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교의, 하느님의 어머니

 

4.2. 하느님의 어머니


그리스도교 초기의 여러 신앙고백문은 성서의 증언에 따라서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선포한다. 예를 들어서 사도신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라고,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는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431년에 개최된 에페소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고 선포하였다. 공의회 결정문에서 나타나듯이 이 선포의 배경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불분명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가 자리하고 있다: “임마누엘이 참으로 하느님이고, 그래서 거룩한 동정녀가 하느님을 낳으신 분(왜냐하면 그녀는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육화하신 말씀을 육에 따라 낳으셨기 때문이다)이 아니라고 고백한다면 파문될지어다”(DS 252). 칼체돈 공의회(451)는 이런 에페소 공의회의 가르침을 재확인하였다 “거룩한 교부들의 의견에 따라서 우리들은 한 목소리로 한 분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자 하는 바이다… 그분은 신성에 있어서 세기 이전에 성부로부터 태어나셨다. 그러나 같은 그분이 인성에 있어서 마지막 날에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셨다”(DS 301).


그런데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는 마치 마리아가 시간을 초월해서 항상 현존하는 모든 존재의 원초적 근원인 성부(聖父)를 낳았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이 칭호는 에페소 공의회의 지향에 따라서 철저히 그리스도론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낳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강생하신 그리스도가 진정한 하느님이고, 그분의 신적인 본성이 인성과 결합됨으로써 소멸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제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낳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신적인 그리스도를 “육에 따라 낳으셨고”, 그에게 인간 생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이렇게 신성과 인성을 지닌 그리스도를 낳음으로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는데, 이런 마리아의 모성을 단지 생물학적-육신적 측면에서만 주목해서는 안된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실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굳게 믿고 “예”라는 응답하였기 때문이다. 고대교부들은 이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마리아는 몸으로보다 정신으로 먼저 잉태하였다”(Maria prius concepit mente quam ventre). 마리아는 일차적으로 하느님께 대한 그녀의 절대적인 신앙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모친이 되셨고 그 다음에 비로소 육체적으로 모친이 된 것이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을 낳는 데에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신앙적 순종은 구원론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것을 간파한 것은 고대교회 교부들이었다. 그들은 마리아의 신앙적 순종에서 하와의 불순명으로 야기된 비구원의 상황을 극복하는 길이 열렸다고 보았다. 그래서 리옹의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와의 불순명이 묶어 놓은 매듭을 마리아의 순명이 풀어주었고, 처녀 하와가 불신으로 맺어 놓은 것을 동정 마리아가 믿음으로 풀었다”(Adv. Haer. III 22,4). 또한 교부들은 마리아가 그녀의 신앙적 태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신앙인의 공동체인 교회의 전형이며 첫 번째 실현이 되었다고 확신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부들의 이런 유형론적 생각에 기반을 두고서 마리아의 모성을 교회의 모성에 대한 원형으로 간주하였다. 즉 마리아가 믿음과 순명으로 성부의 아들 그리스도를 출산함으로써 어머니가 되셨듯이, 교회도 신앙과 굳은 희망과 진실한 사랑 안에서 하느님 말씀의 선포와 세례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들을 출산하여 그들에게 영원한 새 생명을 주는 어머니가 된다(교회헌장 63-64항 참조). 이렇게 볼 때 마리아의 모성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서 계속되어야할 것이다. “마리아는 그 생애를 통하여 교회의 사도적 사명으로 사람들을 재생시키는 데에 협력하는 모든 이가 지녀야 할 모성애의 모범이 되시었다”(교회헌장 65항).


일부 여성신학자들이나 특정한 영성적 전통에 뿌리를 둔 신학자들은 여인인 마리아 안에서 하느님의 “여성적 차원”이 직접적으로 계시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그리스도론적 맥락에서 분리시키는 것이라고 하겠다. 물론 자식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자애로운 어머니(참조: 민수 11,12; 이사 49,15; 66,13)의 모습으로 하느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성서의 증언이 교회의 복음 선포에 너무 적게 반영되었고, 그래서 이런 차원의 종교적 체험이 마리아 공경과 밀접히 연결되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상은 흔히 생각하듯이 가부장적(家父長的)이 아니라 여성적인 특색도 지닌다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굳이 마리아라는 우회로(迂回路)를 거칠 필요가 없다. 마리아는 유다 여인으로서 전적으로 인간이었고, 그래서 “하느님의 모성적 얼굴”을 대신하거나 “하느님의 여성적 차원”의 계시도 아니다.


또한 이와 비슷한 동기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성적) 로고스가 육화되었고 마리아 안에서는 (여성적) 영(Ruach) 혹은 지혜가 위격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주장은 신학적으로 잘못된 시도라고 하겠다. 삼위일체 신학적 전통이 이런 식으로 와해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하느님의 영과 지혜는 마리아에게서 다른 모든 인간의 삶에서 가능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생동적이고 실제적으로 작용하였다. 마리아는 “삼위일체의 세 번째 위격과 위격적으로 결합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영이 인간의 형태를 취하기 위해서 예정되거나 선택된 것이 아니다. 마리아는 말씀이 육화되기 위해서 인간의 협조를 요청하시는 하느님의 부름에 대해서 인간의 응답을 모범적인 방식으로 실현하였다. 사실 모든 인간은 하느님 은총의 도움 속에서 이런 신앙과 사랑의 응답을 할 수 있는데, 마리아는 이 응답을 인간을 대표해서, 다른 사람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모범적으로 실천하였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과 영, 지혜에 대해서 자신을 개방하기를 원하는 모든 인간들에게 희망의 표징이라고 하겠다.




이 글은 카테고리: 신학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