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몽트레 수도회 Pramonstratenser

  프레몽트레 수도회 ~修道會 Prämonstratenser

  11세기의 교회는 타락한 성직자의 생활을 개혁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으로 성직자의 공동 생활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1509년과 1063년에 개최되었던 로마의 시노드는 성직자들로 하여금 사유 재산을 포기할 것을 권고하였다. 왜냐하면 사유 재산은 공동 생활을 방해하는 요인으로서 작용하였기 때문이었다. 히포의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노가 자기 교구의 사제들과 영위하였던 공동 생활이 본보기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동체의 규칙은 나중에 공동 생활을 위한 기본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하였다.


  12세기에 들어와 이러한 공동 생활의 모범을 보여 준 인물이 노르베르트(Norbert von Xanten)였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고향에 있던 빅토리오 수도원의 회원으로서 세속적인 생활을 영위하였다. 1114년 노르베르트는 사고로 말미암아 내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는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고, 북독일,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 등지에서 속죄 설교가 또는 순회 설교가로 활동하였다. 1121년 노르베르트는 자신의 동료 13명과 함께 프레몽트레(Prémontré) – 랭스(Reims)와 리옹(Laon) 사이에 위치 – 에서 수도회를 창설하였다. 1126년 교황 호노리오 2세는 아우구스티노 규칙에 따라 사는 이 새로운 수도 공동체를 승인하였다. 프레몽트레 수도회는 주로 외벙 선교에 주력하였다. 1126년 슈파이어(Speyer) 제국 의회에서 마그데부르크의 대주교로 선임되었던 노르베르트는 수도회 회원들이 직접 엘베 강에 이르는 동쪽 지역에서 선교하도록 하였다. 노르베르트는 1134년 마그데부르크에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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