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 행렬(行列)


 

성체 행렬이란 성체를 모시고 장엄한 예식과 노래로 거리에 행렬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체께 대한 신앙과 신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이다.(예식서 101)




(1) 성체 행렬의 유래


중세기 초에는 여러 가지 행렬이 많이 유행되었는데, 흔히 성인들의 유해(그것을 다른 곳으로 옮길 때나 그 성인들의 축일에)나 십자고상이나 다른 종교적 상징들을 모시고 행렬하였다. 임종자들에게 노자성체를 모셔갈 때도 장엄한 행렬을 이루었는데, 신자들은 거기에 참가하도록 불러모아졌고, 그 행렬이 환자의 집을 향하여 지나가면서 종을 딸랑거리면 거기에 참가하지 못한 신자들은 그 소리를 듣고 마음 속으로 성체를 공경하였다. 성 목요일에 거행되는 장엄한 예절에서는 미사드리는 제단으로부터 성체를 다른 장소로 옮겨 모시는 행렬이 특징을 이룬다. 그 성체는 성 금요일에 ‘기존 성체’에 의한 예절을 거행하기 위하여 거기에 보존한다. 이러한 전례행위는 축제적 표현을 통한 특별한 장엄성을 드러낸다. 여기에서 우리는 최초의 성체행렬의 성격을 알 수 있으며 말하자면 그것이 성체행렬의 모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이미 봉헌된 미사가 거기에서 축성된 성체의 보존과 행렬을 거치는 영성체(미사 밖의 영성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다른 관습이 그 비슷한 시대에 있었는데, 그것은 주의 수난 성지주일에 주의 현존을 나타내기 위하여 축성된 성체를 모시고 행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성체축일의 제정을 그것을 새로운 성격의 행렬로 만들었으며, 1264년 교황 우르바노 5세가 그 축일에 성체행렬을 성대하게 거행하도록 전체 교회에 지시한 칙서 Transiturus에서도 그것에 대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13세기 말 쾰른에서 증명되었다. 이 쇄신은 도시에서부터 시골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이때 아마 유해 현시대를 사용하여 성체를 거동하고 백성들에게 현시하였을 것이며 이것이 최초의 성체현시대(성광)일 것이다. 이 행렬의 성공으로 성체행렬은 다른 기회에서도 거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15세기 말 독일의 몇몇 지방에서는 성체행렬이 연중 대축일을 성대하게 지내는 방법이 되었었다.1)




(2) 성체 행렬시의 주의점


새 예식서에 의하면 성체행렬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성체께 대한 신앙과 신심을 도시나 마을의 거리에서 공적으로 증거하는 기회가 된다. 그러나 지방 주교들은 오늘의 현실적 환경을 고려해서(이제는 더 이상 전체 사회가 성체께 대한 신심을 가지고 교회에 참가하는 그리스도교 백성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행렬을 위한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예식서 101) 그리고 “성체행렬은 미사에 이어 거행할 것이며 그 미사에서 행렬에 모실 성체를 축성한다. 그러나 미사 후 상당한 시간의 조배를 한 다음 거행하는 것도 무방하다.”(예식서 103) 다른 모든 행렬이나 마찬가지로 성체행렬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이 허락지 않는다면 출발한 성당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행렬은 성체강복으로 끝나고 성체는 감실에 모신다.(예식서 1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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