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 복음에 나타난 마리아

 

2.3. 루가 복음에 나타난 마리아


루가 복음은 마르코나 마태오 복음에 비해서 마리아에 대해서 상세한 내용을 전해준다. 마태오가 단지 마리아의 역할에만 관심을 두었던 것과는 달리 루가는 마리아를 한 인격체로서 묘사한다. 그래서 루가 복음은 마리아의 숙고하는 모습에 대해서(2,19.51), 깊은 신앙에 관해서(1,38; 2,51) 전한다. 그러나 루가복음에서 관건이 되는 문제는 마리아의 전기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구세사적 위치를 증언하는 것이었다.


(1)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는 대목(1,26-38)


우선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 이여,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28)하고 인사한다. 이 인사말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1) “은총을 입은 이여”는 희랍어 ‘케카리토메네(kecharitoméne)’의 번역인데, 이 단어는 ‘카리토오(charitoo)’ 동사의 완료 시제이고, 이 동사는 조금 후 30절에 나타나는 용어인 ‘카리스(charis)’의 어근이다. 은총을 의미하는 ‘카리스’라는 단어는 신약성서에서 대부분의 경우에 하느님과 관련되어 나타나는데, 하느님의 호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히 계시되고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무상 은혜를 뜻한다. 즉 이것을 선사 받는 사람은 은총 지위에 있게 되고 전적으로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자가 된다. 그리고 ‘카리토오’ 동사가 완료 시제로 되어있는데, 이는 마리아가 이미 하느님의 호의를 받고 있으며 그녀가 이 같은 상태 안에 계속 머물러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다시 말하면,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당신 호의로 특별 우대하여 그녀가 자신의 고유한 존재 안에서 그 호의를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의 모친이 되는 그녀의 소명에 합당하게 응답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신 그런 인물이다”.2)


또한 천사가 마리아에게 건낸 인사말은 스바니야 3,14-17을 연상시킨다. 이 대목에서 이스라엘은 “시온의 딸”이라고 불리우면서 ‘기뻐하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는데, 왜냐하면 야훼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시온아, 두려워 말라. 기운을 내어라 너를 구해 내신 용사 네 하느님 야훼께서 네 안에 계신다”(스바 3,16). 이렇게 볼 때 루가는 마리아를 그저 하느님의 호의를 받고 있는 한 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상징으로 이해하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즉 마리아는 구세주를 배출한 백성을 대표한다(즈가 9,9; 요엘 2,21-27).


천사는 마리아에게 메시아를 잉태할 것이라고 예고하자, 마리아는 자신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1,34)고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은 마리아가 정혼하였지만 아직 시집으로 가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스라엘에서는 처녀가 결혼한 다음에도 일년 남짓 친정에 눌러 살고난 다음에야 신랑이 신부를 시집으로 데려가서 비로소 결혼생활을 시작하였던 것이다(마태 25,1-13 참조). 이에 대해서 천사는 “성령이 당신에게 내려오실 터이니, 곧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당신을 감싸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분은 거룩하다고 불릴 것이니,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루가 1,35)라고 대답한다. 구약성서의 표현에 의하면 구름이 감싸 주는 것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현존을 의미한다(참조: 출애 40,34-35; 1열왕 8,1-13). 루가는 이런 구약의 표현방식을 빌어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현존의 장소가 되기 위해서 하느님께로부터 선택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천사 발현과 관련해서 마리아와 즈가리야를 비교하면 상당히 의미있는 점이 발견된다. 즈가리야와 관련해서는 천사가 예루살렘 성전 안 지성소 앞에 놓여 있는 “분향 제단 오른쪽에”(루가 1,11)에 나타났다. 이 장소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로서 옛 계약을 구체적으로 상징하는 정점이다. 반면 마리아에게 천사가 발현한 곳은 “갈릴래아의 나자렛이라는 마을”(루가 1,26)이다. 갈릴래아 지방은 “외국인들의 지역”(이사 8,23; 마태 4,4 참조)이라 불리웠으므로 속된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그 지방이 이교도들의 지역과 근접해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의 순수성을 해칠 위험이 컸고, 그래서 사람들은 이 지역을 신통치 않게 생각하였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수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요한 1,46)라는 나타나엘의 반문은 이런 의식을 반영해준다.


루가 복음에 따르면 바로 이렇게 천대받는 지역인 나자렛에서 천사가 발현하였다. 이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당신의 거처가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에 고정되어 있지 않을 것임을 알려 주신다. 이 세상의 어느 곳, 하찮은 곳 어느 곳이든 훌륭하게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거룩한 장소가 될 수 있다. 나자렛(그리고 분명히 마리아의 인격)은 그리스도교적 보편주의의 주도적 표징으로 나타난다. 돌로 지은 성전의 경륜은 끝났다. 복음 말씀을 받아들이는 모든 신앙인의 마음이 신적 현존의 거룩한 처소가 될 수 있다(루가 8,21; 요한 4,20-24; 14,23 참조)”.3)




마리아는 천사가 예고한 것이 자신에게 이루어지도록 기원함으로서 하느님께 대해 순종한다.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이러한 순종의 자세로 마리아는 참되고 거룩한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들어서게 된다. 즉 모세나 여호수아와 다윗 그리고 성서 안에 나타나는 예언자들에게 부여된 동일한 칭호(“주님의 종”)가 마리아에게 적용됨으로써 그들과 같은 반열에 들게 된다. 그리고 마리아가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부른 순간, 마리아와 함께 새로운 대열이 시작된다. 즉 앞으로 생겨날 교회는 마리아와 같이 하느님 앞에 시종으로 서있고, 마리아는 자신의 신앙에 뿌리를 둔 순명으로써 교회공동체의 모범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루가가 전하는 예수의 탄생 예고는 구성 형식에 있어서 구약성서의 예언자 소명 기사와 아주 유사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파견하려고 선택하는 야훼의 말씀에 대해서 해당 예언자들은 주저하면서 이의를 내세운다. 예를 들어서 모세는 자신이 말재간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고(출애 3,10), 이사야는 더러운 입술을 지녔다고 하며(이사 6,5), 예레미야는 자신이 너무 어리다(예레 1,6)고 말한다. 루가복음에는 마리아 역시 이런 자연적인 여건에 근거한 주저함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남자를 알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아이를 잉태할 수 있겠는가?’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마리아에게서도 이런 주저함은 생물학적-물리적 차원에서 의문을 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받기에 자신이 합당한지에 대한 의문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2)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대목(루가 1,39-56)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로 알아보고 마리아의 신앙을 찬송한다. “복되어라, 믿으신 분!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들이 이루어지리니.”(45). 마리아가 단순히 예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복되신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되리라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복되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마리아는 이른바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로 대답한다(1,46-55). 마리아의 노래는 아이들 낳지 못하였으나 하느님께서 청원을 들어주셔서 아들 사무엘의 낳게된 한나의 노래를(특히 1사무 2,1-10 참조) 원형으로 삼았다. 이로써 마리아는 사라, 리브가, 라헬, 한나 등과 같이 구약의 축복받은 어머니들의 대열에 속한다는 것이 암시된다.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축복이 되는 아들을 낳은 것처럼 마리아도 그런 아들을 낳도록 하느님께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마리아의 노래에서는 “야훼의 가난한 자들”(“anawim”)이 지닌 희망이 명시적으로 표현되는데, 이 희망은 바로 루가 복음의 근본 내용이다. 이렇게 루가는 마리아를 단지 모범적인 신앙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첫 번째 복음선포자로 규정하는데, 왜냐하면 마리아의 노래는 내용적으로 메시아의 오심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훑어보면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특권을 누린 지배층과 그렇지 못한 피지배층으로 양분되었다. 피지배층은 어느 모로 보나 못난이들이요 말없는 민중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날 때마다 선정(善政)을 기대하였지만 번번히 실망으로 끝났다. 그래서 이승의 정치에 환멸을 느낀 이들은 오직 하느님 친히 다스릴 때를 학수 고대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의 종말에 하느님 친히 선정을 베푸실 것이며 그 때가 되면 오늘의 잘난 자들과 못난 자들의 위치가 한순간에 뒤바뀔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 종말론적 신앙은 주로 기원전 583년 바빌론 유배가 끝난 다음부터 서서히 형성되었다고 추정되는데, 이로 말미암아 이른바 가난한 이의 영성이 생겼다. 이제 “가난한 이들”(히브리어로 “anawim”)은 그냥 못난 군중이 아니라 하느님께 의탁하는 무리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예수가 산상설교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불렀던 (마태 5,3) 그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종말에 구원받을 “남은 자들”로 자처하기도 했다. 루가는 사도 2,43-47; 4,32-37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서술했는데,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은 주로 “가난한 이들”이었던 것 같다. 즉 그들은 비록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는 못난 이들이었지만, 신앙심만은 돈독하여서 하느님께 모든 희망을 둔 이들이었다.4) 이런 배경에서 루가가 마리아의 노래를 통해서 표현하고자 한 그의 마리아론적 의도가 분명해진다. 즉 마리아는 오로지 하느님께만 희망을 두는 종말론적 교회 공동체의 원형(原型)이라는 것이다.




(3) 예수 탄생 직후 양치는 목동들이 와서 천사들의 발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2,15-20)


목동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말을 신기하게 여겼다고 전한다. 그러나 마리아의 반응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마리아는 그 모든 일을 당신 마음 속에 새기어 곰곰히 생각하였다”(2,19). 예루살렘 성전에서 잃었던 예수를 다시 찾고서 그의 대답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같은 반응을 보였고(2,51), 그 이전에 이미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 탄생을 예고하는 대목(1,29)에서 마리아는 깊이 숙고하는 여인, 그리고 경청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당황하며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였다.”


루가에 의하면 마리아의 이런 경청과 숙고의 태도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요청되는 태도이기도 하다. 루가 복음에 의하면 말씀의 청취에 대해서 거듭 강조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어서 악령에 사로잡힌 젊은이가 치유된 뒤에 “사람들이 모두 예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보고) 놀라워하고  있을 때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이 말을 귀담아 들으시오. 사실 인자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입니다’”(9,43 이하). “여러분은 이 말을 귀담아 들으시오”라는 명령을 통해서 예수의 제자들은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새겨 들어야 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씨뿌리는 사람들의 비유도 같은 점을 말하고 있다. “좋은 땅에 있는 것은, 좋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켜서 참고 견디는 가운데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8,15).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요구되는 본질적인 자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모친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의 올바른 청취가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가 모범적으로 보여진다.


(4) 성전에서 예수를 봉헌하는 장면(루가 2,22-35)에서 시므온은 부모을 축복하고 나서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두고 보시오. 이 아기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며 또 아기는 배척당하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영혼을 칼이 꿰뚫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속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2,34 이하). 이 말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론적 진술이지만 마리아론적인 의미도 지닌다. 즉 아들 예수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빚어내는 긴장과 투쟁은 어머니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당신의 영혼을 칼이 꿰뚫을 것입니다”. 즉 마리아는 고통당하는 어머니가 된다.


여기서 루가복음은 전반적으로 교회론적 성향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루가가 이 대목을 전하는 이유는 단지 마리아의 인격적 면모에 대한 관심에서 처형당하게 되는 아들을 가진 한 여인의 운명에 동참하려는 의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운명은 교회의 운명을 예시한다는 데에 있다. 역시 루가의 작품인 사도행전에 의하면 초대교회 신자들은 어디서나 “반대를 받고 있는”(사도 28,22) 종파이다. 초대교회는 박해받고 고통당했던 주님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주님과 같은 운명에 처하였던 것이다. 어느 시대나 주님과 이루는 일치가 긴밀할수록 그만큼 더 많이 십자가의 고통도 감수해야만 한다.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교회에 앞서서 주님을 따르기 위한 고통을 참아받았고, 이런 점에서 교회의 원형이 된다.


(5) 12살의 소년 예수가 성전에 머무른 사건(루가 2,41-52)은 마리아와 예수의 관계에서 가벼운 위기를 드러낸다고 하겠다. 어머니는 부모의 애타게 한 아들을 꾸짖고, 아들은 하느님께 받은 사명이 가족의 유대보다 우선한다고 응답한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49). 하지만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50). 여기서 마리아는 예수의 탄생 직후 목자들의 방문을 받고서 취한 태도를 반복한다.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새겨 두었다”(51).


이렇게 볼 때 마리아 역시 일생을 신앙의 어두움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 모두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이 점에서 마리아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즉 인간은 하느님의 계획을 투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의 반대자들과는 달리 이해할 수 없다는 구실로 그가 하는 말을 배척하지 않고, 마음 속에 새겨둠으로써 겸손과 순명의 태도를 보인다. 바로 이 점이 마리아와 예수 사이에 단순한 혈연관계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깊은 유대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마리아는 어머니이지만, 자신의 아들의 완전한 추종자(제자)인 것이다.


(6) 루가도 참된 친척에 관한 언급(8,19-21).


루가는 마르코의 전승(마르 3,33-35)을 수용하면서 부드러운 형태로 바꾼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19)고 하면서, 예수의 말씀도 자신의 친척들에 대한 거리감을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인상을 준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입니까?”하는 반문의 형태 때문에 마치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배척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루가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런 사람들입니다”(8,21)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해서 루가는 다른 마르코나 마태오 복음에서 보다 더 분명하게 예수의 친척이 배척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면서 예수의 친척이 되는 것은 혈연관계가 아니라 올바른 청종(聽從)에 근거하며, 이것만이 예수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드러낸다.


(7) 마리아는 루가복음 안에서 간접적으로 한 번 더 언급된다. 예수의 설교를 듣던 군중 가운데서 한 여자가 예수께 소리 높여 외친다. “당신을 배신 태와 당신에게 젖먹인 가슴은 복됩니다!”(11,27). 이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은 복됩니다!”(11,28)하고 대답하신다. 루가는 여기서 마리아가 복된 분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단순히 모친이기 때문이 아니라 올바로 듣고 따르는 분이었기에 복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대목은 그리스도의 모친은 올바른 청종을 통해서 아들을 뒤따르는 여인이면서 동시에 교회 공동체의 본보기라고 묘사하는 루가의 마리아론적 의도에 가장 잘 부합한다고 하겠다.


이처럼 루가는 마리아를 한 인격체로서 인상깊게 묘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루가에게서는 구세주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의 역할만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믿었기에 복되면서도 동시에 고통스러운 그녀의 신앙적 태도가 전면에 부각되어 나타난다. 이와 함께 마리아는 하느님께 순명하는 인간으로서 구세사의 중심에 자리한다. 즉 마리아는 구약과 이스라엘이 지닌 가장 훌륭한 특성(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자세)의 화신(化身)인 동시에 미래의 교회에게 요구되는 태도를 앞서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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