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스 14세 교황 Clemens 14.

 288. 클레멘스 14세 교황  Clemens ⅩⅣ. 1769~1774

교황 클레멘스 13세 서거 후 유럽의 군주들은 예수회를 옹호하지 아니하는 후보자를 교황으로 선출한다고 합의하였다. 추기경 로렌초(Lorenzo Ganganelli)는 교황은 매우 중대한 사유로 하나의 수도회 – 에수회도 포함하여 -를 해체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발표하였다. 그 결과 1769년 5월 19일 그는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교황명으로 클레멘스 14세를 선택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1705년 10월 31일 리미니(Rimini)의 근처에서 출새하였으며,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였다. 1740년 프란치스코회가 로마에서 운영하던 ꡐ보나벤투라 콜레지움ꡑ의 책임자로 임명되었고, 1759년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1769년 7월 22일 가톨릭의 군주들은 다시금 예수회의 해체를 요구하였다. 외교 관계의 단절이라는 압력을 가하는 프랑스의 위협에 굴복하여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예수회의 해체에 동의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1769년 9월에 예수회의 해체를 약속하였다. 하지만 정확한 해체 일자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로써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예수회로 하여금 새로운 지원자의 입회를 금지시키는 선상에서 해체 문제를 지연시킬 것응ㄹ 모색하였다. 이에 대해 스페인은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스페인의 요구에 못 이겨 1773년 7월 21일 짧은 교서를 발표하면서 예수회의 해체를 선언하였다. 이를 통해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예수회의 해체에 대한 각국의 조치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었다. 특히 수도회의 원장들과 수도회성의 관리들의 반응이 매우 격렬하였다.


  프로이센과 소련은 학교 운영을 위해 예수회를 해체시키지 않았다. 실제로 예수회의 해체는 유럽의 각급 학교와 대학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3년 동안이나 예수회의 해체를 지연시키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각국의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바로 여기에서 교황권의 무력함을 보게 된다.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1774년 9월 22일 서거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4세 자신은 신심이 돈독하고, 박학하며 친절한 성격을 소유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황 재임 기간은 교회를 위해서 결코 행복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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