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시기
그리스도교 경축의 중심은 언제나 빠스카이고, 이는 주일과 더불어 전례 주년의 근간을 이룬다. 그런데 교회는 초세기(4세기)부터 주님의 탄생을 경축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는 아주 초기에는 빠스카만이 존재하였고, 주님의 탄생을 경축하려는 움직임은 없었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빠스카가 중심인 교회에서 그와 별 관계없는 듯 보이는 주님의 탄생은 어떤 경위를 통해서 이렇게 성대한 축제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더욱이 빠스카를 위해 사순절이 이루어졌듯이, 성탄을 위해서도 그 준비시기까지 등장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이 형성되는 과정(기원과 발전과정, 전례)을 살펴봄으로써 성탄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본다.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전 교회가 동시에 같은 날 지낸 것은 아니었다. 이 축제의 기원이 이교도의 관습에 젖기 쉬운 그리스도교인들을 위한 것이었던 만큼, 서방과 동방에서 각각 다른 날에 지냈었다.
로마에서는 330년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로마에서 12월 25일은 “태양신 탄생” 축제일이었다. 종교적으로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던 시점에서 교회는 거대한 이교풍습에 세례를 줄 필요가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종교 단일화 정책이 맞아 떨어졌다. 그 결과가 바로 주님의 탄생을 “태양신 탄생”날에 지내는 것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이교 “태양신”에게 드리던 성대한 공경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치게 되었다. 한편 동방에서는 이와 같은 태양신 축제를 1월 6일에 지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부터 비록 같은 의미의 축제를 동·서방에서 지냈다 하더라도 그 시기와 날짜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성탄(Natale)과 공현(Epiphania)은 용어 자체에서 어느 정도 그 내용을 드러내주고 있다.
Natale는 탄생기념일을 뜻하는 말로 4세기에 일상적으로 쓰이던 말이었다. 하지만 궁정예절에서는 황제의 즉위식 날과 신으로 올림을 받은 날에 이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무적의 신(태양신)의 탄생”(Natalis Invicti)은 태양과 신성의 재탄생을 의미하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받고 죽어서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는 이의 참된 탄생일에 이 용어를 사용했는데, 아마 이교도들이 사용하던 의미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Natale는 동방의 Epiphania와 그 의미가 매우 유사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로마 세계에서는 인간을 구원할 신이 나타나심을 Epiphania로 불렀기 때문이다.
4세기말에 이르러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 두 축일을 동시에 받아들임으로써 그 내용도 변화를 겪게 되었다.
우선 로마의 성탄은 주님의 탄생을 기리는 것으로, 목동과 현자들의 경배, 헤로데에 위해 저질러진 어린이들 학살과 같은 주님의 탄생을 둘러싼 사건들과 결부되어 이루어졌다. 그러나 로마에서도 공현 축일을 지내게 되면서 성탄 날에는 주님의 탄생과 목동들의 경배만을 지내게 되었다. 반면 동방에서는 성탄 축일을 받아들이면서 본래 로마에서 지니고 있던 성탄의 의미들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이렇게 성탄과 공현은 양 교회로 함께 넘어가면서 복잡한 발전과정을 겪게 된다.
한편 동방의 공현 축일은 주님의 탄생과 세례, 가나의 혼인 잔치(첫 기적)를 동시에 기념하였는데, 오늘날에는 세례만을 기념한다. 로마 전례는 공현 축일에 주께서 이방인들에게 드러내심을 경축하면서도 동방에서 본래 기념하던 내용들을 보존하고 있다. 즉 공현의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에서 세례와 첫 기적을 기억하고, 그 다음 주일에 세례 축일을 지내도록 하고 있다.
처음 성탄을 경축하기 시작했을 때, 교회는 성탄을 하나의 탄생 축일로 여기며 단순한 연중 기념처럼 지냈다. 이런 의미에서 성 아우구스티노는 성탄이 성사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그 선언 50년 후에 성 레오 대교황은 성탄에 대한 전례 신학을 결정적으로 깊이 있게 드러내었고, 그 이후의 전례문들은 성탄이 성사라는 점을 널리 인식시켰다. 하지만 성탄은 빠스카와 구별되거나 독립되는 것이 아닌 바, 성탄은 무엇보다도 빠스카 성사와 만나게 한다. 즉 구세주를 통하여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을 보여주면서 빠스카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