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의 고백성사는 3세기까지는 형식과 시행 방법들을 명백히 알 수 없고 그러한 성사가 이미 행해졌음을 알 수 있으며, 3세기 초에 비로소 참회 규율의 일정한 통일성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거의 6세기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성 아우구스띠누스는 참회 형식에 있어서 3가지로 구분을 하였습니다. 첫째 성세에 댛나 새 사람이 되는 형식과 둘째, 매일의 생활에서의 참회로 우리가 미사 전에 가슴을 치는 것이 동기가 된 것과 셋째, 가장 중요하고 본연의 고백의 성사를 이루는 형식으로, 교회의 치명적 상처를 입은 중죄인을 위한 교회의 지도 아래 실행하는 엄격한 공적 고백으로 일생에 한 번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형식이 너무 엄해서 6세기 이후 차차 예외적인 형식이 나타나게 됩니다. 6세기 말부터 라틴 교회내에 애란식 고백 성가형식인 사적인 고백즉 비밀 고백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12세기에 와서 고백의 성사가 쇄신되고 이것을 제 4차 라떼란 공의회(1215년)에서 전세계에 적용할 규정으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2. 교리상의 전통
교회에서는 고백성사를 계속 실현하여 왔으며 특히 사순절 기간 동안에 예수께서 40일간 재를 지키신 것처럼 신자들로 하여금 통회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보속하기를 권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순절 동안의 전례 기도문에는 거의 통회와 보속,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보호에 대한 신뢰등으로 가닥 차 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그 자녀들에게 진정한 통회를 요구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죄의 고백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가르쳐 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