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 베네딕토 13세 교황 Benedikt ⅩⅢ. 1724~1730
교황 베네딕토 13세의 원래 이름은 피에트로(Pietro Francesco Orsini)였다. 그는 1649uss 2월 2일에 바리(Bari) 근처에서 출생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18세 때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으며, 23세 때 여러 차례 거듭된 사양에도 불구하고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1686년 베네벤토(Benevent)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1724년 5월 29일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진지한 목자 또는 이웃 사랑의 실천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교황으로서 소박한 삶을 살았고, 화려한 교황 집무실의 사용을 사양하였다. 그 대신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수사들이 거주하는 방에서 살았다.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자신의 교황명을 베네딕토 14세로 선택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대립 교황 베네딕토 13세를 인정하지 않았던 로마인들이 이에 대해 항의하였다. 그 결과 베네딕토 13세라는 이름은 교황 인명록에 두 번 등장하게 되었다.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교회의 규율을 확고하게 다지고 교회의 생활을 쇄신하려고 노력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3센ㄴ 자신의 재임 기간 중 알로이시오 곤사가, 요한 네포묵, 스타니슬라오 코스트가 그리고 십자가의 요한 등을 시성시켰다.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정치적인 감각을 별로 지니지 못하였다. 정치적인 사안을 니콜로(Niccolo Coscia)에게 위임하였으나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니콜로를 대주교와 추기경으로 임명하였으나 그는 교황의 위임을 수행하기에는 부적절한 인물이었다. 니콜로는 바티칸의 재정을 장악하였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무제한적으로 재산을 착복하였다. 아울러 외국으로부터 뇌물을 받기도 하였다. 니콜로의 해임을 교황에게 건의하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교황 베네딕토 13세 서거 후 니콜로는 재판에 회부되었고, 그에게 십 년간의 감옥형과 십만 스쿠디의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아울러 부당한 방법으로 취득한 재산의 반환도 선고되었다.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개인적으로는 매우 존경을 받은 인물이었으나, 니콜로 때문에 그의 교황 재임 기간은 어두운 그늘에 가려졌다.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1730년 2월 21일 서거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