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같이 뭇민족의 신들이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파헤치며, 제2이사야는 “나 이외에 다른 신이란 없다”(45,5)라고 말하며, 그분은 과거의 하느님인 동시에 현재의 하느님이며 또한 앞으로 올 모든 세대의 하느님이심을 선언한다. “내가 하느님이니, 또한 그때부터 나는 그이노라”(43,13); “내가 그이니, 나는 처음이며, 또한 마지막이노라”(48,12).
이러한 민족신의 모습이 서서히 예언자들에 의해서 세계신으로 이해된다. 또한 요나서도 아모스나 이사야처럼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을 넘어서 하느님은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이심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마찬가지로 제2이사야서, 욥기, 예레미아서, 시편 등은 비로소 창조주로서의 하느님, 우주를 다스리는 우주의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낸다. 욥이 제2이사야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문제는 별도로 하더라도 남긴 글을 보면 이사야가 우주의 창조에 대하여 무관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사실 이것이 그의 논쟁에 있어 주된 주제였다. 일부 학자들은 제2이사야서가 바빌론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본다. 이를테면 그가 야훼를 창조주로 소개하는 장면에 바빌론의 ‘칭호에 관한 교의’가 함축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네 눈을 높이 들고 보라.
누가 이러한 것들을 창조하였느냐?
그분께서 삼라만상을 수효대로 만들어 내시고
그 모든 것을 이름지어 부르셨도다…(40,26).
즉 바빌론인들이 천체의 창조를 마르둑의 위업으로 돌리려고 했던 반면에, 예언자는 그 기원을 야훼께 두고 있다. 야훼가 세상 만물을 창조하였다는 개념은 그의 사상에 있어 핵심적 요소였다. 야훼가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45,18), 질서있게 만들어 놓으신 자연 안에 개입하시어 그것을 당신 뜻대로 변형시키는 분이라고 인식하였다. 계곡을 메꾸시고 산을 평지로 만드시며(40,4), 광야를 못이되게 하시고 사막에는 식물이 풍성히 자라게 하신다(41,18-19).
이러한 점진적인 신의 이해는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체험에 근거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들의 체험의 축적이 서서히 하느님의 못브을 조금씩 분명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제 약속의 하느님 엘,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모세의 하느님 야훼와 동일시 되고, 가나안 정착시 바알과 대결하면서 인간의 마술로 지배되거나 조정될 수 없는 절대적인 신으로 위치를 보존하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국제적인 관점에서 단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전세계, 전우주를 주관하시는 창조자 하느님으로 이해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좀 더 주의를 가지고 더 공부할 수 있다면, 왕정제도가 하느님을 옹으로 이해케하고 이러한 왕권적인 하느님의 모습이 세계의 지배자, 우주의 창조자로 이해하도록 중간단계로서 커다란 역할을 기여했다는 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 이스라엘의 왕정체험 : 왕정설립 : 사울을 도유함으로써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왕정을 설립한다. 그러나 이 왕정설립에 대해 사물엘에게서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측면을 볼 수 있다. 하나는 친왕정적 자세로서 원로들과 백성들의 비준을 통해 한 사람을 왕으로 옹립하고 추대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반왕정적인 태도인데 사울왕정을 신정의 거부로 이해하고 있는 점이다(사무 전 8,6; 10,17; 12,12). 이것은 주변의 다른 국가들처럼 이스라엘이 그들의 왕정체제로 동화될 위협을 느끼는 순간 사무엘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사무 전 8,5; 10,17). 어떤든 이스라엘의 경우 왕정제는 팔레스틴족들의 침입으로 인한 긴박성 때문에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사울은 그 이전의 판관들처럼 주님의 성령에 의해점유당한 카리스마적 우두머리였다(사무 전 10,6이하). 그가 사망한 후 다윗이 왕권을 차지하고, 다윗으로 말미암아 와정제가 발전을 이룬다. 나탄에게서 다윗의 가문은 하느님의 약속으로 보장받은 ‘영원한 왕국’의 수탁자가 된다(사무 후 7,5-16). 이렇게 해서 다윗 왕국은 이스라엘 백성의 희망이 된다. 왕들처럼 신의 다스림 내지 지배는 고대 동방지역에 있어서 널리 알려져 있는 바이지만, 신이란 어떠한 일정한 지역에서 통치하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신은 그 지역의 소유주로서 번영과 복지를 이룩하고 조화시키고, 교정시킨다. 신은 다스림 ㅇ벗이 이해될 수 없다. 그의 지상왕국은 그의 신성을 드러내는 장소였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왕으로 부르게 된 것은 왕정제 이후였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느님은 복종을 요구하는 왕으로서, 상관으로서 충실한 부하들인 인간들에게 충성을 받는 대신 부하들에게 보호와 생활보장을 약속하고 허락한다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역시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왕리시다’라는 고백이 자주 등장한다(민수 ㅈㄷ,21; 판관 8,23; 사무 전 8,7; 12,12). 아모스, 제2이사야 예언자 이후 하느님은 모든 나라의 왕이시다(시편 22,29; 자카리아 14,16)라는 고백도 나타난다. 이러한 왕권적인 하느님의 통치는 이스라엘이 아주 어려운 고비를 맞이하는 순간 미래의 희망으로 나탄다(시편 46; 92; 96; 98),. 이러한 하느님의 오아이심에 비추어 이스라엘의 지상적인 왕은 하느님의 대리자로 이해될 뿐이다. 이 점이 다른 나라의 왕들과 다른 점이다.

이와같이 뭇민족의 신들이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파헤치며, 제2이사야는 “나 이외에 다른 신이란 없다”(45,5)라고 말하며, 그분은 과거의 하느님인 동시에 현재의 하느님이며 또한 앞으로 올 모든 세대의 하느님이심을 선언한다. “내가 하느님이니, 또한 그때부터 나는 그이노라”(43,13); “내가 그이니, 나는 처음이며, 또한 마지막이노라”(48,12).
이러한 민족신의 모습이 서서히 예언자들에 의해서 세계신으로 이해된다. 또한 요나서도 아모스나 이사야처럼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을 넘어서 하느님은 이방인 니느웨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이심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마찬가지로 제2이사야서, 욥기, 예레미아서, 시편 등은 비로소 창조주로서의 하느님, 우주를 다스리는 우주의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낸다. 욥이 제2이사야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문제는 별도로 하더라도 남긴 글을 보면 이사야가 우주의 창조에 대하여 무관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사실 이것이 그의 논쟁에 있어 주된 주제였다. 일부 학자들은 제2이사야서가 바빌론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본다. 이를테면 그가 야훼를 창조주로 소개하는 장면에 바빌론의 ‘칭호에 관한 교의’가 함축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네 눈을 높이 들고 보라.
누가 이러한 것들을 창조하였느냐?
그분께서 삼라만상을 수효대로 만들어 내시고
그 모든 것을 이름지어 부르셨도다…(40,26).
즉 바빌론인들이 천체의 창조를 마르둑의 위업으로 돌리려고 했던 반면에, 예언자는 그 기원을 야훼께 두고 있다. 야훼가 세상 만물을 창조하였다는 개념은 그의 사상에 있어 핵심적 요소였다. 야훼가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45,18), 질서있게 만들어 놓으신 자연 안에 개입하시어 그것을 당신 뜻대로 변형시키는 분이라고 인식하였다. 계곡을 메꾸시고 산을 평지로 만드시며(40,4), 광야를 못이되게 하시고 사막에는 식물이 풍성히 자라게 하신다(41,18-19).
이러한 점진적인 신의 이해는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체험에 근거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들의 체험의 축적이 서서히 하느님의 못브을 조금씩 분명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제 약속의 하느님 엘,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모세의 하느님 야훼와 동일시 되고, 가나안 정착시 바알과 대결하면서 인간의 마술로 지배되거나 조정될 수 없는 절대적인 신으로 위치를 보존하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국제적인 관점에서 단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전세계, 전우주를 주관하시는 창조자 하느님으로 이해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좀 더 주의를 가지고 더 공부할 수 있다면, 왕정제도가 하느님을 옹으로 이해케하고 이러한 왕권적인 하느님의 모습이 세계의 지배자, 우주의 창조자로 이해하도록 중간단계로서 커다란 역할을 기여했다는 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 이스라엘의 왕정체험 : 왕정설립 : 사울을 도유함으로써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왕정을 설립한다. 그러나 이 왕정설립에 대해 사물엘에게서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측면을 볼 수 있다. 하나는 친왕정적 자세로서 원로들과 백성들의 비준을 통해 한 사람을 왕으로 옹립하고 추대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반왕정적인 태도인데 사울왕정을 신정의 거부로 이해하고 있는 점이다(사무 전 8,6; 10,17; 12,12). 이것은 주변의 다른 국가들처럼 이스라엘이 그들의 왕정체제로 동화될 위협을 느끼는 순간 사무엘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사무 전 8,5; 10,17). 어떤든 이스라엘의 경우 왕정제는 팔레스틴족들의 침입으로 인한 긴박성 때문에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사울은 그 이전의 판관들처럼 주님의 성령에 의해점유당한 카리스마적 우두머리였다(사무 전 10,6이하). 그가 사망한 후 다윗이 왕권을 차지하고, 다윗으로 말미암아 와정제가 발전을 이룬다. 나탄에게서 다윗의 가문은 하느님의 약속으로 보장받은 ‘영원한 왕국’의 수탁자가 된다(사무 후 7,5-16). 이렇게 해서 다윗 왕국은 이스라엘 백성의 희망이 된다. 왕들처럼 신의 다스림 내지 지배는 고대 동방지역에 있어서 널리 알려져 있는 바이지만, 신이란 어떠한 일정한 지역에서 통치하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신은 그 지역의 소유주로서 번영과 복지를 이룩하고 조화시키고, 교정시킨다. 신은 다스림 ㅇ벗이 이해될 수 없다. 그의 지상왕국은 그의 신성을 드러내는 장소였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왕으로 부르게 된 것은 왕정제 이후였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느님은 복종을 요구하는 왕으로서, 상관으로서 충실한 부하들인 인간들에게 충성을 받는 대신 부하들에게 보호와 생활보장을 약속하고 허락한다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역시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왕리시다’라는 고백이 자주 등장한다(민수 ㅈㄷ,21; 판관 8,23; 사무 전 8,7; 12,12). 아모스, 제2이사야 예언자 이후 하느님은 모든 나라의 왕이시다(시편 22,29; 자카리아 14,16)라는 고백도 나타난다. 이러한 왕권적인 하느님의 통치는 이스라엘이 아주 어려운 고비를 맞이하는 순간 미래의 희망으로 나탄다(시편 46; 92; 96; 98),. 이러한 하느님의 오아이심에 비추어 이스라엘의 지상적인 왕은 하느님의 대리자로 이해될 뿐이다. 이 점이 다른 나라의 왕들과 다른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