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핀의 증여 ~贈與 Pippinsche Schenkung
교황권과 카롤링거 왕조 사이의 동맹 관계는 피핀과 교황 스테파노 2세 재임시에 실현되었다. 이탈리아는 그 당시 동로마 제국에 속해 있었다. 라벤나에는 동로마 황제가 파견한 대리자가 주재하고 있었다. 랑고바르드족은 라벤나와 로마를 점령하기를 원하였다. 동로마 제국의 세력이 점점 쇠퇴하는 데 비례해서 교황권의 명성은 드높아 갔고 재산의 소유도 늘어났다. 교황은 동로마가 랑고바르드족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줄 도움을 제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난 후 피핀에게로 돌아섰다. 교황은 754년 피핀을 방문하여 피핀과 그의 두 아들 칼과 칼만에게 국왕의 왕관을 수여하였다. 이로써 중세기 동안 계속 영향을 미쳤던 정치와 종교의 혼합이 이루어졌다. 교황의 이러한 처신은 비잔틴, 즉 동로마와의 관계 단절을 초래하였다. 그 결과 교황권은 정치적으로 독자적인 노선을 견지할 수 있게 되었다.
피핀은 두 차례에 걸쳐 교황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탈리아를 방문하였다. 피핀은 랑고바르드족으로부터 빼앗은 영토를 교황에게 증여하였다(그래서 정복한 도시의 열쇠를 베드로의 무덤 앞에 놓았다). 이를 통해 교황은 세속적인 군주로 부상하게 되었다. 베드로의 세습령은 피핀의 증여 로 말미암아 확대되었고, 그 결과 교회 국가가 건설되었다(755년). 교황은 이제 동로마의 정치적인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독일 황제의 권력 영향권 아래 속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