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의 사도 강완숙 골롬바

 



  강 골롬바는 주문모 신부님과 함께 했던 6년의 시간을 돌이켜 보았다. 천주님에 대한 열정으로 골롬바로 다시 태어난 그녀. 양반 집이 관헌의 사찰과 가택 수색에서 제외되었고, 더욱이 부녀자가 주인인 집에는 외부 남자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조선 왕조의 사회풍습을 이용하여 신부님을 모시고 이 땅에 신앙의 뿌리를 견고하게 했던 그녀. 그녀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행복했던 순간들과 신앙인이었기에 어려웠던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갔다.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죽음의 골짜기로 들어가려 하니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골롬바는 두 손으로 묵주를 꼭 쥐고 품에 안았다.




“예수님! 당신은 유다의 배반을 알고 올리브 동산에서 유다를 기다릴 때 그 마음이 어떠하셨습니까? 지극한 근심에 피와 땀을 흘리신 당신의 마음을 닮게 해 주십시오. 어머니! 당신께서는 아드님의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으시면서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셨습니까? 저는 예수님을 알았기에 이런 어려움이 닥치고 있지만 예수님을 알았기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입니다. 예수님! 저도 당신께서 걸으신 그 길을 충실히 걸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어머니! 저를 위해 빌어주소서.”




가슴에 묵주를 품고, 마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과 함께 골고타에 오르는 것처럼 그녀는 그렇게 집으로 향하였다.




강완숙 골롬바. 그녀의 지성과 신앙은 당시의 많은 부녀자들을 입교 시켰기에 우리는 그분을 ‘여인들의 사도’라 해도 과찬은 아닐 것이다. 황사영 알렉산델은 강 골롬바를 이렇게 증언하였다.




“강 골롬바는 밤낮으로 돌아다니며 남을 권유해서 감화시켜 조금도 편안하게 잘 때가 없었다. 이치에 통달하고 능란한 말솜씨로 설명해 주어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을 감화시켰다. 또한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의 도움을 받은 골롬바는 모든 자선사업을 고무하고 지도하였다.”




교우들 또한 “강 골롬바는 힘차고 슬기롭게 모든 일을 권고하였고, 교회내의 열심한 남자 교우들도 모두가 기꺼이 그의 교화를 받고 정확하게 그의 의견을 따랐다.”고 증언하고 있다.



강 골롬바는 애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상하 계급이 뚜렷했던 조선 사회안에서 신분제도를 뛰어넘는 평등의식으로 남녀누구에게나 다가갔기에 그녀의 모습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강 골롬바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들 필주 필립보였다.




“어머니! 고생 많으셨습니다. 신부님은 중국으로 가셨는지요?”




“그래! 신부님께서는 떠나셨단다. 그런데 그동안에 포졸들이 들이닥치지는 않았더냐?”




“밖에서 동정을 살피는 사람은 있었사옵니다. 하지만 집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사옵니다.”




“이제 곧 들이닥치겠지…”




강 골롬바는 아들 필립보의 손을 잡았다.




“필립보야! 너는 지금 네가 천주님을 믿는다는 것을 후회하지는 않느냐?”




“아닙니다. 어머니”




“내 아들아! 용기를 내고 천주님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 함께 천당 복을 생각하자꾸나. 그동안의 우리의 신앙을 박해자들 앞에서도 증거해야 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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