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발바라는 황해도 재령 지방의 서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직 외교인으로 천주교에 접하지 못하였으나, 무산으로 귀양을 가게 된 남편을 따라갔다가 그 곳에서 조동섬(趙東暹) 유스띠노를 만나 그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우게 되었다. 유배지에서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발바라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남편의 시체를 선산으로 이장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녀는 신앙생활을 보다 열심히 하고 자신의 영원한 삶을 찾기 위하여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 도착한 그녀는 옛날 무산에서 만난 적이 있던 조동섬 유스띠노의 친척 조 숙(趙 淑) 베드로의 집을 오랫동안 찾은 끝에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베드로의 집에서 일을 돌보아 주면서 발바라는 열심히 교리를 배우고 이를 실천하기에 온 힘을 기울였다. 당시 베드로는 권(權) 데레사와 동정부부로 생활하고 있었는 바, 그녀는 그곳에서 진정한 신앙생활을 함께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1817년(純祖 17) 3월(陰) 경에 베드로 부부가 포졸들에게 체포되자, 그녀도 스스로 그들을 따라 포청으로 가서 그들과 같은 문초와 형벌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신앙심을 잃지 아니하고 오직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으며, 오랜 옥중생활 속에서도 서로를 권면하기에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발바라는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고 1819년 8월 3일(陰, 6월 13일, 혹은 5월 21일이었다고도 함)에 참수를 당하여 순교에 이르렀으니, 이때 그녀의 나이는 60세가 넘은 고령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