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성사-들어가는 말


1. 들어가는 말



세례와 성체성사는 교회의 7성사 중에 특별히 중요한 성사로 간주된다(sacramenta maiora). 역사적으로 이 두 성사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트렌트 공의회도 성사일반에 대한 교의에서 이에 대해 암시를 한다: “만일 누가 이러한 신약의 성사들이 서로 동등해서 어떤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결코 더 중요하기 않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1) 이렇게 교회의 두 가지 중요성사 중에서 세례는 그리스도교의 입문성사로서 성사의 첫자리를 차지한다. 이 성사와 관련된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1. 세례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무엇보다도 하느님 백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서,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동등한 품위를 지닌다고 천명하였다. 이런 동등한 품위는 세례성사를 통해서 얻게 된다. 그런 만큼 세례성사의 중요성이 이전보다 훨씬 더 강조되었다. 




1.2. 세례와 구원의 관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구원을 위한 세례의 불가피성이 의문시되었다. 공의회 이전까지의 신학에서는 원칙적으로 세례를 받아야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일찍이 피렌체 공의회(1438-45)는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못박았다: “거룩한 로마 교회는 다음 사항을 믿고 고백하고 선포한다. 가톨릭 교회 밖에서는 아무도 – 이방인, 유대인, 이단자, 교회분열자등 –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없다. 죽기 전에 가톨릭 교회로 돌아오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마귀를 위해 마련된 영원한 불 속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2)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비그리스도인에 대한 구원가능성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였다. 교회헌장에서는 다른 종교인들의 구원가능성 뿐만 아니라, 비신앙인의 구원가능성까지도 인정하였다: “자기 탓 없이 하느님을 명백히 인정치 못하더라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올바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섭리가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주신다”.3) 비그리스도인의 구원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이지 않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세례의 의미는 무엇인가?




1.3.  어린이 세례




어린이 세례의 기원에 대한 교회의 초기 문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3세기 초엽 (오리제네스, 떼르툴리아노)부터 어린이에게 세례를 주는 관습에 대한 기록이 전해질뿐이다. 1940년대 이후 유럽 신학계에서는 유아세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성서에 보면 세례의 전제조건은 신앙의 결단이다. 즉 세례는 복음에 대한 신앙의 응답이다. 그런데 신앙고백을 할 수 없는 어린이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해서 개신교 일각에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바르트는 “잠자면서 세례를 받아서 지금 교회에는 잠자는 신자만 있고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은 적다”고 꼬집었다. 가톨릭 측에서도 발타살이 어린이 세례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적어도 대다수는) 신앙의 결단이 가능한 지원자들에게 세례를 주던 것이 “결단하며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이에 태어나며 들어오는” 그리스도교에로 전환한 것은 “교회사의 여러 결정 중에서 가장 중대한 결과를 낳은 결정”으로 간주된다. 역사적으로는 어린이 세례의 반대자들은 바르트 이전에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재세례파’(Wiedertäufer)가 있었다. 그러나 루터, 칼빈, 쯔빙글리는 어린이 세례 관습을 옹호하였다. 특히 칼빈과 쯔빙글리는 성사에 있어서 신앙적인 면을 강조하면서도 어린이 세례를 옹호한 것은 특이하다고 하겠다.


이렇게 20세게 중반에 개신교와 가톨릭의 신학자들은 어린이 세례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새롭게 어린이 세례의 정당성을 찾게 되었고, 그와 함께 세례의 신학적 의미에 대해서 새롭게 고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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