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혁(다두)

 

  정인혁(鄭仁赫․다두)이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하였는지는 기록상으로 자세히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그의 문초 기록을 통하여 볼 때, 입교한 후 그가 열성적으로 신자의 본분을 실천하여 그의 약국에 교우들이 모여 강론할 정도로 모범이 되었으며, 체포된 후에도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음을 알 수가 있다.


  1794년(정조 18년)에 이르러 비로소 백상옥(白尙玉)이라는 교우로부터 천주교에 관해 들은 다두는 곧 이 신앙에 입교하여 교리를 실천하였다. 그리고 당시 유명한 교우였던 최필제(崔必悌․베드로)와 연락하면서 일하였으며, 최창현(崔昌顯․요한)에게서 한글로 번역된 천주교 서적 5권을 빌어다 보기도 하였다. 그의 부친이었던 정도홍(鄭道弘)과 형 정사혁(鄭師赫)도 그와 함께 최필공(崔必恭․토마스)과 친하면서 밤낮으로 상통하였다.


날이 갈수록 그의 신앙심은 더욱 굳어 갔고, 또한 매월 7일에는 손경윤(孫景允), 현계흠(玄啓欽) 등과 더불어 김이우(金履禹․바르나바)의 집에 모여 천주교 교리를 강론하였다. 한편, 주문모 신부가 입국한 후에는 그를 만나 보고 첨례(瞻禮)에 참례하기도 하였다. 이때 그는 여기에 모여드는 여러 남녀 교우들과 교제하면서 교리에 대한 깊이를 더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1801년 신유 교난이 시작되자마자, 다두는 여러 교우들과 함께 3월 22일(음력 2월 9일)에 체포되었다. 포청으로 압송된 그는 신부가 있는 곳과 여러 교우들을 고발하고 천주교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당하였으나 결코 자신의 신앙심은 변치 아니하였다. 포청에서는 결국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고 판단하여 그를 형조로 이송하였다.


  형조로 이송된 후 그는 사학을 신봉하고 제사를 지내지 않았으며, 그럼으로써 세상을 미혹케 하였다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리하여 정법(正法)에 의한 참수를 당하니, 때는 1801년 5월 14일(음력 4월 2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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