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영 알렉산델의 백서

 



“이렇게 숨어서 침묵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도움을 청할 것인가?”




박해를 피해 배론의 옹기가마 토굴 속에 은신하고 있던 황사영 알렉산델은 번민에 쌓여 있었다. 조선 교회에서 모시고 있던 단 한 분의 성직자를 새남터에서 잃고, 교회를 이끌고 가던 사람들마저 천국으로 가버린 지금.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는 교우들의 처참한 박해 소식에 그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신자들이 떳떳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한단 말인가?”




마침내 그는 어두운 토굴 안에서 목자 잃은 양들을 구할 그의 구상을 담은 편지를 작성하게 된다. 1만 3천자에 이르는 장문의 백서. 이것은 북경의 주교님께 올리는 피맺힌 기도였다.




“… 현재 교회 사정은 말이 아니옵고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오직 죄인이 요행으로 화를 면하였습니다.…감히 바라옵건데 교황께 자세히 아뢰시어 이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해 주시옵소서. 만일 교황께서 중국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어 중국에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면 조선에서도 종교의 자유가 허락될 것이고, 만일 조선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중국에서 압력을 가하면 될 것이옵니다.… 만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군함  수백 척과 정예군 5-6만을 얻어 대포와 무서운 무기를 많이 싣고 와서 조선 땅에 신앙의 자유를 허락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상호 우호조약을 맺는다면 이 나라에서도 천주님의 구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옵니다.…저희에게는 하루가 몇 해 같습니다. 저희들은 주교님이 지체없이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는 먼저 이 서한을 올리게 된 사정을 말하고 박해로 말미암아 겪게 된 조선 교회의 상황과 주문모 신부님의 자수와 순교에 대해서 세밀하게 보고하였다. 황사영은 교황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책과 청나라 정치권에 의한 개입의 방책과 서양 군사력 동원에 의한 방책을 건의하였다. 그리고 이 편지를 주교님과 안면이 있었던 황심 토마스의 이름으로 옥천희를 통하여 중국으로 보냈다.




황사영은 이 나라 조선을 중국이나 외세에 팔아넘기려는 생각에서 이 백서를 작성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일어설 수 없는 풍전등화와 같은 조선의 천주교회의 상황을 북경 주교에게 알려 도움을 구할 목적과 박해동안에 치명한 순교자들의 행적을 후대에 길이 남길 목적에서 그리고 하루 빨리 박해를 종식시키고 신앙의 자유를 얻고자 하는 바람에서 백서를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굳게 믿었다. 교회의 재건과 민족의 구원은 불가분의 관계요, 교회의 안정만이 당시 가난과 굶주림,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동족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그러나 불행하게도 옥천희가 체포되고 백서는 박해자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황사영을 잡아들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다. 황사영을 체포하지 못하자 부사 이여절은 황가라는 백성을 잡아다 하룻 동안에 40여차례의 악형을 가했다. 그래서 황가라는 백성을 황사영으로 만들어 조정에 보고했다. 그러나 그것이 조작임일 탈로 났고 이여걸은 엄한 형벌과 함께 경상도 하동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황사영은 동료 형제들에게 “일이 극단에 이르면 자기가 있는 곳을 알리시오”라고 자주 말하였다. 옥천희가 황심과의 관계를 실토하고 황심은 교우들의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황사영의 은신처를 알려 주었다. 결국 황사영은 체포되었으나 전혀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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