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14세 교황 Benedikt 14.

 286. 베네딕토 14세 교황  Benedikt ⅩⅣ.  1740~1758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원래 이름은 프로스페로(Prospero Lambertini)였다. 그는 1675년 볼로냐에서 출생하였다. 1727년 안코나(Ancona)의 대주교로 임명되었고, 1728년 추기경에 서임되었으며, 1731년 볼로냐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베네딕토 14세를 교황으로 선출하기 위한 선거는 근래의 교황 선거 역사상 가장 오래 걸린 선거였다. 선거는 6개월이나 걸렸다. 1740년 8월 17일 베네딕토 14세는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대주교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시성과 시복에 관한 신학적인 저작을 저술하고 교구 시노드에 관해 저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저술한 두 권의 저서는 오랫동안 중요한 의미를 지닌 저작으로 인정받았다.


  학자로서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학문을 애호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프리드리히 2세를 프로이센의 국왕으로 인정하였다. 전례 논쟁과 관련해서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중국의 관습을 전례 안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다. 미사 전례와 관련된 모든 행동은 미신적인 요소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이러한 결정의 이유였다. 1744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인도의 ꡐ말라바르 의식ꡑ을 단죄하였다. 이러한 결정으로 교회의 선교 사업은 손상을 입었다. 


  교황 베네딕토 14세 재임 기간 중에 예수회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났다. 이들은 예수회를 해체시키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모색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포르투갈의 예수회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포르투갈의 경우 폼발(Pombal) 수상이 예수회와 대적하여 투쟁하고 있었다. 교황의 이러한 태도는 예수회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교회 내적으로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금서 목록을 수정하였다. 그리고 금서 목록을 정하는 규정을 제정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1758년 3월 3일 88세의 일기로 서거하였고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다.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근세의 교황 가운데 가장 박학한 교황이었고, 가톨릭과 개신교 양측으로부터 존경을 받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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