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선택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나의 선택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죽음을 선택하는 이는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둘 중에 한 사람만 살수 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죽는다 할 때, 살 권리를 상대방에게 양보할 수 있는 사람도 많이 않으리라 생각된다. 오히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이를 그 사지에 몰아 넣을 것이다. 배교자 김여삼이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형제를 팔고, 주문모 신부님을 밀고하려 하였듯이, 나 또한 매 순간 나를 위해서 남을 사지에 밀어 넣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주문모 신부처럼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한 선택, 이웃을 위한 선택을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주문모 신부는 강 골롬바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골롬바 자매님! 나는 목자입니다. 목자가 양을 두고 어디를 간단 말입니까? 늑대가 양들을 잡으려고 덤비고 있는데 그 양을 버리고 나 혼자 달아나란 말씀이십니까? 그렇게는 못합니다. 저도 이곳에 올 때 제 목숨을 이곳에서 바치겠노라고 천주님께 약조를 하였습니다.”




“신부님! 저도 그것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지금 신부님께서 저들의 손에 잡혀서 순교하시는 것과 이 박해가 가라앉은 다음 흩어진 양떼를 모으는 것과 어느 것이 더 신자들에게 유익이 되겠사옵니까?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 성직자는 신부님 한 분 뿐이시옵니다.“




“골롬바 자매님! 저들이 나를 잡으려 죄 없는 신자들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죽이고 있는데 나는 그것을 모른 체 해야 한단 말씀입니까? 나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데?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신자들을 위하여 목자인 내가 존재하는 것이지, 목자인 나를 위하여 신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신부님! 그것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어떻겠사옵니까? 신부님께서 중국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을 조정에서 알게되면 이 박해도 멈추게 될 것이 아니옵니까? 그러니 신부님께서 고국으로 잠시 돌아가시는 것이 신자들을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되옵니다.”


“……”




주문모 신부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골롬바 자매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하여 하는 말 같기도 하였다.




“저- 골롬바 자매님! 제가 중국으로 돌아가면 이 땅에서 저를 찾으려고 더 이상 신자들을 박해하지는 않겠지요?”




“그럼요. 신부님! 신부님께서 중국으로 가셨다는 소문만 조정에 들어간다면 조만간 박해는 잠잠해질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잠시 중국으로 돌아갔다 오겠습니다.”




“……”




이렇게 해서 주문모 신부는 중국을 향하여 발길을 옮겼다. 강 골롬바는 신부님의 순교는 신자들에게는 박해자들의 모진 고문을 이겨내는 힘을 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훗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주문모 신부는 자신의 선택이 이 땅의 신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길을 떠났다. 그것이 천주님의 뜻이길 바라며…. 그러나 천주님의 뜻은 다른곳에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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