恩彦君 1755~1801(영조 31~순조 1)
조선 후기 왕족. 이름은 인. 장헌세자의 서자이다. 1771년(영조 47) 상인들에게 빚을 지고 갚지 않은 것이 영조에게 발각되어 은신군(恩信君)과 함께 직산현(稷山縣)에 유배되었다가 제주도(濟州道) 대정현(大靜縣)에 위리안치되었다. 74년에 풀려나 영조가 죽자 수릉관(守陵官)이 되었으며 77년(정조 1) 흥록대부에 올랐다. 86년 아들 상계군(常溪君) 담(湛)이 모반죄에 연류되어 독살한 사건으로 강화도(江華島)에 처자와 함께 유배되었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 부인 송씨(宋氏)와 며느리 신씨(申氏)가 청(淸)나라 신부 주문모(周文謨)로부터 영세받은 사실이 발각되어 함께 사사(賜死)되었다. 49년 손자인 덕완군(德完君)이 철종으로 즉위하자 작위가 복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