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리베리오 교황 Liberius 352~366
교황 리베리오는 352년 5월 17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353년 이래 로마 제국의 전제 군주로 군림하였던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는 아리우스주의를 서방에서도 허용하기를 원하였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시노드를 2번이나 소집하여 아타나시오에 대한 단죄를 재확인하였고,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 내용과는 거리가 먼 내용을 승인할 것을 요구하였다. 더욱이 두 명의 교황 특사들이 시노드의 결정에 서명을 했으나, 교황 리베리오는 그 서명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까닭에 355년 황제는 교황 리베리오를 트라키아(Thrazien)로 추방하였다. 그리고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는 펠릭스 2세를 대립 교황으로 옹립시켰다. 유배 중의 리베리오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에 명백히 반대되는 선언문에 서명했다. 이로써 교황 리베리오는 황제에게 로마로의 귀환을 구걸하게 되었다. 그러나 리베리오의 귀환을 통해 로마 교회에 대한 위상은 매우 약하게 되었다. 358년에 로마 공동체는 대리비 교황 펠릭스 2세를 로마 도시로부터 몰아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안에는 분열이 존재했다. 교황 리베리오는 366년 9월 24일에 서거하였다. 교황 리베리오에 대한 기념은 자신의 이름에 따라 명명된 ‘리베리오 성당’, 즉 마리아 대성당에서 생명력을 이어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