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스 13세 교황 Clemens 13.

 287. 클레멘스 13세 교황  Clemens ⅩⅢ.  1758~1769

교황 베네딕토 14세 서거 후 추기경들은 1758년 5월 카발키니(Cavalchini)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하려고 하였으나 프랑스의 국왕이 이에 대해 즉각 항의하였다. 그래서 추기경들은 1758년 7월 6일 카를로(Carlo Rezzonico) 추기경을 교황 – 클레멘스 13세 – 으로 선출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3센ㄴ 1693년 3월 7일 베네치아에서 출생하였고, 1737년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1743년 파도바(Padua)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그곳에서 축복받은 사목자로서 활동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3세의 재임 기간은 예수회 문제와 씨름한 기간이었다. 사람들은 교회와 교황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예수회의 해체를 요구하였다. 특히 교황에게 순종한다는 예수회의 서약은 많은 사람들을 자극하였고, 교황의 거처에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는 특별한 지위는 많은 사람들의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포르투갈과 프랑스는 예수회를 해체시키는 선봉장의 역할을 수행하였고, 1764년 12월 1일 프랑스는 자국 내에서 활동하던 예수회의 해체를 선언하였다. 1769년 1월 예수회의 해체를 요구하는 가톨릭 군주들의 청원을 교황 클레멘스 13세는 수용하지 않았다. 교황 클레멘스 13세는이처럼 중요한 시안을 혼자 결정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추기경 위원회를 소집하였다. 그러나 위원회 개회 하루 전에 교황 클레멘스 13세는 서거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3세 재임 중에 교회의 근본 정신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트리어 교구의 보좌 주교 요한(Johann Nikolaus von Hontheim)이 페브로니우스라는 익명의 저자가 남긴 저술을 공개하였다. 이 저술을 통해 익명의 저자 페브로니우스는 교회가 본래의 모습과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주교들과 공의회는 교황에게 유보해 두었던 권한을 되찾아야 하고, 교황의 결정은 전체 교회의 동의하에 그 효력을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교황은 주교들보다 단지 명예적인 수위권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저술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교황 클레멘스 13세는 이 저술을 금서 목록에 포함시켜 버렸다.


  교회 정치적인 측면에서 교황 클레멘스 13세는 교황권의 무력함을 보여 주었다. 교회의 신심과 관련해서 교황 클레멘스 13세는 1765년 예수성심 축일을 전례에 도입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3세는 갑작스러운 졸도로 1769년 2월 2일 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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