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교의사적 전개
3.1. 최초의 형태는 병자의 도유
처음 4세기 동안 병자성사에 대해서 전례적, 신학적 자료는 거의 없고 단지 기름 축성을 위한 기도가 전해질 뿐이다. 여기에서 축성된 기름이 다 방면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나타난다. 축성된 기름은 무엇보다도 병에서의 회복과 힘을 북돋는 데에 사용된다. “세속적” 사용과 “거룩한” 사용이 항상 구분되지는 않는다. 가정약으로 축성되어 쓰이는 기름은 동시에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된 치유와 힘의 표징이다.
이에 대해서 (200년경의 로마시의 전례를 반영하는) 히뽈리뚜스의『사도전승』(215년경 저술)이 증언하고 있다. 이 책은 (올리브와 치즈에 대한 축복의 기도 외에) 기름에 대한 주교의 기도를 수록하고 있다. “하느님, 이 기름을 거룩하게 하시어 (이 기름을) 사용하고 받는 이들에게 건강을 주소서. 당신이 왕들과 사제들과 예언자들을 기름 바르셨듯이, (이 기름을) 맛보는 모든 이에게 용기를 주시며, (이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건강을 허락해 주소서” (사도전승 5항).
야고 5,14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416년에 쓰여진 교황 이노첸시오 1세(402-417)가 이태리 구비오(Gubbio)의 주교 데첸씨오(Desentius)에게 보낸 편지이다. 야고보서의 병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병중에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로 이해해야 하고 그들은 크리스마 성유로 도유된다”. 이로써 기름의 사용처가 명확해진다: 병 중에 있는 환자. 이노첸시오 교황은 기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밝힌다. “기름은 주교가 축성하지만 사제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도 자신의 곤경이나 그 어떤 곤경 중에 사용할 수 있다”(DS 216). 이렇게 평신도까지도 기름을 사용할 수 있던 관습은 중세가 시작되면서 차차 줄어들고 9세기에는 금지되었다.
8세기까지의 상황을 “요약해서… 얘기하면, 병자성사는 그에 대한 분명한 증언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하게 펴져있었다… 신자들이 (마술사의 기름이 아니라) 축성된 기름을 가정에 간직하고 사용하는 데에 큰 가치를 두었다. 이와 관련해서 주교가 미사 중에 기름을 축성하는 교회의 행동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성령이 기름에 임하시기를 청함으로써 기름은 치유의 능력과 악한 것을 방지하는 능력을 얻게된다는 것이다. 기름은 (바르거나 마시는 형태로) 평신도나, 환자 자신이 그리고 사제가 사용한다… 이 시대의 병자성사는 어디에서도 죽을 위험에 직면한 환자나 죽어가는 사람의 성사로 이해하지 않았다. 이 성사를 통해서 (마귀들린 것까지도 포함하는) 광범위한 의미로의 병에서의 치유와 경우에 따라서는 – 야고 5,15 – 죄의 사함을 기대하였던 것이다”1) 이런 상황은 8세기 이후에는 달라진다.
3.2. 병자성사에서 종부성사로의 변천
8세기부터 병자성사에 관련해서 여러 가지 변화와 규정이 형성된다. 기름의 축성은 오직 주교에게, 도유는 사제에게 유보된다. 대부분 7일에 걸쳐서 도유가 이루어졌고, 또 많은 지역에서는 (오늘날 비잔틴 예식에서와 같이) 도유를 위해서 여러명의 사제들이 요구되었다. 이에 따른 “비용”도 적지 않았다. 가장 큰 변화는 병자성사가 종부성사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병자성사를 받기 위해서 고해성사를 받아야 했는데 그 당시의 관습에 의하면 고해성사에 따른 보속이 막중하였다. 예를 들어서 일생동안 춤을 추지 않아야 하고, 육식을 금하고, 부부 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많은 지역에서는 병자성사 전에 환자의 배우자의 동의가 요구되었다. 또한 이 성사를 집전한 사제는 많은 비용을 요구하였다. 이런 요인은 자연적으로 병자성사를 기피하고 죽음 직전까지 미루도록 만들었고, 결국은 종부성사로 변하게 되었다. 13세기에는 병자의 도유는 마지막 성사로서 고해성사와 노자성체 다음에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서 병자성사의 명칭도 변화된다. 중세초기에는 “병자도유”(oleum infirmorum)이라고 하던 것이 12세기에는 “마지막 도유”(extrema unctio)라고 일컫게 된다. 베드로 롬바르두스(Petrus Lombardus)는 12세기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자신의 명제서에서 “마지막에 거행되는 병자도유”(Sent.IV d.23 c.1)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성사를 “마지막 도유” (extrema unctio: In Sent.IV d.23)이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은 서방 신학에서 20세기에 이르도록 존속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직접 천국에 이르도록 준비하는 데에 이 성사의 의미를 두었다. 그는 이 성사를 치유의 성사(medicina, curatio)라고 했지만, 일차적으로는 영혼의 치유(spiritualis curatio)를 생각한 것이다. 즉 죄의 잔재(殘滓)인 영혼의 연약함을 낫게하는 데에 종부성사의 주(主)효과를 두었다. 토마스는 종부성사를 통한 육체적 치유의 효과를 배제하지 않았지만, 단지 이차적인 효과로 간주하였을 뿐이다.
3.3. 공의회의 결정: 기존의 실천을 옹호
피렌체 공의회의 결정문(1439)는 중세의 실천과 신학을 확인한다. “이 성사는 생명이 위독한 환자에게만 수여될 수 있다”. 성사의 효과에 대해서는 다소 열어놓고 있다 “효과는 영혼의 치유, 그리고 유익하다면 육체의 치유까지이다”. “성사의 수여자는 사제이다” (DS 1324f).
이런 노선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도 계속 견지된다.
1) “만일 누가 종부성사는 실제로 그리고 본래적으로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제정되고 사도 성 야고보에 의해 선포된 성사가 아니라 단지 선조들로부터 전래되어온 관습 혹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DS 1716).
2) “만일 누가 거룩한 병자 도유가 은총을 전하지도 죄를 사하지도 환자를 일으키지 못하고, 언젠가 (단지 육체적인) 치유의 은혜만을 주었던 과거의 것이라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DS 1717).
3) “만일 누가 거룩한 로마교회가 사용하는 종부성사의 수여방식이 사도 성 야고보의 말씀에 모순된다, 그래서 그것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것을 무시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DS 1718).
4) “만일 누가 사도 야고보에 따라서 병자의 도유를 위해서 불러야할 ‘교회의 장로들’이 주교로부터 서품된 사제들이 아니라 모든 공동체의 원로이다, 그래서 종부성사의 본래적(proprius) 집행자는 사제만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DS 1719).
이렇게 트리엔트 공의회는 종부성사의 성사성과 죄사함의 효력을 옹호하며 로마 교회의 종부성사 수여 방식이 야고보 사도의 가르침과 위배된다는 비난을 배척한다. 또한 사제가 종부성사의 정식 집행자라는 것을 명시한다. 한 가지 특기할 것은 카논에 앞선 설명 부분에서 종부성사는 병자에게, “특별히” 죽음의 위험에 있는 병자들에게 수여된다고 언급한다. “이 도유가 병자들, 특히 이 세상 생명의 마지막 고비에 처하여있다고 생각되는 병자들에게 실시되어야 하며, 그래서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들의 성사라고 불리운다”(DS 1698). 여기서 “특별히”(praesertim)라는 단어는 오늘날 다른 상황에도 허용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즉 꼭 죽을 위험에 처하지 않은 병자들에게도 수여 가능하다는 것이다.
3.4. 종부성사 대신 병자성사
20세기에 들어서 성서의 증언과 고대 교회사에 바탕을 두고서 새로운 고찰이 이루어졌고 이는 용어의 변천에 이르게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새로운 고찰의 결과를 수용한다. “종부성사 또는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병자들의 도유성사는 이 세상 생명의 마지막 고비에 처한 사람들만의 성사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어떤 신자가 병으로 인한 쇠약이나 노혼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위험을 당하기 시작했을 경우, 확실히 그것은 이미 성사를 받을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되는 것이다”(전례헌장 73). 그리고 공의회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이 성사의 실시가 온 교희의 배려에 속하는 것임을 명시한다. “병자들에게 실시하는 거룩한 도유와 아울러 사제들의 기도로써 온 교회는 고난받으시고 영화로이 되신 주님에게 병자들을 가볍게 해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며(야고 5,14-16), 더욱이 병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자유로이 결합시킴으로써(로마 8,17; 골로 1,24; 띠모 후 2,11-12; 베드 전 4,13) 하느님 백성의 선익에 기여하도록 그들에게 권고하는 것이다”(교회 11항). 1972년에 반포된 병자성사 예식서에 의하면 기름의 축성에서 사제는 “이 육신에 힘을 주기 위하여 푸른 나무에서 마련된 이 기름”이 앓는 이의 “육신과 영혼과 정신을 보호”하고, “모든 고통과 온갖 허약과 갖가지 질병”을 낫게 하는 성유가 되도록 기도한다 (예식서 75항). 로마 예식서(Rituale Romanum, 1614)가 종부성사를 수여하면서 오직 죄의 사함만을 기원한 것과(“주여, 성유 바르는 이 예식으로 자비하신 사랑을 베푸시에 이 형제가 … 지은 모든 죄를 사하소서”)는 달리 새 예식서에 따른 병자성사 수여 경문은 (야고 5,14에 의거해서) 광범위한 기원을 담고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운신 사랑과 가름바르는 이 거룩한 예식으로 성령의 은총을 베푸시어 이 병자를 도와주소서. 또한 이 병자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원해 주시며 자비로이 그 병고도 가볍게 해주소서”(예식서 76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