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물어간다. 그러나 이 해가 저물었다 하여 신유박해가 잊혀져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분들의 신앙은 우리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신유박해를 통해 조선 교회는 주문모 신부님을 잃게 되었고, 긴 시간 동안 목자 없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목자가 없던 시대. 그러나 이 땅의 신앙인들은 평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교회 재건 운동을 비롯한 성직자 영입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갔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 계층도 사대부 중심에서 벗어나 중인 계급의 신자들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박해는 천주교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신자들의 지역적인 분포에 있어서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천주교의 법규나 교리(제사, 단식, 금육)등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부터 신자들의 특징이 확연하게 드러나게 되었기에 신앙생활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주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교우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박해는 거센 바람 속에서 나무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듯 혹독했던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의 마음속에 신앙의 뿌리가 보다 견고하게 내려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 모습에 비추어 보면 얼마만큼 우리가 주저앉아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얼마만큼 신앙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땅의 천주교는 평신도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그렇다면 지금의 평신도들은 어떠한가? 어찌 보면 성직자 중심의 교회조직이 평신도들의 역할을 축소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황이 어찌되었던 간에 지금의 평신도들은 신앙의 선조들의 모습에 비추어 보면 잠자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모든 것에 앞서서 신앙을 선택했고, 그 무엇보다도 먼저 신앙을 증거 했던 그분들의 모습과 지금 우리의 모습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의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지금 벌떡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주문보 신부님께서 자신이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알게 된 즉시 발길을 돌려 의금부로 향하듯이, 내 신앙 또한 그렇게 하느님의 뜻을 찾아 하느님께로 향해야 한다.
물론 오늘날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상황은 아니다. 사회 정의와 가치질서가 무너져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신앙을 지켜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의 선조들은 더 한 상황에서 살으셨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할 만큼 그렇게 절박한 상황 안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아오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것은 그분들 보기에 모두 변명일 수 있다. 남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나 또한 그렇게 산다는 것이 그럴듯한 변명은 결코 아니다.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산다 하더라도 나의 모습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해가 저물어간다. 이 해가 저물어 가면 새로운 해가 떠오른다. 신앙의 선조들도 우리의 신앙을 고대하면서 순교의 칼날을 받았으리….
<그동안 소설 신유박해에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여러 모로 부족했지만 신유박해 200주년을 맞이하여 순교자들의 신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 모든 분들이 신앙의 역사에 관심을 더욱 가져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