辛酉迫害
1801년(순조 1)에 일어난 가톨릭교도 박해사건. 1791년(정조 15) 신해박해(辛亥迫害) 이래 조정은 가톨릭교 문제를 놓고 신서파(信西派;가톨릭교 신봉을 묵인)와 공서파(攻西派;가톨릭교를 공격)로 분열, 대립되었으나, 정조가 재위하는 동안은 교도들에게 관대하여 가톨릭교는 교세를 만회하고 94년(정조 18)에는 신부 주문모(周文謨)를 맞이하여 교회의 조직을 정비해 1800년에 교인수가 1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조가 죽고 정순왕후 대왕대비 김씨가 어린 순조의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남인 벽파(僻派)는 남인 시파(時派)의 세력을 꺾기 위해 대왕대비를 움직여 시파와 신서파에 대해 정치적 공세를 취했는데, 이러한 공격의 도구로 채택된 것이 가톨릭교에 대한 대탄압이었다. 1801년 대왕대비 교서로 박해령을 선포, 전국의 가톨릭교도를 수색하였다. 이승훈(李承薰)․정약종(丁若鍾)․최필공(崔必恭)․홍교만(洪敎萬)․주문모 등이 참수되었고, 이 외에도 300여명의 순교자가 생겼다. 신유박해는 한국가톨릭교회에 가해진 최초의 대대적인 박해였으나, 살아남은 교도들은 경기도의 야산지대나 강원도․충청도 등의 산간지방으로 숨어 들어 가톨릭신앙의 전국적 확산을 촉진하였다. 이로써 종래의 지식인 중심의 조선가톨릭교회가 서민사회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신유박해(1801)
1800년(정조24년) 6월(음)-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온화한 정책을 써왔던 정조가 승하.
순조-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 – 대왕대비(大王大妃) 정순왕후 김씨의 섭정
대왕대비- 노론벽파
☞천주교도들과 남인 시파를 일망타진하려고 함. 그러나 국상1)으로 즉시 박해를 시작할 수 없었음(6개월이 지나고 박해시작)
12월 17일- 중인(中人) 최필공이 다시 구속, 사촌동생 필제가 잡힘.
정초에 배교자 김여삼의 밀고로 서울의 회장 최창현을 위시하여 많은 교임들이 잡힘.
정월 10일- 공식박해령을 내려, 오가작통법에 의거, 전국의 천주교인을 빠짐없이 고발케 하고, 배교하지 않는 자는 역적으로 다스려, 뿌리째 뽑도록 하라는 엄명을 전국에 내림.
1월 19일
정약종 – 책고리짝이 발견. 양근에서 박해를 피해 서울로 이사왔던 정약종은 신변이 점점 위험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가지고 있던 천주교 서적과 성물, 그리고 주문모 신부의 편지 등을 담은 책고리 짝을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다 발각된 것.
상소문- 천주교를 엄단하라는 상소문이 연달아 올라옴.
2월 9일 – 이가환, 홍낙민, 정약용, 이승훈 잡힘.
이어서 권철신, 정약종도 잡혀서 의금부에 갇힘
남인의 중요한 지도자인 동시에 천주교의 지도급 인물들인 이들의 국문은 2월 10일 시작하여 26일까지 계속됨.
결과
정약종, 홍락민, 최창현, 홍교만, 최필공, 이승훈 등 6명은 참수.
이가환, 권철신 – 옥사
정약용, 정약전- 배교 각각 경상도와 전라도로 유배.
박해 확산
이존창 2월 9일 공주옥에 갇힘.- 서올로 압송. 2월 26일 정약종 등과 함께 사형이 언도되었으나 이틀 뒤 공주로 다시 이송되어서 참수.
여주와 양근의 천주교인들은 전년도에 이미 잡혀 서울로 압송되었고, 그들의 결안(結案)이 확정된 후 각기 본고향으로 보내 사형에 처하여 일반 대중을 경고케 함.
3월 13일 여주 성문 밖에서 5명이 순교.
-원경도, 임희영, 최창주, 이중배, 정종호.
양근에서도 같은 무렵에 10여명이 처형
-유한숙, 윤유오…
4월 2일 또다시 6명이 사형에 처해짐.
정약종의 아들 철상, 최필공의 사촌인 필제, 중인 정인혁, 여교우 윤운혜, 정복혜, 이합규 등
2월 말 – 주문모신부 자수
남인의 주요인물들이 모두 참수 또는 옥사, 유배됨으로써 끝날 것으로 보였던 박해는 3월 12일 주문모 신부의 자수로 가열. 주문모 신부는 조선에 입국한 이래, 강완숙의 집에 거처하면서 전교에 힘써왔는데, 포졸들이 그의 거처를 탐지하고 덮쳤으나, 미리 이를 알아차린 주신부는 다른 곳으로 피하여 체포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도피로 집 주인 강완숙 일가와 많은 교우들이 잡혀 들어가자, 주신부는 자기로 인하여 많은 교우들이 고통을 받게 됨을 알고 자수키로 결심하였던 것.
주신부에 대한 국문으로 이희영, 김이백, 김건순, 강이천 등 9명이 잡히었으며, 주신부를 한 때 궁안으로 피신시킨 사실과 세례받은 일이 드러나, 은언군 이인의 처 송씨와 그의 자부 신씨에게는 사약이 내려졌고, 그 여파로 강화에 유배 중이던 은언군2) 자신에게도 사약이 내려짐.
주신부- 4월 19일 군문효수
4월 20일 – 김건순, 이희영 등이 서소문 밖 형장에서 처형.
주신부를 6년간 헌신적을 도왔던 강완숙- 2월 24일 아들 홍필주와 함께 잡혀, 궁녀 강경복, 전 궁녀 문영인, 최인철, 김현우, 등 8명이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