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 교서 2

    <지난호에 이어서>
    2, 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하여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새로운 활력을 얻어야 하며 이 말씀을 우리 신앙 여정을 격려는 힘으로 삼아야 한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들었던 예루살렘 신자들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사도 2,37)하고 물었던 것처럼 오늘의 우리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깨닫고 자신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새로운 계획의 창출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질문에 대한 계획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그것은 살아있는 성전(聖傳) 안에서 발견되는 계획으로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다. 그 계획의 중심은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고 본받음으로서 그 분 안에서 삼위일체의 삶을 영위하며 천상 예루살렘에서 역사가 완성되기까지 그 분과 함께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각 공동체의 상황에 맞는 사목 계획으로 옮겨져야 한다. 그러나 각 시대, 지역, 문화 등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는 사목 계획도 몇 가지의 공통된 기준에 의해 세워져야 한다.
    성덕
    첫째로 모든 사목 계획은 성덕을 중심으로 세워져야 한다. 성화(聖化) 성소는 그리스도 신자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따라야 할 부르심인 것이다. 성덕은 본질적으로 '거룩하신 분'(이사 6,3 참조)에 속한 것이다. 이 성덕의 은혜는 세례 받은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성령 안에서 살아감으로써 하느님의 성덕에 진정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세례 받을 때 에비신자들에게 "세례 받기를 바라십니까?"하고 묻는 것은 "성화 되기를 원하십니까?"하고 묻는 것과 같다. 성덕의 소명은 개인의 따라 그 길이 다양하다. 다양한 성덕의 길을 가고 있는 개인이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이루고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루어 개인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적 성덕의 길을 가야한다. 이 성덕은 훈련이 필요하다. 성덕의 훈련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주님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루가 11,1)하고 말하였던 초대 제자들처럼 스승이신 예수님께 직접 기도를 배워야 한다. 아무리 세속화가 만연된 시대라 할지라도 기도에 대한 요구는 더욱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시는 성자께 온전히 속하게 되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움직이며 성부의 품안에서 자녀로 쉴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참된 기도의 학교가 되어야만 한다. 기도는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 마음을 열게 함으로써 형제자매들까지 사랑하게 하며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역사를 이루어 나갈 수 있게 한다.
    주일 성찬례
    교회 활동의 정점이며 동시에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 바로 전례이다. 그 중 특히 주일은 특별한 신앙의 날, 성령을 주신 날, 진정한 주간 부활절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세례 받은 모든 사람에게 미사 참례는 주일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미사 참례는 단순히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된 지식을 갖춘 견실한 그리스도인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며 이행하여야할 기본 의무이다. 주일 미사는 친교를 선포하고 교육하는 특별한 자리인 것이다.
    화해의 성사
    고해성사는 그리스도인이 세례 뒤에 범한 심각한 죄에 대하여 사함을 받고 용서를 얻을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이다. 화해의 성사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고해성사를 통하여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말씀의 경청
    하느님의 말씀에 새롭게 귀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복음화와 교리교육 활동은 하느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새로운 활력을 이끌어낸다. 또한 모든 가정이 성서를 가지도록 함으로써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서 읽기의 방법 중 영적독서(lectio divina)를 통하여 생명을 주는 만남이 되어야 한다.
    말씀의 선포
    복음화 활동에서 말씀의 봉사자가 되고자 우리 자신을 풍부한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이야말로 새 천년기의 여명을 맞는 교회가 우선하여야할 일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들은 그 분을 선포하여야만 한다.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알려야 한다.
    3. 사랑의 증인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사랑이야말로 진정 교회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구현해야 할 영역은 바로 친교인 것이다.
    친교의 영성
    교회를 친교의 원천이며 친교의 학교로 만드는 것이 새로운 천년기에 교회가 당면한 큰 과제이다. 친교의 영성은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한 마음의 관상을 가리킨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형제자매들의 얼굴에서 빛나는 삼위일체의 빛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친교의 영성은 또한 우리 신앙의 형제자매들을 신비체의 심오한 일치 안에서 '나의 일부인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럴 때 우리는 형제자매들의 기쁨과 고통에 동참하고 그들의 바람을 느껴 알며 그들의 요구에 마음을 쓰고 그들과 깊고 참된 우정을 나눌 수 있다. 친교의 영성은 또한 다른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것을 하느님의 선물, 곧 그것을 형제자매를 위한 선물일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선물'로 여길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친교의 영성은 우리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양보하며' '남의 짐을 기꺼이 져주고'(갈라 6,2)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붙어 다니면서 경쟁심과 출세욕, 불신과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기적인 유혹을 물리칠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친교는 모든 교회 생활 구조 안에서 날마다 모든 차원에서 계발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주교, 신부, 부제의 관계, 목자들과 하느님 백성 전체의 관계,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관계, 교회 단체들 간의 관계는 모두 친교의 관계가 특징이 되어야 한다.
    성소의 다양성
    친교의 이러한 전망은 성령의 모든 은혜를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교회의 일치는 획일성이 아니라 합법적인 다양성의 유기적인 융합이다. 사제직과 수도성소 증진은 더욱 필요하다. 또한 평신도들로 부르심은 그들에게 고유한 사명을 다하도록 재촉한다. 특히 평신도들은 그리스도 가정을 이루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좀더 완전한 복음 교육을 통하여 하느님의 계획뿐 아니라 인간의 참된 선익과 조화를 이루며 온전하게 혼인 생활을 할 수 잇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가정 스스로 더욱 의식적으로 자녀들을 합당하게 보살피고, 그들이 권리를 수호하려고 교회와 사회 안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모든 복음화는 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하여야 한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늘 우리를 인도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모든 신자들의 의무는 바로 거룩해지는 것이며 이는 기도를 통하여 훈련되고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더욱 자라난다. 또한 고해 성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따른다면 다음 단계는 당연히 그리스도를 선포하여야 한다. 그리스도를 선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랑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당연히 사랑의 핵이 되어야 하고 교회 구성원들은 사랑의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성소로 불림을 받았지만 주님 안에서 서로 한 형제자매로서 친교를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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