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권 제 9장 애굽에 살던 히브리인들이 400년 동안 당한 고통에 대하여

 


제 9 장



 애굽에 살던 히브리인들이 400년 동안 당한 고통에 대하여



1. 이스라엘인들의 억압 [출1:7]



 애굽인들은 수고하여 일하기보다는 무기력해지고 게을러져갔으며, 다른 쾌락에 빠졌고 특히 부의 획득만을 탐하게 되었다.그들은 또한 히브리인들의 부유함에 시기하여 히브리인들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게 되었고, 이스라엘인들이 덕망을 갖추고 있었고 열심히 일하여 번창했고, 이미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었던것에 대해 자기네들에게는 점점 손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요셉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특별히 왕권이 다른 집안으로 넘어가게 되자,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을 학대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들에게 고통을 가했다. 애굽인들은 히브리인들에게 수많은 수로를 만들게했고, 강물이 범람하여 강물의 둑을 넘쳐 흘러서 물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도시에 성벽과 누벽을 쌓게 했고 또한 피라밋도 건설하게 했다. 이 모든 일들로 인해 그들을 지치게 했고[㈜ 성경의 부연설명. 성경에는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의 건축\’만을 언급한다.] 모든 종류의 기계로 하는 일들을 배우게 하고 중노동에 익숙하게 했다. 그들은 400년 동안을[㈜ 창15:13절에서 발견되는 완전 숫자. 그러나 요세푸스는 다른 진술들과는 일치하지 않음. 출12:40 절에는 애굽 체류기간이 430년으로 나옴. 칠십인역을 따라서 요세푸스는 그 시기에 가나안 땅에서 전에 체류한 기간을 포함한다. 이것을 ½로 나누어 애굽의 체류기간(215년)을 추론해 낸다.] 이러한 고통 가운데 보냈으며 지배하는 자들과 투쟁했다. 애굽인들은 이런 노동으로 이스라엘인들을 멸망시키려 했고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의 지배하에서도끝까지 버티어 보려고 했다.



2. 모세가 태어날 것을 예고한 예언가 [출1:15]



 히브리인들이 이러한 상황에 있었을 때 애굽인들에게 다음과같은 일로 하여 히브리 민족의 멸망을 더욱 원하게 되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예언해 주는 매우 현명한 서기관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애굽 제사장들과 성문서의 기록들을 지키는 자들과 해석하는 자들, 애굽 점성술객들의 똑같은 예언에 대한 랍비적인 암시는 베이(Weill)가 인용한다.] 왕에게 얼마 안 있으면 이스라엘에 한 아이가 태어날 것인데, 그가 성장하면 이스라엘인들을 일으켜 애굽인의통치권을 낮출 것이며 그의 덕망은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날 것이며 모든 세대에 걸쳐 기억될 만한 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말했다. 이 서기관의 말에 따라 왕은 너무 놀라서 이스라엘인들에게서 출생한 모든 남아들은 강물에다 던져서 죽이라고 명령했다. 이외에도 애굽인 산파들은 히브리 여인들이 출산하는 것을지켜보고 무엇을 낳는지를 주목해 보라고 명령했다. 왜냐하면이들은 산파의 임무를 맡은 여인들이었고 왕과 관련되어 있었으므로 그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출1:15절 이하-명령들이 히브리 산파들에게 주어졌다고 진술-와는 정반대임.] 왕은 또한 만일 어떠한 부모들이 왕에 대해 불복종하여 그들의 남아를 살리려고 한다면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죽게 될 것이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이것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혹독한 고통이었다. 부모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자녀들을 죽이라는 데에 복종할 수밖에 없어서 아들들을 빼앗기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들을 죽임으로 그 나라의 민족을 근절시키는 것으로 생각되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점점 위로 받을 수도 없었고, 이 재난은 매우 힘들어져서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갈 수 없는 것이었고 이것이 그들에게 처해진 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비록 왕이목적을 위해 만가지 교묘한 책략을 고안해 냈을지라도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목적에 대해선 너무나 어려워서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거룩한 서기관이 예언했던 이 아이는 왕이 임명했던 감시자로부터 숨겨져서 양육되어졌기 때문이었다. 서기관이 예언했던 대로 그 아이가 보존될 것이라는 면에서는 조금의 실수가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관해선 다음과 같다.



3. 아므람에게 고지해 주신 하느님



 히브리 귀족 중의 한 사람인 아므람(Amaram)[㈜ 아므람이란 이름은 출2:1절에 빠져있지만 6:20절에는 언급됨.]은 이후로 부터 양육되어진 젊은 남자들이 부족하여 모든 민족이 멸종당할것에 대해 두려워 했다. 그는 자기 아내가 아이를 갖게 되자 매우불안해 했으며 어떻게 해야할 바를 몰랐다. 이로 인해 그는 하느님께 기도를 했고 하느님의 율법을 어겨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그들이 당하고 있는 재난으로부터 구원해주시고 민족을 말살하려고 하는 적들의 술책을 물리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따라서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그의 간청에 의해마음이 움직이셨다. 하느님께서 그의 꿈속에 나타나셔서[㈜ 아므람의 꿈은 성경이야기의 부연설명으로 베이(Weill)에 의하면 메킬타(Mechilta)라고 알려진 출애굽기에 대한 가장 오래된 랍비 주석에서 언급된다.] 장래의 일들에 대해 불안해하지 말라고 권면하셨다. 하느님께서는더욱이 하느님을 향한 그들의 신앙심을 잊지 않으셨고, 전에 그들의 선조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것처럼 항상 그들에게도 은혜를 줄 것이며 소수에서 아주 큰 숫자로 늘어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아므람에게 아브라함이 혼자서 메소보다미아에서 가나안으로 왔을 때 다른 면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가 처음에는 잉태하지 못하였으나 이후에는 그를 통해 아이를낳을 수 있도록 하여 많은 후손들은 낳게 해 행복하게 해 주었음을 생각나게 했다. 또한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들에게는 아라비아 지역을, 그두라의 아들들에게는 트로글로디티스(Troglo-dytis)[㈜ 1권.15장(238).]를, 이삭에게는 가나안을 남겨 주었음도 기억하라고 하셨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롯(Lot)의 구출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큰 업적을 남긴 사실을 잊어버린다면 하느님을 경시하는 불손한 행위가 될것이라고도 하셨다. 야곱도 그가 살았던 곳에서 크게 번창하여다른 민족 가운데서도 잘 알려졌으며 애굽으로 들어와 70명에겨우 불과했었던 자녀들이 이제 60만이[㈜ 애굽을 떠난 성지 남자들에 대한 전통적으로 과장된 숫자(출12:37, 민11;21).] 넘지 않았으냐고 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좋은 모든 것들을 줄 것이며, 특히 너를유명하게 할 것이니 알고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애굽인들이 이스라엘 자녀들을 죽일까봐 걱정하고 있는 아이는 너의 아이가 될 것이며, 그를 죽이려고 지켜보고 있는 자들을 피해 숨기게 될 것이다. 그 아이는 놀라운 방법으로 양육되어져서 애굽인들 지배 하에고통당하고 있는 히브리민족을 구원해 낼 것이다. 그는 히브리 민족에서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세계가 계속 지속되는동안 유명해 질 것이며, 이 모든 것이 너와 너의 후손에게 은혜를끼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 아이에게는 또한 형이 있을 터인데형은 나의 제사장직을 얻게 될 것이며 그의 후손들은 세상 끝까지그를 이어 제사장직을 맡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4. 모세의 출생과 나일강에 버려짐



 아므람은 환상으로 이런 일들을 알고 그 일이 일어난 후에 그의 아내인 요게벳(Jocebbed)[㈜ 성경적으로 출6:20에 나오는 요게벳(Jochebed, 칠십인역: !Iwcabed).글자 모양에서 최후의 자음은 헬라문자△와∧의 혼동으로부터 나오며 아마 후기 서기관들에게 그 원인을 돌릴 수 있다.]에게 이런 일을 말했다. 그런데 아므람의 꿈속에서의 예언은 그들에게 더욱 두려움을 갖게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린아이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그에게 오게 될 아주 큰 행복 때문에 염려하게 되었다. 그러나 요게벳의 해산은 하느님이 예언한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산고가 심하지 않아 진통 없이 쉽게 해산하여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부연설명.베이(Weill)에 의하며 랍비적인 평행구를 지니고 있음.] 그래서 그들은 그 아이를 3개월 동안 몰래 키웠다. 그러나 그 당시에 아므람은 발견이 되어서 왕의 불만을 건드려서 자신과 그 아이가 죽게 되어서 하느님의 약속을 효과 없이 만들까봐 두려워하여 아이를 몰래 키워서 위험에 직면하게 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아이를 몰래 숨겨서 키우는 것보다 오히려 하느님께 아이를 안전하게 맡겨서 돌보게끔 하도록 결정했다.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서는 자기가 예언한 사실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든지그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이렇게 결정했을 때 갈대 상자로 요람의 형태로 만들어 심한 고통을 겪지 않고 아이가 눕기에 충분할 정도의 큰 요람을 만들고 물이 갈대 상자 사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역청을 칠하고, 그 아이를 그 안에넣고 강에다 떠내려 보내면서 하느님께서 지켜주시게끔 했다.그 아이는 강물을 따라 떠내려 갔다. 그러나 그 아이의 누이인미리암(Mariam)[㈜ 미리암(Miriam, 칠십인역 Mariavm). 출15:20.]은 그녀의 어머니가 갈대 상자가 어디로 떠내려 가는지를 지켜보라는 말씀에 따라 그 아이가 떠내려가고있는 둑을 따라 내려갔다. 이곳에서 하느님은 인간의 지혜는 쓸모가 없으며 하느님만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즉 자신의 안전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이려고하고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실패하나 다른 사람들은 놀랍게 보호를 받아서 재난 가운데 있는자들로부터 하느님의 약속에 의해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이다.사실상 하느님의 섭리가 하느님의 능력임을 이 아이를 통해 보여 주었다.



 5. 공주에 의해 구출된 모세 [출2:5]



 데르무디스(Themuthis)[㈜ 성경에는 명명되지 않은 이름으로 이 공주는 전통적으로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본문에 나타나는 그녀는 다른 곳에서는 요세푸스와 일치하는 주전 100년대의 유대 작품인 쥬빌리서(The Book of Jubilees)에서 반복된다.<47;5탈무드(쏘그ㅕ소)>. 신켈루스(Syncellus, i:227, 챨스가 인용함).데르무디스 혹은 파리에(Qevrmouqi\”h kaiv Farivh 일명 이시스 Isis)라는 제2의 인물도 덧붙인다. 아르타파누스<Artapanus:주전 2세기 유세비우스(Eusebius)의 \’복음의 준비\'(Praep.Eu)., ix:27에 나옴>에서는 그녀를 메리스(Merris)라고 부른다. 탈무드와 대상4:18절에 따르면 비디아(Bithiah)라고 명명된다.]는 왕의 딸이었다. 그녀는 강둑에 눈을 돌리다가 물결을 따라 요람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수영할 수 있는 사람들을[㈜ 출2:5에 \”그녀의 시녀\”(칠십이역에는 Thvn avbran).]보내어 그 요람을 받은 자들이 그녀에게 요람을 가져왔을 때 그녀는 그 아이의 크고 잘생긴 모습을 보고 그 아이를 매우 좋아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모든 히브리 민족을 죽이려고 하는 가장 치명적인 결정을 내린 자들에 의해 모세가 잘 양육되어지고 부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게끔 모세를 키우는데 큰 관심을 가지셨다. 데르무디스는 그들에게 그 아이에게 젖을 먹여줄 부인을 데려오게 했으나 그 아이는 그녀의 젖을 먹지 않고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다른 부인들에게도 똑같이 고개를 돌렸다. 이제 미리암은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의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곳에 서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아이를 지켜보기 위해 있으면서 말했다.

 \”여왕님 그 아이와 친척도 아닌 여인들을 불러다가 젖을 먹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께서 히브리 여인들 중의 한명을 데려온다면 같은 민족의 부인의 젖은 먹을 것입니다.\”

 이에 여왕은 그 말이 괜찮다고 여기고 데르무디스는 젖을 줄수 있는 히브리 여인들 중의 한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다. 미리암은 그녀에게 그러한 권한을 받아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를 데려갔으며, 그곳에서는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 아이는 기쁘게 젖을 먹었으며, 그 젖에 가깝게 붙어 있는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 여와은 자기에게 젖먹이는 일을 전적으로 그 어머니에게 맡겼다.



 6. 그의 이름과 외모의 수려함 [출2:10]



 이후에 데르무디스는 그 아이를 강물에서 발견했으므로 모세(Mouses)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왜냐하면 애굽인들은 물을 모(Mou)라고 했고, 물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에세스(eses)[㈜ 요세푸스는 공공연하게 한 애굽인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 어원을 반대한다(출2:20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히브리얼 Ma놈는 \”끌어내다\”의 의미이다). 요세푸스는 아피. 1권. (286)과 필로(Philo)의 \’모세의 인생\’ I:417에서 애굽 사람들은 물을 모위(Mw\’u)라고 부른다. 그러나 콥틱어의 어원-\”mo는 \’물\’ 그리고 use는 \’구원받은\’ 이것은 한 동안 영향력을 행사했다.\”-은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성서대백과(Enc.Bibl)모세부분).]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두 단어들을 합쳐서 그에게 모세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세는 모든 사람들의 고백에 의하면 어려움을 참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온유한 마음이 히브리민족 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의 선조로써 7대손이었다. 모세는 아므라함의 아들이었고, 아므람은 그핫(Caath)의 아들이었고, 그핫은 레위(Levi)의 아들이었으며, 레위는 야곱(Jacob)의 아들이었고, 야곱은 이삭의 아들이었으며, 이삭은아브라함의 아들이었다.[㈜ 이야길를 단절하고 몇몇 편집자들에 의해 끼워 넣어진 문장은 작가의 첨가일 수 있다. 모세가 야곱의 14대 손이라는 성경과 일치하는 문장은 애굽에서 400년동안의 체류와 상충된다. 고대.2권.9:1(204)] 모세는 나이에 비해 판단력이 뛰어났으며 기준을 훨씬 넘었다.[㈜ 참).눅 2:52 대조.] 그리고 그가 가르침을 받을 때 보통 나이 또래들 보다 훨씬 이해력이 빨랐고, 성인이 되며 그의 행동들이 더욱 위대하게 될 것임을 약속하는 듯했다. 하느님은 또한 그가 세 살 밖에 안되었는데도 놀라울 정도의 키가 크게 하셨고, 사람들이 모세를 보았을 때 그의 용모의 준수함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모세가 길을 걸어갈 때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들이 지나치다가 다시 돌아서서 그 아이를 쳐다보거나 한참 동안이나 서서 모세를 쳐다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왜냐하면 그 아이의 준수한 용모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주목할만 할 정도였다.[㈜ 스테반 집사의 설교-\”그는 하느님께 아름다운지라\”(h\’n ajsiei\’o\” tw\’ qew\’ 행7:20)-는 랍비의 전통에 의해 확증된 성경에만 나오는 아이의 아름다움을 언급하는 말이다. 참). 출,2;10에 대하 미드라뒤<Midrash, 뷘쉐(Wunsche)에 의해 편집됨>에는 \”바로의 딸은 더 이상 그로 하여금 왕궁을 떠나게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준수하였기 때문에 모두가 그를 보기를 원하였다. 그리고 그를 본 사람은 누구든지 그를 떠날 수가 없었다.\”라고 되어 있다.]



7. 유아기의 모세와 바로왕



 데르무디스는 아이를 낳는 복을 누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를자기 아들로 삼았다.[㈜ 출2:10;이 단락의 나머지 부분과 그 이후에 나오는 장은 성경이야기의 부연설명이다.] 그래서 그녀가 한번 모세를 자기 아버지에게로 데려갔을 때 그녀는 아버지에게 모세를 보여 주면서 만일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자신에게 어떠한 적자도 생기지 않을때, 모세를 아버지의 후계자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계속해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하느님의 형상을 지니고있는 관대한 마음을 가진 아이를 양육했어요. 제가 이 아이를 강가에서 기적적으로 구해냈을 때, 저는 이 아이를 양자로 삼아서왕국의 계승자로 삼는 것이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이런 말을 한 후에 아기를 그녀의 아버지 팔 안에 안겨주었다. 그러자 그 아버지는 그 아이를 자신의 품 안에 꼭 껴안았다.그리고 자기의 딸의 말에 따라서 기쁘게 왕관을 그 아기의 머리위에 씌어주었다. 그러나 모세는 그것을 발로 짓밟았다.[㈜ 이미 인용된 출2:10에 대한 미드라쉬(Midrash)는 또 하나의 형태로 된 이야기가 나온다. 즉 \”바로는 그에게 입맞추었고의 가슴에 안았으며 모세는 바로왕으로붙 왕관을 취하여 자신의 머리에 얹었다.\” 또 다른 미드라쉬-베이(Weill)에 의해 인용된 탄쿠마(Tanchuma)-는 그 어린이가 왕으로 왕관을 취했다는 것을 제외하고 요세푸스와 일치한다. ] 이것은 마치 애굽왕국에 관한 불길한 예감을 가져오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현명한 서기관이 이것을 보았을 때(그는 모세의 출생이 왕국의 통치권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그를 죽이려고 격렬해져서 놀라울 정도로 큰 소리를치면서 말했다. \”왕이여! 바로 이 아이가 하느님께서 예언하셨던 아이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아이를 죽이다면 어떠한 위험에도 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아이가 당신의 통치권을 짓밟고 왕관을 밟음으로써 그 예언이 똑같이 일어나게 됨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이를 멀리 갖다 버리시고, 그 때문에 괴로움에 처할 애굽인들을 구원하셔서 히브리인들에게서 그에의해 용기를 얻게 되는 희망을 빼앗으십시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보호할 섭리가 있어서 왕이 그를 가해하지 않을 마음이 들도록 하여 성급하게 그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 모세는 히브리인들로부터 미래에 대한 그들의 소망과 기대를 한몸에 받으면서 애굽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으나 이러한 모세를 바라보는 애굽인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설혹 바로왕이 그를 죽여 없앤다 하더라도 바로왕의 일가 친척 주변에는 모세만큼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본문은 와전되었으며 그 의미가 애매하다. 역자(Thackeray)는 다른 명백한 상속인이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애굽 사람들의장래의 유익을 도모할 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함부로 모세를 죽일 수도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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