에게 19번 발현하셨다.
③ 자신을 ‘원죄없으신 잉태’라고 밝히신 성모님께서는 “회개하라. 회개하라. 죄인들의 회개를 위에 땅에 입을 맞추어라”고 말씀하신 성모님께서는 기도와 보속, 생활의 회개를 촉구하고 특히 묵주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매년 수 백만 명이 이곳을 순례하고 있고 수천 건의 기적이 일어났다.
5) 프랑스 퐁멩
① 프러시아가 프랑스 전역을 침략하여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웠으며 퐁멩의 청년 39명이 전쟁터로 떠나게 된 시기에 성모님께서는 1971년 1월 17일 프랑스 쁘리따뉴 메에느 북쪽의 작은 마일인 퐁멩에서 발현하셨다.
② 허리띠 없이 별이 빛나는 짙은 하늘색 부인복에 검은 면사포를 쓰고 계신 성모님께서는 핏빛의 그리스도가 못 박힌 붉은 십자가를 양손에 잡은 모습으로 군에 간 형 아우구스티노를 위해 기도하던 12살의 유젠느 바르바뎃트와 11살의 요셉에게 발현하셨다.
③ 하얀 깃발에 “나의 어린이들아! 기도하라. 하느님께서 곧 너희들의 기도를 들으시리라. 나의 아들은 너희 기도를 즐거이 허락하신다”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1월 28일 휴전협정이 조인되고 징집되어간 39명의 마을 청년들이 무사히 돌아왔다.
6) 아일랜들의 녹
① 가혹한 식민지 형법과 엄청난 소작료 등으로 착취당하며 대기근으로 고통받던 시대에 성모님께서 1897년 8월 21일 서부 아일랜드의 녹에서 발현하셨다.
② 흰옷을 입고 기도하는 가운데 오른편에는 성요셉이, 왼편에는 사도 요한이 서 있었다. 제대 위에는 어린양이 있었고, 그 주위에는 천사들이 돌고 있는 광경이 6-75살의 마을 주민 15명에 의해 목격되었다.
③ 말씀은 없었지만 발현 모습을 통해 구원의 위대한 주제를 알려주고 있다. 어린양의 신비와 함께 성모님은 교회의 원형이라는 모습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성요한은 교회의 옹호자며 전파자, 성요셉은 자부적인 사랑, 제대 뒤편의 십자가는 희생, 제대는 신앙에 필요한 힘의 원천을 계시하며 무엇보다도 미사 성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1979년 발현 100주년을 맞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하였다.
7) 포르투갈의 파티마
① 제1차 세게 대전이 절정에 달하던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 레이리아 교구의 작은 마을인 파티마에서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다.
② 발현 때마다 조금씩 달랐으나 흰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묵주를 든 양손은 가슴에 모으고 맨발로 구름을 밟고선 모습으로 가난하고 순박했던 양치기인 루치아(10세)와 사촌 동생인 히야친타(7세)와 프란치스코(9세)에게 여러 차례 발현하였다.
③ 성모님은 당신을 ‘로사리오의 여왕’이라고 밝히고 세계 평화를 위해 매일 묵주의 기도를 바칠 것, 죄인을 위해 희생할 것, 성모성심을 공경할 것을 요청하였다. 특히 “러시아를 나의 티없는 성심께 봉헌하고 매월 첫 토요일에 보속의 영성체를 하라”고 말했다. 1917년 10월 소련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1942년 10월 교황 비오 12세가 전 세계 특히 러시아를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성심께 봉헌하였다.
8) 벨기에의 보렝
① 당시 벨기에는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했으며 주민의 반 이상이 공산주의 사상에 현혹되어 있어 지역이 전체적으로 냉담 상태에 있었는데 성모님께서 1932년 말 벨기에 남부 보렝에서 발현하였다.
② 흰옷에 황금관을 쓰고 양손을 들어 티없는 황금빛 성심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9-15살의 다섯 아이들에게 발현하였다.
③ 성모님은 당신을 ‘원죄없이 잉태된 티없는 동정녀’, ‘천주의 모친 하늘의 여왕’이라고 밝히고 “기도하라. 기도하라, 많이 기도하라. … 나는 죄인들을 회개시키겠다. … 나의 아들을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희생을 바쳐라”고 요청하였다. 보렝의 주민들이 냉담을 풀었고 첫해 순례자가 200만 명이 넘었다. 병의 치유와 함께 영적인 치유와 죄인들의 회개가 줄을 이었다.
9) 벨기에의 바뇌
①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던 혼란한 시기인 1933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까지 독일 국경에 인접한 벨기에 바뇌에서 성모님께서 발현하였다.
② 루르드의 모습과 같이 성모님은 흰옷에 푸른 띠를 두르고 있었다.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숙이고 합장한 채 오른 팔에 묵주를 늘어뜨린 모습으로 비신자였던 12살의 마리에트 베코에게 발현하였다.
③ 성모님은 당신을 ‘가난한 자의 동정녀’로 밝히고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왔다고 밝히면서 기도를 많이 하라고 요청했다. 1천 개 이상의 성당이 ‘병자의 성모’ 등의 호칭으로 봉헌되었고 바뇌 성모 국제기도회원이 전 세계에 수백만 명을 넘었다.
3. 요한 로튼 신부1)의 특별 마리아 세미나 요약
1) 문화․역사적 측면에서 살펴본 성모 마리아
그리스도교는 사람들의 영혼을 늘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육화적(incarnational)인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육화는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 이 세상 안에 계신다’라는 의미보다 더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20세기(제2차 세계 대전 후) 교회에서는 육화의 개념이 다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고, 마침내 육화의 영성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주요 문서들 안에 깊숙이 자리잡았다. 육화의 영성은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증거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교 사명을 수행하며, 시대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데 직접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우리가 공경하는 성모님은 바로 이 육화의 정신 안에서 각 시대와 문화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먼저 성모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오 어린양으로서 이중적인 이미지를 보이듯이 성모님도 서로 모순이 되는 두 가지 모습들 보인다. 먼저 성모님은 단순하고 비천한 갈릴레아의 여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하늘의 여왕으로 우리에게 비추어진다.
다음으로 성모님은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문화와 지역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보여지고 있다. 예를 들면 북미와 유럽 교회에서는 자유․개인주의가 강조되면서 성모님도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교회에서는 해방신학 및 가난과 소외받은 이들이 강조되면서 가난과 정의를 추구하는 과달루페 성모님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아프리카 교회는 성모님의 부드럽고 따뜻한 이미지가 강조된다.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시되며 가족을 함께 모으고 생명을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이미지가 부각된다. 마지막으로 아시아 교회 특별히 한국 교회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이미지가 강조되는 듯 하다.
그렇다면 교회의 역사 안에서 성모님의 전형적인 이미지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고대 교회에서는 두 개의 성모님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첫째는 반 여신상의 모습이다. 예를 들면 성모님은 이집트의 여신 아시스(Isis)와 같은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며, 역사적 인물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새 에와의 이미지로 소개되고 있다. 둘째는 여왕의 모습이다. 그래서 그 당시 성모님은 짙은 파란색의 긴 망토를 입고 있는데, 이 옷의 색깔은 당시 여왕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색채이다.
중세 교회 역시 고대 교회처럼 두 개의 성모님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첫째는 중세의 용감한 기사들로부터 존경과 공경을 받는 사랑의 여인이며 귀족적인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둘째는 아이를 양육하는 어머니 그리고 자비와 고통의 어머니로서의 이미지로 매우 인간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모습이다.
종교개혁부터 20세기까지의 성모님의 모습도 두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 첫째는 군대를 이끌고 악을 쳐부수는 승리의 연인으로 종교개혁에 반대하는 이미지이며, 둘째는 신과 같은 영광과 특권을 가진 힘있는 하늘의 여왕으로서의 모습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기적의 메달, 라 살레트, 루르드 및 파티마의 성모 발현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성모님은 교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공의회 이후 성모님은 교회의 일원이며 교회의 모델로서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는 분이시기에 그녀는 유다의 여인, 인디언의 여인 등 여러 모습으로 이해되고 있다.
2) 여러 성모신심 행위들
우리의 영적 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신심 행위들은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성모신심도 그리스도와 관계되는 것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교회는 조금씩 다른 특성을 지니고 이는 야고보, 베드로, 바오로, 요한의 전통성 있는 네 가지 영성적인 기초를 가지고 있다. 한편 성모님의 영성은 이러한 전통들을 하나로 통합한다. 왜냐하면 성모님의 영성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기억하며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전하고, 그리스도께 온전히 자신을 바치며 세상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사도적인 특징을 지니기 때문이다.
다음은 성모님의 주요한 다섯 가지 이미지로서 우리들이 어떠한 이미지로서 성모님께 다가가야 하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첫째는 자궁(womb) 이미지로서 어렵고 힘든 우리의 상황이 성모님 안에서 보호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또한 순수한 어린이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모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둘째는 거울(mirror) 이미지로서 성모님의 모습과 삶이 나의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어 주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성숙한 여인이면 성모님도 그러한 이미지로서 나에게 다가오면서 나의 삶의 길잡이가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방패(shield) 이미지로서 성모님은 악과 죄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방패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넷째는 창(lance) 이미지로서 강한 여인의 모습으로서 개혁적이고 혁명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마지막은 구름(cloud) 이미지로서 영이 충만한 구름 위에 서 계시는 성모님의 모습이다.
성모님의 기도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사건과 신비를 기억하는 기도이다. 매우 중요한 기도의 형태로 로사리오나 삼종기도처럼 성모님과 함께 드리는 기도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탄생 예고에서, 탄생, 죽음, 부활로 이어지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기억하게 된다. 둘째는 찬양의 기도이다. 우리는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게 된다. 셋째는 청원 및 호칭 기도이다. 우리가 자동 판매기에서 단추를 누르면 원하는 것이 나오는 것처럼 성모님의 손을 잡고 기도하면 은총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4. 성모님에 관한 모든 것
1846년 조선 복음화의 희망, 김대건 신부가 순교하자 절망에 빠진 프랑스 선교사 고 요한 주교와 안 안토니오 신부는 조선을 티없으신 성모신심에 봉헌하고 어머니의 특별한 보호를 요청하기 위해 티없으신 성모신심회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후 회칙과 규칙들을 번역해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날로부터 6주가 지난 후인 그해 11월 2일 충남 공주신의 외딴 산골 수리치골에서 ‘티없으신 성모성심회’라는 국내 첫 성모신심 관련 단체를 만들었고 이후 1866년까지 20년 동안 조선교회는 평온한 시기를 보낼 수 있었다.
혹독한 시련 속에 성장해온 한국교회는 이처럼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고 그러한 전통은 현재까지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성모성월을 맞이하여 성모님과 관련된 궁금한 점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았다.
1) 마리아란 이름의 어원
마리아(Maria)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학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의 두 학설이다. 첫째는 모세와 아론의 누이였던 ‘미리암’이라는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이름은 ‘애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집트어 ‘뮈르’와 히브리 말 ‘야훼’의 축소형인 ‘얌’의 복합어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야훼의 애인’, 혹은 ‘하느님의 애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둘째로는 ‘들어높인자’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마롬’에서 파생되었다는 설이다.
2) 성모님의 부모
마리아의 부모는 요아킴과 안나인데 요아킴은 그리스도교 예술에서 두 마리의 비둘기가 들어 있는 새장을 손에 들거나 어린 마리아를 안은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성 안나에 대한 공경은 성모 공경과 관련되어 6세기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으며 14세기에 대중화되었다. 요아킴과 안나는 구약성서의 메시아 기대의 상징으로서 이들이 마리아와 함께 신약성서에 소개된 것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는 역사의 한 분기점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3) 성모님에 대한 믿을 교리(신앙 진리)
가톨릭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성모님에 대한 주요 교리는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시며 하느님의 모친이시고, 또한 원죄에 물들지 않았으며, 사망 후 승천하였다”는 것이다.
①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하느님에 의한 잉태, 성령에 의한 잉태라는 사실이 핵심 내용으로서, 성모님이 온갖 생명과 존재의 창조자요 원천으로서의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예수의 유일무이한 기반이라는 사상을 담고 있다.
②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Theotokos)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선포된 교의로 참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출산한 마리아는 곧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이 그 핵심 내용이다.
③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무염시태)
성모 무염시태라고 불리던 이 교의는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거처가 될 수 있는 자격, 곧 신성성을 지녀야 한다는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곧 성모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그리스도께 완전히 참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1854년 5월 8일 교황 비오 9세가 신앙 진리로 선포했으며, 4년후 루르드에서 발현한 성모님께서는 당신을 ‘원죄없이 잉태된 자’라고 밝히셨다.
④ 성모님의 승천
교황 비오 12세가 1950년 11월 1일 신앙 진리|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