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개혁자들의 하느님

종교 개혁자들의 하느님

마르틴 루터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믿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은총의 하느님, 구원의 하느님, 인간에게 협력을 원하는 하느님이라는 가톨릭의 기본 입장을 거부한다. 그에 있어서 인간은 아무것도 할수없다. 그는 Rom 9,18 을 인용하면서 하느님은 어떤이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어떤이는 배척하는, 원하는 사람만 구원하시는 하느님이다. 루터 역시 에페 1장;하느님의 자비, 시편 51편; 하느님의 자비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예지와 전지전능은 인간에게 구원에 대한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안에서 하느님의 의지와 마음에 접근할수 없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하느님의 은총과 맞서는 것으로 이야기 한다. 이 이면에는 루터의 생활체험이 있었다.

루터는 1483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엄격하게 자라났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사랑과 증오의 감정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그 아버지는 루터가 법관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법학을 공부하기로 하였으나 우연한 기회에 벼락속에서의 기도(수도자가 되겠다는)로 수도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의 수도 생활은 열심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세심하여 죄의식 때문에 늘 불안해 했고 자신의 죄를 깨끗이 하지 못함을 항상 죄스러워 했다. 그는 또 그리스도를 두려운 분으로 이해했다. 그는 항상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체험이 그의 사상의 기반을 이룬다.


캘빈

그는 Rom 9,13을 통하여 야곱을 선호하시고 에사오를 미워하는 하느님의 편파성을 보았다. 구원은 벌을 주실수 있기에 더욱 잘 드러나는 것이다.

가톨릭; 主知主義的
개신교; 主意主義的

루터; 신앙과 신뢰가 옳으면 그의 하느님은 옳고, 그르면 하느님은
그른 것이다. 그대의 마음이 이끌리는 것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다.
개신교 전통안에서는 신앙이 강하게 나타난다. 하느님은 역사안에 관계하는 분, 즉 나를 위한 하느님일 때에만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은 카테고리: 신학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