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세례 성사 강론 모음

 

    3. 성인 세례성사 강론






3-1. 세례 예식은 하느님 백성이 되는 입문식 –—–(조순창 신부)




  우주를 주관하시고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시는 전능하시고 인자하신 하느님 계심을 믿으시는 여러분이 오늘 ‘세례를 받음으로써 구원받는다’는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시고 세례를 받으십니다.


주위의 권유 또는 자신의 마음의 결심에 따라 수녀님이나 교리교사의 지도로 오늘 성체성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요한3:5) 불신과 부조리와 불의와 부정이 있는 현세의 생활 속에서 믿음과 신뢰, 사랑으로 봉사하여 그리스도와 또 이웃과 일치함은 가치있고 보람된 일입니다.




  기쁜 소식을 듣고 믿으시고 교리를 준비하시고 잘못을 참회하고 그리스도의 교훈대로 사랑을 바탕으로 새생활을 하시려는 여러분들은 지금 미신과 마귀와 죄를 끊어버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께 마음을 돌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려는 것입니다.




  성세성사로써 여러분은 ‘인류의 죄’(원죄“와 ‘우리 자신의 죄’)와 벌까지도 용서받게 되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따라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또 이로써 천국의 상속자가 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원이 되어 하느님의 백성이 됩니다.




  성세는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문이며 이 문을 통해서 구원의 길로 나가게 됩니다. 성세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사람으로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되므로 여러분에게는 새생활의 결심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인호를 받으시니 교회 예식에 한 형제자매로서 우애를 가지고 참례하고 말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신자답게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대부모의 지도를 받으며 열심한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신앙고백과 참회, 새생활에의 결심, 한 형제로서의 우애, 교리교사들이나 수녀님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열심히 그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은 자연히 여러분들을 열심한 신앙생활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심어진 신앙의 씨가 겨자씨와 같이 거대한 쓸모있는 나무로 성장하시고 은총으로 하느님의 자녀되시기 바랍니다. 많은 열매 맺으시어 신앙으로 보람을 느끼며 이웃도 하느님께로 이끄는 데에 열성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세례받은 그 순간부터 여러분에게는 사도직이 주어지기 때문에 세상의 빛이 되시고 소금이 되시어 복음을 전하는 사도 노릇을 실천하셔야 합니다.  












  3-2. 세례식 강론(하느님의 자녀로서)-———-(이형수 신부)




  이제 곧 성세 성사를 받으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일평생 잊을 수 없는 귀중한 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즉 여러분은 이제 영원한 참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려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어머니의 태중에서 처음 세상에 태어났던 그날, 생일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모님께로부터 받은 이 생명은 단 하나 밖에 없는 귀중한 것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죽음으로써 끝나버리고 말 것 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세성사를 통하여 여러분은 다시 태어남으로써 다시는 죽어버리지 않는 영원한 생명, 참된 생명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이 생명은 우리가 처음 부모님께로부터 받은 육신 생명보다 훨씬 고귀한 것이며 오늘의 이 생일은 무엇보다 귀중하고 영원히 잊지 못할 날입니다.




  성세성사를 받음으로써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신앙생활, 영원한 참 생명을 희망하며 그것을 향해 매진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성세성사로써 여러분은 직접적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고아들처럼 영적으로 방황하는 외롭고 쓸쓸한 생활을 하며 일정한 영혼의 보금자리, 안식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성세성사를 받음으로써 더할 수 없이 거룩하시고 전능하시고 사랑이신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됩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마음 든든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여러분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여주신 줄기찬 노력과 인내와 신앙 생활에 대한 갈망과 충실함이 성세성사를 받았다고 해서 정지될 것이 아니라 오늘을 출발점으로 해서 더욱 열과 성을 다하여 매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믿음이 더욱 깊어지고 견고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천주교 신자로서의 모든 본분에 충실해야 할 뿐만아니라 여러분의 착실한 신앙생활이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빛을 주어서, 그들도 교회 안으로 들어와 오늘 여러분이 누리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성세성사를 받은 우리 모든 신자들의 근본 의무인 것입니다.




  끝으로 뒤에 계시는 대부, 대모님들께 당부합니다.


대부, 대모님들께서 오늘 성세성사를 받은 분들과 일평생 맺어지는 이 영적 친교가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아름답고 의미깊은 일인지를 깨달으셔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항상 대자, 대녀들과 끊이지 않는 유대를 가지시고 격려하며, 말과 행동으로 신앙으로 선배다운 모범을 보임으로써 하느님 앞에서 사랑스런 자녀가 되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신자 여러분이 처음 영세할 때 가졌던 그 감격과 하느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과 신앙에 대한 충성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오늘 영세하는 이분들 위에 하느님의 강복이 풍성하기를 기도합시다.














        3-3. 세례식 강론 ———– (이기명 신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누구에게나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따라 다르고 그 수도 많겠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으뜸인 것은 “몸과 마음의 편안함!”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을 누가 깨뜨리거나, 이 편안함을 자신이 누릴수 없다는 것은, 돈이나 물질적인 가난에서 오기도 하겠지만, 돈과 재산이 그것을 다 채워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는 돈과 재산이 넉넉히 있으면서도 편안하지 못하고, 그런가하면 누구는 별로 가진 것이 넉넉치 못해도 편안한 생활을 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별로 갖고있는 것이 없어도 세상을 즐겁고 의욕있게, 가족들과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무슨 힘으로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하겠습니까?


그것은 돈과 재산에 자신이 매이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현세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관리할 줄 알면서, 정신과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갈 줄 아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일, 일과 재산, 그 모든 것을 사람답게 관리하고 처신한다 할지라도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 안에 부족을 느끼고, 더욱이 자신의 영원한 삶을 지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존경하며 의지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는, 어이없이 무능하기 짝이 없고, 한숨과 눈물만을 흘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 살아서 부족함이 없다하며 의욕있게 살아간다고 하지만, 자신의 삶을 빼앗아 가는 죽음 앞에서는, 우리는 누구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현세의 우리뿐만 아니라 옛날에 살던 사람들도! 살아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갖게 되는 공포의 대상이며, 인간 뿐아니라 생명을 가진 세상 만물이 가지고 있는 약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며, 그것을 해결해 주실 분은 없을까?…


여러분은 교리를 배우셔서 알아들으셨을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당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이 문제를 우리에게서 해결해 주신 분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능력을 가지신 분을 찾고 알아 모시는 것이!/ 우리가 어떤 처지에서 어떤 생활을 하던지간에 현세의 우리 삶의 의미이며, 최대의 행복이며, 보화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서 요한 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라고 하는 유대 지도자 중에 하나이며 학자인 그는 어느날 예수께 밤에 찾아와 “착하신 스승이여, 어떻게 하면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물음에 예수님은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하였습니다.


이러한 대답에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어가지고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하고 되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물음에 예수님은 대답해 주시기를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야한다!”고 밝히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또 성서의 다른 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는 가서 만민에게 내가 일러준 바를 가르치고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세례를 주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라!”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찾으신 것도! 세례를 받으시고자 하는 것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아버지신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자녀로 다시 나는 것! 그분을 알아, 그분의 뜻대로 살아서 영원한 생명을!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것을 위해 우리가 이처럼 모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그 모든 준비를 해왔다고 하겠지만, 이 순간에 무엇이 더 필요하다 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그분을 외면해온 삶을 통해, 하느님과 이웃을 거스리고 자신의 성미대로 살아옴으로써 지은 죄를 뉘우치는 것! 또한 아버지신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와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겠다는 굳은 신앙을 주님 앞에 고백하며, 이 예절에 임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4. 성인 성세성사 예절 강론


               독서 : 로마 8.14-17, 26-27(성령을 힘입어 “아빠, 아버지”라 부른다)


                 복음 : 마태 16.13-18(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무엇보다도 먼저 오늘 세례를 받게될 예비자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또 축하드립니다. 사실 누구보다도 여러분을 환영하고 오늘의 일을 기뻐하실 분은 주님이실 것입니다. 할수만 있다면 우리 주님의 기쁨과 환영의 뜻을 대신해서 전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또 한가지는 오랜 시간동안 교리를 열심히 배워온 여러분들의 노고와 가르치신 분들의 수고입니다.


그 배움이 또 다른 뜻이 있는 것은 그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에 대한 것이고 그 생명의 주인에 대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 동안 교리실에서 이 귀중한 진리를 사이에 두고 가르치신 분이나 배우신 여러분의 모든 노고에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교리시간에 배운데로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살려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어떤 중대한 일을 앞두고 물로 몸을 씻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하늘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과거를 보러 갈 때에는 목욕제계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부정이나 허물을 씻는 의미에서 정결례를 행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오늘날도 인도인들은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함으로써 정결한 자가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것들은 물이 지니는 생명의 근원성과 동시에 파괴와 정화의 능력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여된 상징적인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역시 세례성사, 즉 초자연적 생명에로의 재생의 표징으로 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에 잠기고 씻음으로써 과거의 생활을 씻어버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전에 세례자 요한이 회개의 표시로 세례를 물로써 주었던 일과 예수님께서도 직접 물로써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임하신 성령은 물과 성령으로 인한 새로운 창조를 상징하는 것이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세례를 받을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성령의 은총은 앞으로 여러분의 믿음의 생활 안에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물과 성령으로 인해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된 여러분은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동시에 여러분은 믿음 안에서 오늘 복음에서 사도 베드로가 고백한 것처럼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써 여러분은 참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수많은 공장에서는 인간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 많은 공장 중에서 여러분, 글공장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아니면 사과공장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저나 여러분 모두나 이런 공장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고 또 앞으로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주인, 생명을 창조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생명의 공장의 사장님인 셈입니다.




  우리는 오늘 세례를 받음으로써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 귀중함의 의미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누리는 짧은 생명은 그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주실 영원한 생명과는 비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보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비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 이런 영광스런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영광에 동참함과 동시에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수난에도 동참해야 합니다. 이것은 내적으로 새롭게 된 여러분의 외적인 삶 역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하느님의 자녀로서 이제 여러분도 그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웃의 가난한 자에게 병들고 외로운 자에서, 불의를 당하는 자에게 위로가 필요한 자에게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 여러분이 갖게된 신앙을 삶으로써 표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여러분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나 밖에서나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전 교회 공동체가 협력해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여러분이 느끼는 오늘의 기쁨과 환희와 열정은 오래 못갈지도 모른다는 일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간곡히 말씀드리고자하는 것은 오늘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쁨과 환희와 열정은 다시 한번 걸러(여과)질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보다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성숙과정 안에서 오늘의 여러분의 감동은 영원한 영원의 양식으로 남을 것입니다.




   아기 때 먹은 어머니의 젖을 우리가 뚜렷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성장의 바탕이 된 것처럼 오늘이 여러분의 신앙인으로서의 삶에 커다란 바탕이 될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의 기쁨과 순수함을 꼭 기억 속에 저장해 두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세례를 축하드리면서 하느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아멘. 
































   3-5. 세례식: 강론(253항)




  이제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세례성사를 받으실 여러분에게 이 성사의 의미를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베드로 전서 3장 18절에서 21절을 보면 그 의미를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노아가 홍수에서 구출된 것은 그리스도인이 세례의 물로써 구원될 것을 예시하며, 또한 세례는 몸에서 더러운 때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양심으로 살겠다고 하느님께 서약을 하는 것이며, 세례는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얻게 될 해방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노아 홍수 때의 물이 그리스도인이 세례의 물로써 구원될 것을 미리 보여준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느님께서 타락한 인간 세상을 정화하시고, 새로운 계약을 “남은 자들”과 체결하십니다.


이 구약의 계약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으로 이 세상의 죄를 없애주시고, 당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세례는 우리를 죄로부터 정화시키고, 정화된 우리는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몸 뿐만 아니라 마음마저도 깨끗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깨끗하다함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제까지의 자신의 그릇된 삶을 솔직히 인정하고, 하느님을 모르고 살았던 때의 잘못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이전의 삶의 상태에서 180도 회전하여 하느님의 길로 나아감을 의미합니다. 세례를 받는다고 함은 바로 이런 회개를 필수 전제조건으로 합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은 바로 이런 회개를 위해 긴 준비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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