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축일 논쟁 復活祝日論爭 Osterfeststreit
소아시아 교회는 유다인들과 함께, 요일에 상관없이 니산 14일에 부활 축일을 기념하였다. 이와는 달리 로마와 다른 지역의 교회는 니산 14일 후 주일에 부활 축일을 기념하였다. 154~155년 교황 아니체토(Anicet)와 스미르나(Smyrna)의 주교 폴리카르포(Polykarp)는 부활 축일 기념일에 관하여 합의하였으나,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였다. 교황 빅토리오(Victor) 1세는 에페소의 주교 폴리크라테스(Polykrates)와 니산 14일을 부활 축일로 고집하는 소아시아 교회의 주교들을 신속하게 파문함으로써, 로마 교회의 수위권을 입증해 보이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아시아 교회는 3세기까지 예전의 관습을 충실하게 지켰다. 325년의 칼케돈 공의회는 입춘 후 보름이 지나 맞이하는 주일을 부활 축일로 기념하도록 결정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