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생활의 기원, 교계제도의 완성

 

수도생활의 기원




  완덕에 이르고자 복음의 권고에 따라 재산과 결혼, 그리고 자아를 단념(청빈, 정결, 순명)하는 금욕생활은 이미 사도시대 때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 안에서 고유한 신분을 이루고 제도화되기에 이른 것은 3세기에 와서이다.




  수도생활은 처음에 혼자서 하는 은수생활로 시작되어 차차 여럿이 함께 하는 공주(共主)생활로 발전했고, 이집트에서 시작하여 동방 전역에 빠르게 전파되었다.  바실리오는 수도생활의 요소를 자기 구원과 교회및 사회에 대한 봉사로 규정하고, 이러한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규칙서를 만들었으며 그것은 곧 동방 전역에 보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방은 아타나시오에 의해 처음으로 수도생활이 소개되었고 이어 암브로시오, 예로니모,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장려되었다.  또한 요한 카시아노는 수도규칙서와 수도생활의 경험담을 담은 대화집을 썼는데 특히 규칙서는 후일 베네딕도 성인의 수도규칙 작성의 기초 자료가 되었다.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데 있었고 박해시대에는 순교가 그리스도를 본닫는 데 가장 숭고한 형태로서 순교에 대한 열망은 그리스도교 신심의 척도가 되었다.  그러나 3세기에 이르러 박해가 끝나고 평화시대가 오자 순교에 대한 신심은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였다.


  즉 동정생활과 속세 이탈 등과 같은 고행과 금욕의 생활이  순교에  의한 실제적 죽음과 대치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방법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새로운 길로 환영 받았다.  뿐만 아니라 세속을 떠나는 이러한 수도 생활은 세속화 하는 당시 국가교회에 대한 견제 역할도 하였다.






  1-9. 교계제도의 완성




  이 시기에 본당이 설립되고, 성직자의 독신제, 수도대주교, 초대주교, 교황의 수위권 등이 새로 발생 또는 크게 발전함으로써 교계제도가 거의 완성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 도시를 중심으로 전파되던 신앙이, 5세기부터 지방과 농촌에도 신자단이 생기게 되면서  주교들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본당이 설립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주교의 사목을 도울 사제도 필요하게 되었다.  사제의 독신제는 동  서방이 다르게 발전했다는데 서방에서는 사제의 결혼이 4세기부터 교회회의와 교황들의 훈령을 통해 금지됨으로써 사제의 독신제가 입법화되었다.




  수도대주교 직(職)과 총대주교 직은 로마국가의 행정조직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발전했다.  한 주(州)의 주교들이 그  주의  수도대주교들을 중심으로 뭉침으로써 수도대주교 직이 발생했다. 수도(관구) 대주교는 관구회의를 소집하고, 공석인 주교의 선출, 유효여부를 확인하고 성성하는등 일종의 우위권을 행사했다.  이러한 발전의 최고 단계가  총대주교  직이었


다.


  니체아 공의회는 이러한 직책의 관습적인 권한을 인정하면서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주교에게 로마 주교와 같은 총대주교 직 권한을 인정하고 또한 예루살렘 주교를 영예 총대주교로 신임했다.  이들 교회들은 서로 협력하면서도 각자 서로 다른 역사를 걸으면서 발전하였는데 로마를 제외한 다른 교회부터 파생된 교회들을 일반적으로 동방교회들이라고 부른다.




   중세기로의 과도기(450년 – 750년)      375년 경, 아시아에 있던 훈족의 동유럽 침입으로 시작된 이른바 민족대이동은 근 2세기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이들 새 민족들은 476년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각기 제국 내에 정착하여 많은 국가들을 건설했고, 교회는 우선 이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문화를 전했다.




  게르만족에 대한 복음화 작업은 무려 8백여 년이 소요되었다.  그것은 비잔틴과의 불편한 관계 아래서 새로 등장한 이슬람(아랍)세력과도 대항하고 또 이미 아리우스파로 개종한 게르만족의 박해를 받아가며 진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편 ‘프랑크’족과 ‘앵글로 색슨’족은 가톨릭신앙을 직접 받아들인다. 프랑크족의 개종은 아직 피상적이었지만 그것이 장차 그리스도교적 서구를 형성할 기원이 되었다는 접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처럼  6  7세기에 교회는 대회적으로 새로운 민족인 게르만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교화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내적인 일도 등한시되지 않았다.  즉 여러가지 전례가 형성되고, 축일도 많이 생겼고, 종교예술이 성했으며 전례와 성사 분야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와 개혁이 있었다.  (450년 – 7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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