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 4) 그렇다면 ‘아버지’ 혹은 ‘압바’라는 호칭 이외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드러내실 만한 다른 말씀이나 행동을 하셨습니까? 만약 하셨다면, 그 특징들은 무엇이며, 그분의 제자들이나 당시의 사람들은 이것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까?
答 4) 물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신분을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서 표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서의 여러 곳에서 당신께서 가지시는 하느님과의 일치, 그분의 아들되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당신의 행동으로, 제자들의 고백으로, 이스라엘 인들의 인정(認定)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십자가 아
래에서 이방인이던 로마 백인대장의 입을 통해서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마태
27,54)라는 고백을 하게 하십니다. 이제 그분의 말씀, 행동, 태도 그리고 부활을 통해 자신이 하느님
의 아들이심을 알려주시는 그분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1) 말씀 : 하느님 나라의 약속
“여러분은 회개하시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마태 4,17; 마르 1,14) 이 말은 예수님
께서 세상을 향하여 외친 첫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은 당시의 유대인들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새로운 말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구약시대부터 예언된 메시아 사상에 젖어있었고, 이
메시야가 세상에 나타나는 날 자신들은 현세적인 압제에서 구원되어 복락을 누릴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서 선포되는 ‘하느님 나라’는 그들의 생
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선포는 어떤 외형적인 사건이나 변화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지배’라는 사실에 힘있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체험을 넘어서는
하느님 나라의 통치원리라고 볼 수 있는 산상설교(마태 5,3-12)의 기본 사상들이 그분의 모든 설교
에서 강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이미 그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 자신과 함께 실현되
고 있음을 드러내십니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 주시어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1)
(2) 행동 : 하느님 통치에 선행하는 표징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인간의 인식 한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기적들을 행하십니
다. 에수께서 보여주신 기적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기적을 대하면서, 단순히 병의 치유나
자연적 기현상이라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기적을 그러
한 물리적 현상 만에로 의미를 축소시키는 것을 반대하십니다. 그분의 기적은 어떤 마술이나 최면
이 아니라 ‘하느님 영광’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태생 소경의 눈을 고쳐주시면서, “그
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 그에게서 드러나
기 위해서”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 9,1-7) 또한 예수님의 기적은 하느
님 나라가 실현되었을 때의 상황을 미리 알려주시는 전주곡(前奏曲)입니다. 즉, 예수님의 기적은 하
느님 나라가 도래했을 때, 인간이 직면하게 될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삶의 형태, 모든 죄가 용서되
고, 악의 뿌리가 제거되며, 하느님을 마주뵈옵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지복(至福)을 누리는 천상적
삶의 모습을 지금 여기서 맛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마르 2,1; 마태 9,1; 루가 5,17 참조)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아들(聖子)로서 아버지(聖父)와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기적을 대하는 군중들로 하여
금 “아버지께서 당신을 보내셨음을 믿게 하고”(요한 11,42) 이를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당신을
통해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과연 주님께서는 내게 기름을 부으셨도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셨으니,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들에게는 해방을,
소경들에게는 눈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들을 풀어 보내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향해
‘이 성경 말씀은 오늘 여러분이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루가 4, 18-19. 21)
(3) 태도 : 예수님의 창조적인 자유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한마디로 대답하라고 제게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그분은 자유로운 분이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정말로 그분은 자유의 몸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자유로움으로부터 그분에게만 색다르게 나타나는 “새로운 권위”가 생겨나옵니다. 이제 그분의
자유로움으로 찾아가 보겠습니다.
우선 그분은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운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정에 예속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을 말씀을 듣고 따르는 모든 이들이 당신의 어머니요 형제(마르 3,35)라고 말씀하십니다. 나
아가 예수님은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와 같은 당대의 지배계급이 가한 사회적 압력에
도, 친구의 선택에도(마르타, 마리아, 어쩌면 막달레나도 예수님의 여자친구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
까요!) 자유로우셨고, 더군다나 정치적 이해타산이나 타협도 염두에 두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에수님은 말씀에 있어서 자유로운 분이셨고, 율법에 자유로운 분이셨습니
다. 예수님은 당신의 가르침과 생활양식에 있어서, 당시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과는 달리 성
서의 말씀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이를 받아들이는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권위를 절감하게 하셨
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옛사람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한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는 그
런 의식의 기원이 하느님께 있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십니다. 그런 의식규정들은 인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을 위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겼지 사
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아울러 인자(人子; 예수님)는 또한 안식일의 주인입니
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전통에 대해 그들과는 전혀 다른 창조적인 해석을 하십니다. 규정과 예식
에 얽매여 이웃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들어보지 못했던 말씀입니다. 전통의
권위에 의거하지 않고는 아무도 새로운 의견을 발표할 수 없었던 유대교의 상황 속에서 에수님은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 라고 말합니다”라고 새로운 창조력을 발휘하여 당신의 가르침을 제시
하시는 것입니다. 이 대담성은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부르신 하느님깨 대한 절대적 신뢰와 일치합니
다.
나아가 예수님의 자유는 율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당시 유대인들 삶의 중심인
율법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이중요구를 이해하시고 이를 실천으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유대교 스승들의 빈축을 살 정도로 율법을 어기신 것도 당신의 자유가 이
웃사랑의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마태 7,12 참조) 또, 예수님의 창조적 능력은 앞에서 언급된 죄에
서의 해방을 베푸시는 태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분은 아무런 제약도
느끼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한가지, 인간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그분이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를 박해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고 있습니다.’
라고 응수하셨다.”(요한 5, 17)
(4) 부활 :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투쟁을 인준하는 죽음에 대한 승리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믿어 고백하려고 준비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필
수적인 하나의 진실에 다가서야 할 차례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앞서 언급된 모든 것들을 자신
안에 가지고 계셨으며, 이로써 사람들에게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봉사와 사랑으로부터 넘쳐
나오는 ‘권위’와 삶의 새로운 희망과 구원의 신앙을 주셨다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에 죽음의 사슬
을 끊고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우리의 신앙은 방향타를 갖지 못한 난파선처럼 이리저리 표류하고
말 것입니다.
어떻게 받아들이실 지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사실 성서는 예수님 생전에 그분의 말씀, 행동을
받아적은 傳記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초대 교회
의 신앙공동체가 넘쳐나오는 기쁨으로 적은 것입니다. 십자가상의 처참한 죽으심 때문에 그들은 두
려웠고, 다만 혼란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체험하면서 자신들이 경험
했던 모든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고, 그 과정 중에서 자신들과 함께 생활하셨던 예수님께
서 단순한 인간이나 비범한 예언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聖父께서 파견해주신 하느님의 아들이심
을 알게 되었고, 이를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2천 여년의 교회 전통과 신앙은 이를 참으로
믿어 고백하며, 그 안에서 평화와 기쁨을 누리고 또 항상 새로운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 애쓰고 있
는 것입니다.
결국, 부활이라는 사건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지상 생활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셨던 하느님 나라
의 참모습과 당신 아버지 성부의 사랑을 완성시켜 주었으며, 이로써 우리는 그분 안에 온전히 드러
나고 있는 영원한 생명의 보증으로서의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고백할 수 있
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