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스테파노 9세 교황 Stephan Ⅸ. 1057~1058
로트링겐(Lothringen)의 공작이자 몬테카시노(Montecassino) 수도회의 대원장이며, 추기경이었던 프리드리히(Friedrich)는 빅토리오 2세 교황 서거 4일 후인 1057년 8월 2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그는 교황의 특사로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주재한 바 있었다. 그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주재할 때 분열이 일어났다(1054년). 사람들은 스테파노 9세가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독일에 문의하지 않았다. 이로써 1046년 황제 하인리히 3세와의 약속이 파기되었다. 교황으로 선출되고 난 후, 몇 주간이 지나서 교황 스테파노 9세는 승인을 요청하였다. 교황 스테파노 9세는 자신의 선임자들처럼 교회의 쇄신과 개혁의 방향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것은 결국 독일의 황제권으로부터 교회의 자유와 독자성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훔베르트 추기경 역시 – 1054년 교황의 특사로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주재하였다 – 1057/1058년에 출간된 『성직매매주의자들에 대항하여』(Gegen die Simonisten)라는 저서를 통해 이러한 사상을 주장하였다. 훔베르트 추기경은 성직 매매를 이단으로 파악하였다. 교황 스테파노 9세는 1058년 3월 29일 여행 도중 피렌체(Florenz)에서 서거하여, 거기에 안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