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그냥 지나치고 싶은 것들이 있다. 눈 딱 감고 지나치면 나는 피해갈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지나쳤을 경우 어려움은 피할 수 있겠지만 양심의 가책은 피할 수가 없다. 믿는다는 것은 그냥 지나치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리.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하인과 함께 고향 마재에 들렀다가 서울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제 체포령이 발효된 이상 두 번 다시 고향에 가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마지막으로 고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저 앞에서 의금부 도사 일행이 다가오고 있었다.
“서방님! 고개를 숙이시지요. 저들이 서방님을 알아볼까 두렵습니다.”
정약종의 집에서 평생을 몸바쳐온 김 방지거는 고개를 숙이고 약종이 탄 말 옆으로 바짝 몸을 붙이며 속삭였다.
“글세. 고개를 숙인다고 뭐가 달라지는게 있겠는가?”
“지금 잡히면 끝장이옵니다. 어서 고개를 숙이세요.”
“아닐세. 내가 무슨 죄를 지은 죄인이란 말인가? 난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다네.”
“어휴. 서방님! 무슨 죄를 지어서 고개를 숙이란 얘기가 아니지 않사옵니까? 어서…”
순간 의금부 도사 일행이 옆을 지나쳤다. 그들은 정약종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어휴. 십년감수했네. 다행이옵니다. 서방님!”
“방지거 형제!”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이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예. 서방님!”
“저들을 쫓아가서 지금 누구를 찾아가고 있는지 물어보고 오게나?”
“아니 무슨 말씀이옵니까? 뻔한 일 아니옵니까? 분명 천주교 신자들을 잡으려고 저리 급히 가고 있는 것 아니겠사옵니까?”
“그래서 갔다오라는 것일세. 혹시 저들이 나를 찾아서 마재로 가고 있다면 헛걸음하지 말고 이리 오라고 하게나.”
순간 김방지거는 커다란 둔기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아니! 서방님! 간신히 저들의 눈을 피했는데 저들을 데려오라구요?”
“내가 그냥 지나치면 저들은 헛걸음질을 할 것이고, 내가 저들을 피하면 천주님께서도 나를 피할 것이니 저들을 불러오라고 한 것이다. 알겠는가?”
“서-서방님!”
“어서 갔다오라고 하지 않았는가? 천주님의 뜻일세”
김 방지거는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포졸들에게로 뛰어갔다.
“나리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숨을 헐떡이며 김 방지거는 의금부 도사 일행을 붙잡았다.
“왠놈이냐?”
“저! 혹시 지금 마재로 가고 계시는 중이 신지요?”
“아니!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