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전례(성무일도)의 거행
그리스도와 교회의 공동행위인 전례는 교회의 기도, 곧 매일 거행하는 시간 전례 한에서도 실현된다. 다시 말하면, 시간 전례 안에서도 새로운 계약의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고 활동하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시간 전례를 거행하며 말씀을 선포하고 기도할 때 그 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신다. 그러므로 시간 전례의 거행은 마땅히 전례의 중요한 부문으로 간주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시간 전례의 거행을 탁월한전례 기도로 이해하였으며, 이의 거행이야말로 주님께서 분부하시고 바오로 사도가 권고한 끊임없이 계속해야 할 기도의 모범으로 제시하였다.(전례헌장, 86항 참조).
앞으로 이 글에서는 시간 전례의 신학적 의미와 각 시간경의 특징 그리고 시간 전레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수들을 간단하게 살펴보게 될 것이다.
1. 기원과 발전
초대교회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매일 기도에 대한 강한 충동은 예수님 자신에게서 유래한다. 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예수께서는 스스로 열심히 기도하시고, 또 제자들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으며(마태 6,9-13; 루가 11,2-4) “간단없이 항상 기도하라.”(루가 18,1)고 강조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차례 져계, 주위를 잃지 말라는 주님의 권고도 듣게 된다. “너희는 깨어있어라. 주인이 집에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새벽일지, 아침일지 너희는 모르기 때문이다”(마르 13,35; 마태 24,42).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는 사도행전과 사도 서간들이 전해주고 있듯이 기도에 관한 주님의 권고와 모범을 충실하게 따랐다(사도 1,14).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은 히브리 전통에 따라 하루 중 특정한 시간들에 성전과 회당에서 잇엇던 기도와 예배에 참석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기도를 위한 특정한 ‘시간들’은 일찍이 형성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특정한 시간들 주에 무엇보다 먼저 아침과 저녁 기도를 위한 시간이 첫 자리를 차지했고, 다음으로 ‘빛의 시간’ 열둘에 따라 분류하여 삼시, 육시, 구시의 기도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로마식 분류를 따라 하루를 아침 6시에 시작했다. 이러한 초기 공동체의 기도는 가족적이거나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성서는 그 반대의 증거들을 제공해 준다. 성서는 공동 기도와 그 기도를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바쳤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사도 2,46-47).
순교자 이냐시오 주교 역시 이러한 증거를 보여준다(마그네시아 교회에 보낸 편지,, 7,1). 이러한 증거는 2세기초에도 사도들의 전통이 게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로부터 약 100년 후 테르톨리아노에게서는 법과 관습에 따라 규정된, 아침과 저녁 기도의 시간에 대해 법정기도라는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기도에 대하여, 25,5).. 로마의 히폴리토에 따르면, 사제들과 부제들은 매일 아침 주교가 지정한 장소에 모여 가르침과 기도를 포함하는 말씀의 전례를 신도들과 함께 거행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사도 전승, 39,41). 그리고 저녁기도 때에는 히브리인들과 희랍인 그리고 로마인들에게, 여러 가지 양식의 빛을 밝히는 종교적 관습이 있었다. 그런데 4세기 말엽의 「사도 규정」은 이미 오늘날의 우리의 저녁기도와 비슷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Ⅷ, 35,2-7).
다음으로 시간 전례의 구조에 특별히 영향을 미치는 것이 수도 공동체들이다. 수도 공동체들은 기도의 시간들에 추가하여 한밤중에 바치는 밤중기도를 제도화했다. 밤중기도에 이어 즉시 하루의 일을 시작하기 직전에 바치는 종과가 추가된다.
그러나 서방교회의 시간 전례의 양식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이는 노르챠의 성 베네딕토(✝ 547)이다. 성 베네딕토 양식은 로마에서 바쳤던 수도자들의 서무일도를 수정한 것이었다. 수도원이 아닌 주교좌나 명의 교회들의 시간 전례에 언제나 큰 영향을 끼쳐온 성 베네딕토 성무일도는 아침기도(=밤중기도), 찬미기도, 일시과, 삼시과, 육시과, 구시과, 그리고 저녁기도와 끝기도로 구성되었다. 시간 전례는 1970년에 새로 개정될 때까지 이 구조를 가지고 행해졌다.
이러한 기도의 시간들은 여러 가지 이름들이 있다. ‘시간 전례’와 ‘법정 시간들’(Horae canonicae)이라는 표현은 기도가 하루의 지정된 시간에 배치되고, 하루 전체를 성화하겠다는 위도를 나타낸다. 또 다른 이름, ‘브레비아리움’(Breviarium)의 기원은 중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라틴말 breviaria(=축약된, 줄여진)에서 유래한다. 이것은 그 안에 있는 주(註)나 짧은 지시를 따라, 공동으로 바칠 때 사용한 여러 책들에서 어떤 텍스트들을 취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ㅉ랍은 목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11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모든 텍스트들을 한 권의 책 안에 담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한 권으로 묶고서도 이전 목록들의 이름(이것을 tabellaria라고도 불렀다)을 여전히 표기하고 있었다. 이 한 권으로 묶은 성부일도는 개인적으로 암송하는 데에, 특히 여행할 때 크게 편리했다. ‘Breviarium’의 어원적인 기원에 대해 어떤 다른 학자들은 “성무일도를 바치기 위해 사용한 여러 책들(시편집, 응송집, 기도집, 독서집)을 하나로 묶으면서 생긴 축약, 독서들의 축소”로 설명한다. 자주 사용되는 또 다른 이름 하나가 ’직무(Officium)이다. 이는 자주 ‘하느님의’(divinum)라는 수식어와 함께 쓰인다.
‘성무일도’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이 이름은 서방 라틴 교회에서 본래 의무와 의식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더욱이 전례 행위 정체를 뜻하는 이름이어었다. 그러나 점차로 시간 전례만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러한 관례는 제2차 바타칸 공의회 후 새 시간 전례서가 나올 때까지 게속되었다. 오늘날에는 ‘성무일도’라는 용어보다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간 전례’(Liturgia Horarum, Liturgia delle Ore, Pri re des Heures, Stundenfebet, Liturgy of the Hours)라는 말로 이 전례를 표현한다.
서방 대부분의 나라에 로마 예식이 전파되면서 로마 시간 전례도 받아들여졌다. 중세기에는 기도의 수와 길이가 증가되는 경향을 보였으나 이러한 증가와 확장은 커다란 불편을 주어 시간 전례를 축소하게 하였다. 특별히 16세기초에 근본적인 개혁을 강하게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1535년에 Qui ines 추기경이 개인적으로 바치도록 마련한 ‘성 십자가 축소 성무일도’라고 하는 아주 축소된 Breviarium은 몇 년 사이에 약 100판이나 나올 정도로 열정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렇지만 이것은 교회 권위에 의해 금지되고, 1568년 비오 5세가 개편한 새 Breviarium으로 대체된다. 그러나 이것도 즉시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특별히 언급해야 할 것은 비오 10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개혁들이다. 여기서는 밤중기도의 시편이 18개 또는 12개였던 것이 9개로 줄어들었다. 다음으로 비오 12세는 1948년 전례의 전반적 개혁을 준비하는 위원회를 세우고 1950-1957년에 전 5권으로 된 새 성무일도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러한 비오 12세의 전례 개혁의 노력은 1955년과 1960년의 법규 개편을 결실로 내놓기도 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집중적으로 Breviarium의 개혁에 열을 쏟아 전례헌장 안에 19개할(83-101)으로 된 한 장(제4장)을 이 부문에 할애했다. 여기에서는 시간 전례의 신학과 영성에 관한 중요한 사실들을 언급하고 있고, 공동체 기도의 특성을 강조한다. 또한 ‘시간의 진리’ 곧 기도의 시간을 제 시간에 맞추도록 강조한다(88항). 구체적인 개정을 위한 기준은 89항에 소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