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의 의미와 준비, 사순절의 계산

 

사순시기




(1) 사순의 의미와 준비, 사순절의 계산




        사순은 40을 뜻한다. 40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성서에서 비롯되는데 신명 9장 18절에 보면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40일 동안 단식하는 장면이 나오며, 열왕기 전서 19장 8절에서 보면 엘리야가 야훼의 계시를 받기 위해 호렙산으로 들어가 40일 동안 준비하게 된다. 사도행전에서도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40일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셨으며, 루가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공생활 들어가시기 전에 40주야동안 단식을 하게 된다. 따라서 40이라는 의미는 중요한 사건을 준비하는 기간을 뜻하며 하느님을 만나는 사건을 준비하는 기간을 뜻한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마음속에서 사순시기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준비는 외적인 준비와 내적인 준비가 있다. 외적인 준비는 다른 어느때 보다 하느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별히 전례에 참석을 하면서 그러한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너무 외적인 규정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주일을 지키는데 있어서 신앙의 기쁨의 날이 강조되어야지 유다인 안식일 법과 관련되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든가 하는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되면 안된다. 그래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다시 한번 주일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즉 전례주년 전체의 기초요 핵심으로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이는 집회를 강조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의 전례를 거행하면서 주 예수의 수난과 부활과 영광을 기념하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날로서 희망과 즐거움과 휴식의 날이 되도록 강조하고 있다. 즉 함께 모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의 전례를 거행한다는 것이 주일에서 중요한 것이지 외적인 법조문에만 너무 얽매이는 것은 그 근본정신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일에는 무엇을 꼭 지키고, 어떤 것은 하지 말고 하는 말들은 좀더 주일을 더 잘 지키기 위한 것이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지키는 것은 아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면 어떠한 외적인 규정에만 치우쳐서 따르다 보니까 미사때에 언제 일어서고 언제 어떻게 하고, 어떻게 꿇어야하는지 등의 의문점들이 생기게 되는데, 사실 그런 문제는 전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도 어떤 통일성을 유지하면 되는 것이다. 즉, 근본적인 정신을 더 잘 살리기 위해서 통일을 시켜서 하면 되는 것이다. 전례에 있어서 그러한 외적인 것보다 근본정신이 더 중요한 것이다.




        사순의 40일은 옛 성삼일전서부터 시작해서 역순으로 40일을 따진다. 지금의 파스카 성삼일, 즉 목요일 저녁 최후의 만찬부터 시작해서 주일저녁때까지,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틀어서 성삼일이라 한다. 옛 성삼일은 그냥 금토일을 말하며 부활과 따로 생각했다. 그래서 금요일부터 역순으로 따져서 ‘월화수목금’의 5일과 5주간(7일×5=35일)이 된다. 따라서 40일이 되며, 사순시기의 첫날은 주일, 사순 제 1주일이 된다. 그러나 주일은 예로부터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로서 재를 지키지 않았다. 따라서 하루를 빼서 6×6=36일에다가 옛 성삼일 전까지는 재를 지켰으므로 ‘월화수목’의 4일을 더하면 34일이 된다. 그리고 예로부터 성삼일의 금토일 중 금요일과 토요일은 재를 지켰다. 따라서 36일간 재를 지킨 것이다. 그러다가 40일 동안 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러한 사상이 강해지면서 4일을 더해서 시작이 수요일이 된 것이다.




        그러면 재의 수요일날 왜 재를 받는가?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재를 받은 것은 아니다. 옛날에는 세례를 받고나서 중죄를 범한 사람들이 죄를 뉘우치고 보속기간이 지나면 이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화해의 미사를 성목요일날 했다. 그래서 옛날에는 목요일날에는 세대의 미사 즉 성유축성미사, 화해의 미사, 만찬미사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화해의 미사는 하지 않는다. 그 화해의 미사때 보속을 주는데 그 중에 가장 엄했던 보속은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즉 파문이었다. 그 사람들을 주교가 안수를 해주며 보내게 된다. 그래서 처음 재의 수요일에는 중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안수를 했으며 그러다가 죄로 가려는 의식 즉 ‘사람아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 갈 지어다.’ 하며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러면 왜 모든 사람들이  재를 받게 되었을까?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죄인이기를 자처하게 되었고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보속행위를 자처하게 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재를 받게 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토요일도 작은 주일이라 해서 재를 지키지 않아서 일주일에 2일이 빠진 40일을 계산해서 우리보다 한 주가 늦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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