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데스의 멜리토: 「과월절 설교」

 

사르데스의 멜리토: 「과월절 설교」

리디아 지방에 자리한 도시 사르데스의 주교인 멜리토는 2세기 중엽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 호교서를 헌정하였기 때문에 호교가에 속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 열거된 그의 모든 작품과 마찬가지로 성서주석서 선집에 남아 있는 몇몇 단편마저 소실되었다. 물론 에우세비우스의 목록은 멜리토가 신학의 여러 주제에 관해 많은 작품을 저술한 저자라고 증언한다. 1940년 본너가 그때까지 몇몇 단편만 알려진 「과월절 설교」의 거의 완전한 본문을 새로 발견하여 출판함으로써 멜리토는 유명해졌다. 이전의 어떤 설교가 이러한 주목을 끌지 않았더라면(이른바 클레멘스의 둘째 편지에 이미 더 오래된 설교가 있다), 그 설교는 교회와 문헌의 발전에 관해 수백년 전부터 실질적이고 일반적으로 승인된 이론을 뒤엎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본문을 바탕으로, 특히 루터 이후 개신교에서는 4세기 초 제국교회로 발전하고 제국교회를 선포하는 데 사용한 수사학이 교회를 몰락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멜리토의 「과월절 설교」는 이미 2세기 소아시아 지방의 수사학의 뛰어난 본보기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 관한 활기찬 연구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으며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연구의 내용은 새로 발견된 본문에 근거하여 이전에 빠진 본문을 보완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확실한 비평본의 제작, 현대어로 번역, 주석, 그리고 언어, 문체, 신학 전체에 대한 상세한 분석 및 이 작품에 영향받은 다른 부활절 설교와의 관계 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 설교와 후대의 부활절 논쟁에 관한 사료들에서 알 수 있듯이 멜리토의 소아시아 공동체는 사도 요한이 전한 전통에 따라 춘분 다음 첫 만월이 되는 날이 평일임에도 상관없이, 유다인처럼 니산달 14일에 부활절을 거행하였다. 따라서 이 공동체는 부활절 논쟁 이후 “14일파”라 불렸다. 이들은 그리스도교 부활절의 주요 내용인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과월절의 실현을 회상하기 때문에 니산달 14일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하였다.

160-170년경에 행한 멜리토의 「과월절 설교」는 4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 영광송으로 끝난다. 이 설교의 주제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예형론이다. 짧은 서론에서는 옛 과월절과 새 과월절의 신비를 찬미하기 위하여 출애굽기 12장의 낭독을 언급한다. 제2부에서는 본문의 의역, 사건의 극화, 예형론적 의미로 구약의 과월절을 해석한다. 이 해석에 따라서 제3부에서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희생의 이유와 준비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내용이 방대한 제4부에서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파스카, 곧 그리스도를 예형의 완성과 부활에서 그의 승리로 해석한다. 물론 멜리토는 그리스도를 죽인 것을 반유다적 비방으로 장황하게 서술하며, 역설적으로 하느님의 선행 때문에 그리스도를 죽였다는 것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법행위를 상세하게 묘사한다.

문체적으로 아시아 지방의 수사학적 표현양식이 눈에 띄게 반복되며, 설교 전체의 특징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수사학적 표현양식에는 이소콜라, 네어구의 교차배열법, 대구법, 호모이오텔레우타, 역설, 당착어법, 두운법, 두어첩용 등이 있다. 유다적․고전적 본보기에 따른 표현방식의 배열은 여러 번 시도되었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 작품은 수사학적으로 표현을 완벽하게 다듬은 찬가 형식의 성서주석 강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축일 설교에서는 체계적인 신학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지만 주요 축일의 신비를 근거로 이미 상세히 연구된 신 개념, 창조론, 그리스도론, 구원사, 마리아론, 성서주석에 관한 개별 진술을 많이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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