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종교분열 전야의 교회
14-15세기에 있어서 유럽의 그리스도교 세계는 중앙집권 정치체게 또는 지방분권화의 정치적 상황으로 단일성을 상실하였다. 또한 교회는 일련의 대사건 즉 교황청의 아비뇽 환도와 서구의 대이교(大離敎)로 인한 교황권의 악화로, 공의회 우위 사상의 흐름 속에서 이단 운동이 발생하여 혼란 속에 빠졌다.
프랑스인들이 교황으로 뽑히면서 그들이 프랑스의 아비뇽에 머무는 70여년 동안(1305-1377) 교회는 중심을 잃고 크게 흔들렀으며, 교회 개혁 또한 지지부진하개 되었다. 교황청이 로마로 다시 천도한 후에 교회는 세명의 교황이 선출됨으로써 서로가 자신을 정통 교황이라고 주장하게 되고 이로써 교회 전체가 분열된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1414년에 열린 콘스탄스공의회(1414-1417)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렸고 이후 분규는 끝났으나 그 후유증은 오래 남았으니 영성의 쇠퇴, 신학의 퇴보, 교회 쇄신 작업의 실패로 교회는 날로 흔들려 갔다.
한편 이 시대 일반 대중의 신심생활을 매우 활발하였다. 수많은 성당이 건립되고 자선 활동과 신심서의 보급이 활발해지고, 모국어로 성가가 번역되었으며, 새로운 신심이 번창하였다. 그러나 이 시대의 신심은 개인주의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고 현세적두려움을 피하고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치중하여 미신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교회 안에서는 비난과 함께 개혁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져갔다.

2-15. 종교분열 전야의 교회
14-15세기에 있어서 유럽의 그리스도교 세계는 중앙집권 정치체게 또는 지방분권화의 정치적 상황으로 단일성을 상실하였다. 또한 교회는 일련의 대사건 즉 교황청의 아비뇽 환도와 서구의 대이교(大離敎)로 인한 교황권의 악화로, 공의회 우위 사상의 흐름 속에서 이단 운동이 발생하여 혼란 속에 빠졌다.
프랑스인들이 교황으로 뽑히면서 그들이 프랑스의 아비뇽에 머무는 70여년 동안(1305-1377) 교회는 중심을 잃고 크게 흔들렀으며, 교회 개혁 또한 지지부진하개 되었다. 교황청이 로마로 다시 천도한 후에 교회는 세명의 교황이 선출됨으로써 서로가 자신을 정통 교황이라고 주장하게 되고 이로써 교회 전체가 분열된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1414년에 열린 콘스탄스공의회(1414-1417)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렸고 이후 분규는 끝났으나 그 후유증은 오래 남았으니 영성의 쇠퇴, 신학의 퇴보, 교회 쇄신 작업의 실패로 교회는 날로 흔들려 갔다.
한편 이 시대 일반 대중의 신심생활을 매우 활발하였다. 수많은 성당이 건립되고 자선 활동과 신심서의 보급이 활발해지고, 모국어로 성가가 번역되었으며, 새로운 신심이 번창하였다. 그러나 이 시대의 신심은 개인주의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고 현세적두려움을 피하고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치중하여 미신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교회 안에서는 비난과 함께 개혁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