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단체의 진출과 창설
수도회는 외국에서 조선에 진출하였거나 창설되었는데 모두 여자 수도 단체였다. 조선에 들어온 수녀회는 미구계 ‘메리놀 수녀회’, 독일계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스위스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있었고,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예수 성심 시녀회’ ‘성가회’는 모두 이 땅에 창설된 최초의 방인 수녀회였다. 이 방인 수녀회들 중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는 당시에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고 다른 두 수녀회는 발족한 상태로 서 광복 이후에 정식 수도 단체로 발전하였다.
‘메리놀 수녀회’는 1924년 10월에 진출하여 당시 평양지목구에서 포교와 사목에 종사하던 ‘메리놀 외방 전교회’의 사제들을 도왔다. 1년 후에 두번째로 입국한 6명의 수녀들 중에는 미국에서 입회한 2명의 조선인 수녀들이 끼어 있었다. 1926년에 수녀회는 평안도 영유(永유)에 지부를 설치하고 의주, 신의주, 진남포, 평양 등지에서 본당 사목 외에 고아원 운영, 의료 사업, 소녀들의 기예(技藝) 교육 등에 종사하였다.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덕원 대목구의 사우어(Bonifatius Sauer, 1909-1950) 주교의 요청으로 4명의 수녀들을 파견하였다. 수녀들은 덕원 대목구 관할 구역에서 선교 활동 및 방인 수녀 양성과 함께 병원, 유치원, 국민학교를 경영하였다. 연길대목구의 브레허(Theodorus Breher : 백 화동-白化東, 1889-1950) 주교의 요청으로 1931년에 진출한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여성에 대한 전교와 교육, 의료 사업, 방인 수녀 양성에 종사하였다. 조선인 지원자들은 샬트르 성 바오로회‘가 파견한 수녀들의 도움을 받아 수도 생활을 익혔다. 1939년까지 20여 명의 수녀들이 파견되었고 1935년부터 1942년 사이에 21명의 방인 수녀들이 서원하였으며 1945년에 이르기까지 7개 본당에 분원을 설치하였다.
최초의 방인 수도 단체로서 한국 수도회 역사에 있어서 신기원을 이룬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는 평양지목구의 책임자였던 모리스(John E.Morris, 1889-?) 몬시뇰의 위촉을 받은 ’메리놀 수녀회‘의 수녀들이 평양의 상수구리(上水口里)에 수녀원을 세웠고 1932년 6월 27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축일에 4명의 입회자와 2명의 지도 수녀로 구성된 수도 공동체를 창립하였다. 1938년 2월 18일에 교황청으로부터 설립 및 회헌에 대한 인준을 받은 이후로 1940년에 11명의 첫 서원자들을 배출하였고 1945년까지 평양(관후리), 신의주, 비현, 영유, 안주, 의주 등의 본당에 분원을 설치하였다.
두 번째의 방인 수녀회인 ’예수 성심 시녀회‘는 경상도 영천 지방에서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델랑드(Louis Deslandes : 남 대영 – 南大榮. 1895-1972) 신부에 의해서 창설되었는데 복음 삼덕(福音三德)을 수련한다는 의미에서 ‘삼덕당’ 이라는 이름으로 동동체 생활을 시작하였다. 1936년에 무의탁 노인들과 고아들을 돌보는 ‘성모 자애원’을 운영하면서 예수 성심의 나라가 가난한 이들 안에 임하도록 하라는 소명을 갖고 다방면의 사회 사업에 봉사하였다. 1942년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모든 회원들이 4개월의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1952년 대구대목구장의 인준을 받았고 오늘날의 명칭인 ‘포항 예수 성심 시녀회’로 개명됨).
경성대목구에서 처음으로 설리된 방인 수도회인 ‘성가회’는 백동(지금의 혜화동) 성당 구내에 본당신부인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싱거(Pierre Singer : 성 재덕-成載德, 1910- ) 신부의 도움으로 ‘동정녀들의 집’을 마려하였다. 1943년에 수도회 규칙이 제정되고 ‘성가 소비녀회’(聖家小卑女會)로 개칭하면서 나자렛 성가정을 본받아 노동을 존중하며 청빈으로 불쌍한 이웃을 돕는다는 이념을 갖고 발족하였다. 1945년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파견한 수녀들의 도움으로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성가회는 1949년에 회칙이 교황청의 인준을 받았고 1950년대부터 사목, 자선, 교육에 종사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