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기드온의 뒤를 이은 많은 사사들이 이웃나라들과 오랫동안 싸운 것에 대하여
1. 폭군 아비멜렉 [삿8:30, 9:1]
기드온은 아내를 여럿 두었기 때문에 몸에서 낳은 아들이 70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드루마(Druma)라고[㈜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이름. 한 동안 아비멜렉이 거하였던(삿9:41)성읍의 이름 \’아루마(Arumah)\’에서 실수로 취해진 이름일 수 있다.] 하는 한 첩에게서 아비멜렉(Animelech)이라고 하는 한 아들을 낳았다. 아비멜렉은 그가 아버지가 죽고 나자, 고향인 세겜에[㈜ 헬라어로 시키마(Sikima)임 (대부분의 칠십인역 사본에는 이렇게 나와있음).] 머물러 있던 그의 어머니에게로 가서 (많은 죄를 저질러 악명이 높은 사람들을 고용했으며)[㈜ 헬라어 본문에는 빠져 있음. 삿9:4,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放蕩)하고 경박(輕薄)한 유(類)를 사서 자기를 좇게하고\’에서 보충되어진 것이다. ] 그들에게서 돈을 얻었다. 그리고 그들을 인솔하여 그의 부친이 살던 집으로 돌아와 집을 수리하고 요담(Jot-ham)을 제외한 모든 그의 형제들을 살해해 버리고 말았다. 요담을 용케도 도망하여 목숨을 구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독제체제를 유지하였고, 자기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면서 정의를 수호하려는 자들을 탄압하였다.
2. 요담이 세겜 사람들에게 설교하다 [삿9:7]
한편 세겜에서 공식 축제가 열리자[㈜ 축제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음.] 많은 백성들이 그 곳에 몰려 들었다. 그런데 이 때 앞에서 언급했던 도망쳐 나온 아비멜렉의 형제인 요담은 세겜 성이 내려다 보이는 그리심(Garizin)산에 올라가 세겜 성에 있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 들으면 들을수 있는 큰 목소리로 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자기의 소리에 주목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주위가 잠잠해지자 요담은 말하기 시작하였다. \”나무들이 한 데 모여 의논을 한 끝에 무화과나무더러[㈜ 사사기에서는 올리브나무가 첫 번째로, 그리고 무화과나무 그 다음에 포도나무가 차례대로 다가온다.] 자기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무화과 나무는 말하기를 자기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명예보다는 자기가 가지에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영광을 지닌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왕위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나무들은 왕을 두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하여 이번에는 포도나무에게 가서 자기들의 왕이 되어줄 것을 부탁하였지만 포도나무 역시 무화과 나무와 똑같은 이유를들어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였습니다. 나무들은 다시 감람나무에게 요구를 해보았지만 여전히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나무들은 땔감으로나 적당한 가시나무에게 가서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자, 가시나무는 자기가 왕이 되고 싶어 하던 차에 잘되었다 생각하여 그들의 요청을 수락하고 왕의 임무를 열심히수행해 내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시나무는 다른모든 나무들에게 자기의 그늘 아래에 와서 앉도록 말하면서, 만일 자기에게 음모를 꾸미는 자는 그 가시나무 안에 있는 불로써모두 태워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요담은 자기가 한이 말은 듣고 즐기기 위하여 한 말이 아니라 당신들이[㈜ 헬라어 본문에서 세겜인들(Shechemites)은 2인칭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기드온으로부터 많은 축복된 삶을 받았으면서도 아비멜렉이 자칭 군주로 군림하는 것을 방관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형제들을 죽이는 데에 한 패거리가 되어 있는 것이 한심스러워 자기 말을 듣고 잘못을 깨달으라는 뜻으로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결국은 아비멜렉이 그들 백성들 불사르는 불이 될 것임을 예언하였다. 요담은 이 말들을 마 마친후에 아비멜렉을 두려워하여 산 속으로 도망하여 3년이나 숨어살았다.
3. 아비멜렉을 추방함 [삿9:23]
절기가 지나고 얼마 후에[㈜ 성경에는 없음.] 세겜 주민들은 기드온의 아들들을 죽인 것에 대해 후회를 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아비멜렉을 그 성읍과 지파에서 추방해 버렸다. 이에 아비멜렉은 세겜 성에 해를 가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주민들은 포도 수확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비멜렉의 해를 염려하여 포도따기를 꺼려했다. 그러할 즈음 가알(Gual)이라고[㈜ 헬라어로 구알레스(Guales)이고 성경에는 가알(Gaal)임.] 하는 사람이 그의 군사수행원들과 친지들을 거느리고 세겜 성을 방문하게 되었는데,그는 이스라엘 족장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 때 주민들은 그에게나아와 포도 수확을 하는 동안 그들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가알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이에세겜 성의 주민들은 가알의 군사들을 앞장 세우고 들에 나아가포도를 안전하게 딸 수가 있게 되었다. 그들은 여러 명씩 모여저녁 식사를 하면서 내놓고 아비멜렉을 비난하였다. 또한 군대의 지도자들은 성읍의 주위에 매복조를 배치시킨 후, 아비멜렉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게 하였다
4. [세겜인들이 당한 큰 재난]
세겜의 지도자들 가운데에는 아비멜렉을 추종하던 스불(Zab-ul)이란[㈜ 혹은 몇몇 사본에는 (성경에 나오는 이름인) \’스불(Zebul)\’로 되어 있음.]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신들을 아비멜렉에게 보내어,가알이 세겜인들을 선동하여 그를 대적하게 하고 있으니 성 앞에 그(아비멜렉)가 매복해 있으면 자기가 가알을 부추겨서 싸움을 하러 나가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니 그 다음에는 그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일렀다. 또한 이렇게 되면 그가 다시 세겜성의주민들과 관계를 회복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아비멜렉은 병사들을 매복시키고 자신도 성 앞에 매복해 있었다.가알은 신변의 안전을 생각하지도 않고 성의 외곽에 머무르고있었다. 그 때 스불이 그와 함께 있었다. 가알이 정탐꾼 몇 명이서둘러 다가오는 낌새를 알아 보고는 스불에게 무장병사가 오는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스불은 그것은 단지 바위의 그림자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이상한 것들이 더욱 가까이로 다가 오는 것을 분명히 발견하고는 \”이것들은 결코 그림자가 아니라 사람이 매복해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때스불은 \”그러나 당신은 아비멜렉이 겁쟁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지 않소? 이제 그와 맞서 싸움으로써 당신의 그 용맹성을 입증해 보시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가알은 제대로 준비할 겨를도 없이 아비멜렉의 군대와[㈜ 이 부대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와있지 않음.] 맞서 싸우는 바람에 부하 몇 명을 잃고 세겜 성으로 도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이에 스불은 가알이 아비멜렉과 맞서 싸울 때에 비겁하게 도망을 했다는 사실을 많은 세겜 성의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함으로써 가알을 성밖으로 쫓아 내었다. 아비멜렉은 백성들이포도를 수확하기 위하여 성밖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성 앞에 군병들을 매복시켰다. 세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자 그의 병사들의 삼분의 일은 성문을 가로 막아 세겜인들이다시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고 나머지 병사들은 흩어져도망치는 세겜인들을 추격하였다. 결국은 여기저기에 죽은 시체가 가득 깔렸다. 아비멜렉은 모든 성을 파괴시켜 버린 후에,소금을 뿌리고 모든 세겜인들을 죽여버렸다. 간신히 도망쳐서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한 바위에 모여 거기에 거하며 그 곳에성을 쌓을 준비를 하였다.[㈜ 망대를 언급함에 있어 성경과 다름. 세겜은 성전에 있었지만 성벽이 없는 마을이었음이 분명하다. 삿9:46, \”세겜 망대의 사람들이 이를 듣고 엘 브릿(El-berith)신당의 보장(保障, 혹은 Crypt, \’지하실, 토굴\’이란 뜻인데 확실한 의미는 분명치 않음)으로 들어갔더니.\”] 아비멜렉이 이들의 의도를 눈치채고 그들을 방해하기 위해 병사들을 거느리고 습격하여, 그곳 주위에 마른 장작을 가득 쌓아 놓은 후에 불을 지르고 불이잘 붙는 것이면 무엇이나 거기에다 던져 넣었다. 그러자 무섭게 불이 타올랐다. 이로 인해 그곳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단 한명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 남자만 약 1,500명 가량이[㈜ 삿9:49절에 따르면 \’남녀가 대략 1,000명\”으로 되어 있다.] 죽었고,그 외에도 부녀자나 아이들 까지 합하면 엄청난 숫자가 몰살을당한 것이다.
이상이 세겜인들이 당한 큰 재난이었다. 이러한 그들의 재앙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에게[㈜ 기드온(Gideon).] 배은망덕한 죄를 지음으로써 당한 마땅한 운명이었다.
5. 아비멜렉의 죽음 [삿9:50]
아비멜렉은 세겜 사건으로 이스라엘인들을 깜짝 놀락 한 후에 무서운 독재를 실시하기 시작하였고 무분별한 폭력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그는 데베스(Thebes)를[㈜ 성경에는 데베스(Thebez, 칠십인역 Qhbhv\”), 세겜(Shechem)의 북동쪽 약 10마일 떨어진 현재의 투바스(Tubas)임.] 급습하여 강제로 그 곳을 강탈하였다. 데베스에는 큰 망대가 하나 있었는데 그리로 모든 주민들이 피신하자 그는 그 망대를 공격할 준비를 서둘렀다. 그가 힘으로 문을 파괴하려고 달려들 때에 한여인이 그의 머리를 향해 맷돌 윗짝을 던졌다. 아비멜렉은 그맷돌 윗짝에 맞아 쓰러지면서, 여인의 손에 맞아 죽었다는 소리를 듣기 싫으니 병기를 든 소년에게 자기를 죽이라고 지시했다. 이에 병기를 든 소년은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결국 아비멜렉은 그의 형제들에게 행한 사악함과 세겜인들에게 행한 야만적인 행위에 대한 벌로 이런 죽음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세겜인들이 당한 재난은 요담이 예언한 그대로였다. 아비멜렉을 따르던 병사들은 그가 죽게 되자, 각자 뿔뿔이 흩어져 자기집으로 돌아갔다.
6. 야일의 통치 [삿10;3]
그 다음에 통치권을 이어 받은 사람은 므낫세 지파에 속한 길르앗인[㈜ 헬라어 본문에는 \’갈라덴인\'(Galadenian)으로 나옴. 요세푸스는 사사 돌라(Tola)를 누락하고 있는데 성경은 그가 아비멜렉(Abimelech)과 야일(Jair)사이의 23년간의 기간을 사사로 역할 수행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삿10:1이하).] 야일(Jair)이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하느님의 축복을많이 받은 사람이지만, 특히 그에게는 용감한 아들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그의 아들들의 수는 30명에 달했는데, 모두가 승마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길르앗[㈜ 헬라어 본문에는 \”갈라데네\”(Galadene)임.] 지방에있는 여러 성읍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위임받았던 것이다. 그의아버지는 22년간의 통치를 한 후에 나이가 들어 죽었는데, 그의 장례는 길르앗 땅에 있는 가몬(Kamon)이라고[㈜ 아마 가다다(kGadara)의 남동쪽 약 7마일 떨어진 현재의 쿠메임(Kumeim)일 것임.] 하는 한 성에서 영예롭게 이루어졌다.
7. 암몬과 블레섹 지배하의 이스라엘 [삿10:6]
그러나 히브리인들의 전반적인 사회 실정은 무질서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고, 하느님과 율법에 대해서 경멸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암몬 족속과 블레섹 족속이[㈜ 블레셋인들을 동방으로부터(암몬족(Ammonites)을 따라)온 침략자들로 소개한 것은 이상한데 이것은 성경 본문에 있는 다소 모호한 진술에서 기인되었다고 생각되어 온다.(삿10:7).] 그들을 얕잡아 본 나머지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와 이스라엘 나라를 황폐화 시켰다. 그들은 온 페라이아[㈜ 현재의 트랜스요르단(Transjordan).] 지역을 다 정복하고 나머지나라들도 모두 정복할 목적으로 강을 건넜다. 그들에게 해를 당하고 나서야 히브리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께 나아가 도와주실 것을 간구하였다. 그리고는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며 더 이상 자기들을 가혹하게 대하지 마시고 진노를 거두시어 자기들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자비로 대하여 도와 주시기로 결심을 하였다.
8. 입다를 부름 [삿10:17]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을 때에 길르앗 주민들은 한 산에서 그들을 맞아 싸우려 하였으나 이 전쟁을 통솔할 수 있는 마땅한 지도자가 없었다. 그런데 그 당시 조상의 뛰어난 용기를 물려 받아 매우 용감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비(私費)로 군대를 육성하였던 입다(Jephthah)라고[㈜ 헬라어로 예프다스(Jephthas), 혹은 야프다스(Japhthas).] 하는 사람이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인들은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도와 주기만하면 그에게 평생 동안 통수권자의 위치를 위임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 극심한 학대를 받고 있을 때에는 무관심하더니 이제 그들의 형편이 어렵게 되니까 아쉬운 소리를 한다고 그들을 비난하면서 요청을 거절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입다는 그의 형제들과 배가 다른 이복형제였기 때문에 그의 형제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무능하다는 이유로 쫓겨났었기 때문이다. 그런 쓰라린 과거의 아픔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길르앗(Galaditis)이라 불리워지는 지역에서[㈜ 성경에는 (좀더 정확하게) \”돕(Tob) 땅에\”라고 되어 있음(삿11:3).]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지 수용해 주었으며, 그들에게 급료를 줘 가면서까지 살면서이처럼 큰 세력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이스라엘인들이 그에게 강력하게 자기들을 다스려 줄 것을 요청하면서 평생 동안그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겠다고 맹세를 하자 그는 그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기로 약속했다.
9. 전쟁 전의 사절단 [삿11:11]
입다는 즉시 전황을 살펴 본 후에 그의 군대를 미스바(Mas-phathe)에[㈜ 성경에는 미스바(Mizpah, 칠십인역 Mashfav)인데 위치는 확실치 않음.] 진치게 하고 암몬인들에게 사신을 보내어 왜 남의땅을 침범했느냐고 항의했다. 이에 암몬 왕은 입다의 입장과는 정반대 되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해 왔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사실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자기네들이 옛적부터 조상에게 물려 받았던 유업인 아모리 족속의[㈜ \’아모라이아\’ (Amoraea)는 아르논(Arnon)강 북쪽에 있는 국가이다. 참).고대.4권.5:1(85).암몬(Ammonite)국가는 얍복강(the river Jabbok)에 있는 성경상의 랍바(Rabbah)인 라바타(Rabatha)에 수도를 가지고 있으므로 훨씬 더 북쪽에 있다. 참). 고대. 4:98.] 땅을 반환해 줄 것을요구해 왔다. 이에 입다는 응답하기를 적들은 이와 같은 문제에대해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으며, 도리어 모세가 정복했을 수도 있었던 암몬족속의 땅을 남겨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이 땅은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것이며 이미 300년이나 이 곳에서 살아 왔으므로 이 땅을 그들에게 넘겨 줄 수 없는 것이라면서[㈜ 약간 불확실한 본문. 그가 그 땅을 떠날 것(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가능하다(Weill).] 그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10. 입다의 승리 : 그의 딸의 운명 [삿11:30]
이렇게 일축함으로써 입다는 사신들을 되돌려 보냈다. 그리고 그는 승리를 위한 기도를 드린 후에[㈜ 혹은 \’언약하면서\’.] 그를 무사히 돌아올 수만 있게 해 주신다면, 그는 돌아올 때 자기를 마중하러 나온 첫 생명은 무엇이든지 하느님께 제물로 바칠 것이라고 서원하였다. 그는 적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으며 민닛(Maniath)[㈜ 삿11:33에는 민닛(Minnith)으로 나오는데 확실하지 않은 장소이다.] 성까지 추격하여 적들을 완전히 섬멸하였다. 그 후, 그는 암몬인의 땅까지 쳐들어 가서 재물을 약탈하였고 18년간의 종 생활로부터 동족들을 구해내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올 때 대승을 거둔 것과는 달리 큰 불행을 만나게 되었다.[㈜ 투키디데스(Thucidides), 3:113,3에 근거한 어법(語法).] 그를 처음 마중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딸이었는데, 그의 딸은 아직 어린 아이였을뿐만 아니라 처녀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입다는 그가 당한 큰 고통으로 인하여 심히 해통해 했으며, 왜 앞장 서서 자기를 마중하러 나와 하느님께 제물로 바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느냐고 딸을 책망했다. 그러나 딸은 아버지의 승리와 동족의 자유를 위해죽는 것이라면 기꺼이 죽겠다고 말했다. 딸은 아버지에게 꽃다운 나이에 죽느니 만큼 친구들과 원 없이 울 수 있도록 두 달 간의여유를 달라고 부탁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아버지께서 하느님께 맹세하신 대로 하셔도 좋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기간이 지나지 입다는 그의 딸을 제물로 하느님께 바쳤다. 그러나 이러한 제사는 율법에 적합하지도 않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실에 대해 듣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신중하게 고려해 보지도 않고 행한 무분별한 행위였던 것이다.[㈜ 경솔한 약속은 랍비전승에서는 비난받는 것으로 되어있다(베이(Weill)는 \’Genesis Rabba\’ 60을 인용함).]
11. 입다와 에브라임 지파 간의 싸움 [삿12:1]
에브라임 지파는 입다가 암몬 원정을 떠날 때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으며, 혼자만 영광을 독차지하고 전리품도 차지해 버렸다고 비난하면서 싸움을 걸어왔다. 이에 입다는 그들에게 응답하기를 첫째로 자기 형제 지파가 포위된 줄도 모르고 있었으면서 이제 와서 헛소리하는 그들이 한심하며, 둘째로 설사 도움을 요청하지 않더라도 어려울 때는 알아서 도와줘야 하는 것이 옳을텐데 지원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체 하고선 이제 와서 딴소리 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그는 적들과싸울 때는 우물쭈물하던 자들이 동족을 치기 위해서는 이처럼신속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너무나 우습지 않느냐고 비난했다.입다는 그들이 이처럼 어리석게 행동하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경고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입다의 말을 듣지 않자, 그는 길르앗주민들을 동원하여 그들을 쳐부수고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는요단강 길목에 미리 군사를 배치하여 그 곳을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에브라임 병사들을 추적하여 요단강 길목에서 42,000여명을 살해했다.[㈜ 요세푸스는 아마도 발음상의 차이가 헬라 독자들에게 명쾌한 부분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십볼렛(Shibboleth)의 발음을 씹볼렛(Sibboleth)으로 발음함으로 도망치는 에브라임 지파(Ephramites)를 검색하는 사사기 12:5-6의 상술(詳述)은 빠뜨리고 있다.]
12. 입다의 죽음 [삿12:7]
6년간의 통치를 마치고 입다는 죽었다. 그리하여 고향인 길르앗 지방에 있는 세베에(Sebee)에[㈜ 삿12:7 \”길르앗의 한 성읍에\”라고 한 부분은 와전되었다. 이것은 아마 \’길르앗 미스바(Mizpha of Gilead)에 있는 그의 성에서\’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미스바(Mizpha)에서 M자의 탈락으로 칠십인역의 몇몇 사본에서는 ejnSefev 혹은 ejnSevf으로 나오며 더 나아가 요세푸스는 세베(Sebee)라는 이름으로 기록한다. ] 장사되었다.
13. [입산의 통치]
입다가 죽게 되자 유다 지파의 베들레헴 출신인 입산이 그의 후임자로 통치권을 이어 받았다. 그는 60명의 자녀를 두었는데,그 중에서 아들이 30명이었고 나머지는 딸이었다. 그는 아들과 딸을 결혼시켜 사위와 며느리를 맞아 들였다.[㈜ (고대.5권. 7:15(274)에서처럼) 부연설명.] 그는 7년 동안 특기할 만한 일이나 기념할 만한 일을 하지 못한 채 나이 들어죽었으며 그의 고향에 장사되었다.
14. [엘론의 통치]
입산이 죽은 후, 그의 뒤를 이어 통치권을 행사한 엘론은 10년동안 아무 특기할 만한 업적도 남기지 못했다. 그는 스불론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15. [압돈의 통치]
에브라임 지파의 힐렐(Eldon)의 아들로서, 비라돈(Phrath0-n)[㈜ 히브리어로는 \’비라돈 사람\'(the Pirathonite)현재는 세겜(shechem)남서 6마일 떨어진 곳에 페라타(Feratha)임.] 출신의 압돈(Abdon)이 입산의 뒤를 이어 통치권을 얻게되었다. 그는 행복한 가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전해지는 바가 없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이스라엘 전국이 비교적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을 때였기 때문에 뛰어난 업적을 남길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아들이 40명이나 되었고그 아들들에게서 낳은 손자들이 30명이나 되었다. 그는 말을 잘 타는[㈜ 성경에는 \”어린 나귀를 탔었더라\”로 되어 있음.] 자손 70명을 데리고 위풍당당하게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그는 나이가 들어 죽었으며[㈜ 성경에는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된 지 팔 년이었더라\”로 나옴.] 비라돈에서 장엄하게 장사되었다.

제 7 장
기드온의 뒤를 이은 많은 사사들이 이웃나라들과 오랫동안 싸운 것에 대하여
1. 폭군 아비멜렉 [삿8:30, 9:1]
기드온은 아내를 여럿 두었기 때문에 몸에서 낳은 아들이 70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드루마(Druma)라고[㈜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이름. 한 동안 아비멜렉이 거하였던(삿9:41)성읍의 이름 ‘아루마(Arumah)’에서 실수로 취해진 이름일 수 있다.] 하는 한 첩에게서 아비멜렉(Animelech)이라고 하는 한 아들을 낳았다. 아비멜렉은 그가 아버지가 죽고 나자, 고향인 세겜에[㈜ 헬라어로 시키마(Sikima)임 (대부분의 칠십인역 사본에는 이렇게 나와있음).] 머물러 있던 그의 어머니에게로 가서 (많은 죄를 저질러 악명이 높은 사람들을 고용했으며)[㈜ 헬라어 본문에는 빠져 있음. 삿9:4,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放蕩)하고 경박(輕薄)한 유(類)를 사서 자기를 좇게하고’에서 보충되어진 것이다. ] 그들에게서 돈을 얻었다. 그리고 그들을 인솔하여 그의 부친이 살던 집으로 돌아와 집을 수리하고 요담(Jot-ham)을 제외한 모든 그의 형제들을 살해해 버리고 말았다. 요담을 용케도 도망하여 목숨을 구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독제체제를 유지하였고, 자기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면서 정의를 수호하려는 자들을 탄압하였다.
2. 요담이 세겜 사람들에게 설교하다 [삿9:7]
한편 세겜에서 공식 축제가 열리자[㈜ 축제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음.] 많은 백성들이 그 곳에 몰려 들었다. 그런데 이 때 앞에서 언급했던 도망쳐 나온 아비멜렉의 형제인 요담은 세겜 성이 내려다 보이는 그리심(Garizin)산에 올라가 세겜 성에 있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 들으면 들을수 있는 큰 목소리로 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자기의 소리에 주목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주위가 잠잠해지자 요담은 말하기 시작하였다. “나무들이 한 데 모여 의논을 한 끝에 무화과나무더러[㈜ 사사기에서는 올리브나무가 첫 번째로, 그리고 무화과나무 그 다음에 포도나무가 차례대로 다가온다.] 자기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무화과 나무는 말하기를 자기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명예보다는 자기가 가지에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영광을 지닌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왕위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나무들은 왕을 두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하여 이번에는 포도나무에게 가서 자기들의 왕이 되어줄 것을 부탁하였지만 포도나무 역시 무화과 나무와 똑같은 이유를들어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였습니다. 나무들은 다시 감람나무에게 요구를 해보았지만 여전히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나무들은 땔감으로나 적당한 가시나무에게 가서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자, 가시나무는 자기가 왕이 되고 싶어 하던 차에 잘되었다 생각하여 그들의 요청을 수락하고 왕의 임무를 열심히수행해 내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시나무는 다른모든 나무들에게 자기의 그늘 아래에 와서 앉도록 말하면서, 만일 자기에게 음모를 꾸미는 자는 그 가시나무 안에 있는 불로써모두 태워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요담은 자기가 한이 말은 듣고 즐기기 위하여 한 말이 아니라 당신들이[㈜ 헬라어 본문에서 세겜인들(Shechemites)은 2인칭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기드온으로부터 많은 축복된 삶을 받았으면서도 아비멜렉이 자칭 군주로 군림하는 것을 방관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형제들을 죽이는 데에 한 패거리가 되어 있는 것이 한심스러워 자기 말을 듣고 잘못을 깨달으라는 뜻으로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결국은 아비멜렉이 그들 백성들 불사르는 불이 될 것임을 예언하였다. 요담은 이 말들을 마 마친후에 아비멜렉을 두려워하여 산 속으로 도망하여 3년이나 숨어살았다.
3. 아비멜렉을 추방함 [삿9:23]
절기가 지나고 얼마 후에[㈜ 성경에는 없음.] 세겜 주민들은 기드온의 아들들을 죽인 것에 대해 후회를 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아비멜렉을 그 성읍과 지파에서 추방해 버렸다. 이에 아비멜렉은 세겜 성에 해를 가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주민들은 포도 수확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비멜렉의 해를 염려하여 포도따기를 꺼려했다. 그러할 즈음 가알(Gual)이라고[㈜ 헬라어로 구알레스(Guales)이고 성경에는 가알(Gaal)임.] 하는 사람이 그의 군사수행원들과 친지들을 거느리고 세겜 성을 방문하게 되었는데,그는 이스라엘 족장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 때 주민들은 그에게나아와 포도 수확을 하는 동안 그들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가알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이에세겜 성의 주민들은 가알의 군사들을 앞장 세우고 들에 나아가포도를 안전하게 딸 수가 있게 되었다. 그들은 여러 명씩 모여저녁 식사를 하면서 내놓고 아비멜렉을 비난하였다. 또한 군대의 지도자들은 성읍의 주위에 매복조를 배치시킨 후, 아비멜렉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게 하였다
4. [세겜인들이 당한 큰 재난]
세겜의 지도자들 가운데에는 아비멜렉을 추종하던 스불(Zab-ul)이란[㈜ 혹은 몇몇 사본에는 (성경에 나오는 이름인) ‘스불(Zebul)’로 되어 있음.]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신들을 아비멜렉에게 보내어,가알이 세겜인들을 선동하여 그를 대적하게 하고 있으니 성 앞에 그(아비멜렉)가 매복해 있으면 자기가 가알을 부추겨서 싸움을 하러 나가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니 그 다음에는 그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일렀다. 또한 이렇게 되면 그가 다시 세겜성의주민들과 관계를 회복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아비멜렉은 병사들을 매복시키고 자신도 성 앞에 매복해 있었다.가알은 신변의 안전을 생각하지도 않고 성의 외곽에 머무르고있었다. 그 때 스불이 그와 함께 있었다. 가알이 정탐꾼 몇 명이서둘러 다가오는 낌새를 알아 보고는 스불에게 무장병사가 오는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스불은 그것은 단지 바위의 그림자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이상한 것들이 더욱 가까이로 다가 오는 것을 분명히 발견하고는 “이것들은 결코 그림자가 아니라 사람이 매복해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때스불은 “그러나 당신은 아비멜렉이 겁쟁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지 않소? 이제 그와 맞서 싸움으로써 당신의 그 용맹성을 입증해 보시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가알은 제대로 준비할 겨를도 없이 아비멜렉의 군대와[㈜ 이 부대에 대해서는 성경에 나와있지 않음.] 맞서 싸우는 바람에 부하 몇 명을 잃고 세겜 성으로 도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이에 스불은 가알이 아비멜렉과 맞서 싸울 때에 비겁하게 도망을 했다는 사실을 많은 세겜 성의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함으로써 가알을 성밖으로 쫓아 내었다. 아비멜렉은 백성들이포도를 수확하기 위하여 성밖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성 앞에 군병들을 매복시켰다. 세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자 그의 병사들의 삼분의 일은 성문을 가로 막아 세겜인들이다시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고 나머지 병사들은 흩어져도망치는 세겜인들을 추격하였다. 결국은 여기저기에 죽은 시체가 가득 깔렸다. 아비멜렉은 모든 성을 파괴시켜 버린 후에,소금을 뿌리고 모든 세겜인들을 죽여버렸다. 간신히 도망쳐서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한 바위에 모여 거기에 거하며 그 곳에성을 쌓을 준비를 하였다.[㈜ 망대를 언급함에 있어 성경과 다름. 세겜은 성전에 있었지만 성벽이 없는 마을이었음이 분명하다. 삿9:46, “세겜 망대의 사람들이 이를 듣고 엘 브릿(El-berith)신당의 보장(保障, 혹은 Crypt, ‘지하실, 토굴’이란 뜻인데 확실한 의미는 분명치 않음)으로 들어갔더니.”] 아비멜렉이 이들의 의도를 눈치채고 그들을 방해하기 위해 병사들을 거느리고 습격하여, 그곳 주위에 마른 장작을 가득 쌓아 놓은 후에 불을 지르고 불이잘 붙는 것이면 무엇이나 거기에다 던져 넣었다. 그러자 무섭게 불이 타올랐다. 이로 인해 그곳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단 한명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 남자만 약 1,500명 가량이[㈜ 삿9:49절에 따르면 ‘남녀가 대략 1,000명”으로 되어 있다.] 죽었고,그 외에도 부녀자나 아이들 까지 합하면 엄청난 숫자가 몰살을당한 것이다.
이상이 세겜인들이 당한 큰 재난이었다. 이러한 그들의 재앙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에게[㈜ 기드온(Gideon).] 배은망덕한 죄를 지음으로써 당한 마땅한 운명이었다.
5. 아비멜렉의 죽음 [삿9:50]
아비멜렉은 세겜 사건으로 이스라엘인들을 깜짝 놀락 한 후에 무서운 독재를 실시하기 시작하였고 무분별한 폭력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그는 데베스(Thebes)를[㈜ 성경에는 데베스(Thebez, 칠십인역 Qhbhv”), 세겜(Shechem)의 북동쪽 약 10마일 떨어진 현재의 투바스(Tubas)임.] 급습하여 강제로 그 곳을 강탈하였다. 데베스에는 큰 망대가 하나 있었는데 그리로 모든 주민들이 피신하자 그는 그 망대를 공격할 준비를 서둘렀다. 그가 힘으로 문을 파괴하려고 달려들 때에 한여인이 그의 머리를 향해 맷돌 윗짝을 던졌다. 아비멜렉은 그맷돌 윗짝에 맞아 쓰러지면서, 여인의 손에 맞아 죽었다는 소리를 듣기 싫으니 병기를 든 소년에게 자기를 죽이라고 지시했다. 이에 병기를 든 소년은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결국 아비멜렉은 그의 형제들에게 행한 사악함과 세겜인들에게 행한 야만적인 행위에 대한 벌로 이런 죽음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세겜인들이 당한 재난은 요담이 예언한 그대로였다. 아비멜렉을 따르던 병사들은 그가 죽게 되자, 각자 뿔뿔이 흩어져 자기집으로 돌아갔다.
6. 야일의 통치 [삿10;3]
그 다음에 통치권을 이어 받은 사람은 므낫세 지파에 속한 길르앗인[㈜ 헬라어 본문에는 ‘갈라덴인'(Galadenian)으로 나옴. 요세푸스는 사사 돌라(Tola)를 누락하고 있는데 성경은 그가 아비멜렉(Abimelech)과 야일(Jair)사이의 23년간의 기간을 사사로 역할 수행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삿10:1이하).] 야일(Jair)이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하느님의 축복을많이 받은 사람이지만, 특히 그에게는 용감한 아들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그의 아들들의 수는 30명에 달했는데, 모두가 승마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길르앗[㈜ 헬라어 본문에는 “갈라데네”(Galadene)임.] 지방에있는 여러 성읍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위임받았던 것이다. 그의아버지는 22년간의 통치를 한 후에 나이가 들어 죽었는데, 그의 장례는 길르앗 땅에 있는 가몬(Kamon)이라고[㈜ 아마 가다다(kGadara)의 남동쪽 약 7마일 떨어진 현재의 쿠메임(Kumeim)일 것임.] 하는 한 성에서 영예롭게 이루어졌다.
7. 암몬과 블레섹 지배하의 이스라엘 [삿10:6]
그러나 히브리인들의 전반적인 사회 실정은 무질서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고, 하느님과 율법에 대해서 경멸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암몬 족속과 블레섹 족속이[㈜ 블레셋인들을 동방으로부터(암몬족(Ammonites)을 따라)온 침략자들로 소개한 것은 이상한데 이것은 성경 본문에 있는 다소 모호한 진술에서 기인되었다고 생각되어 온다.(삿10:7).] 그들을 얕잡아 본 나머지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와 이스라엘 나라를 황폐화 시켰다. 그들은 온 페라이아[㈜ 현재의 트랜스요르단(Transjordan).] 지역을 다 정복하고 나머지나라들도 모두 정복할 목적으로 강을 건넜다. 그들에게 해를 당하고 나서야 히브리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께 나아가 도와주실 것을 간구하였다. 그리고는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며 더 이상 자기들을 가혹하게 대하지 마시고 진노를 거두시어 자기들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자비로 대하여 도와 주시기로 결심을 하였다.
8. 입다를 부름 [삿10:17]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을 때에 길르앗 주민들은 한 산에서 그들을 맞아 싸우려 하였으나 이 전쟁을 통솔할 수 있는 마땅한 지도자가 없었다. 그런데 그 당시 조상의 뛰어난 용기를 물려 받아 매우 용감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비(私費)로 군대를 육성하였던 입다(Jephthah)라고[㈜ 헬라어로 예프다스(Jephthas), 혹은 야프다스(Japhthas).] 하는 사람이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인들은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도와 주기만하면 그에게 평생 동안 통수권자의 위치를 위임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 극심한 학대를 받고 있을 때에는 무관심하더니 이제 그들의 형편이 어렵게 되니까 아쉬운 소리를 한다고 그들을 비난하면서 요청을 거절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입다는 그의 형제들과 배가 다른 이복형제였기 때문에 그의 형제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무능하다는 이유로 쫓겨났었기 때문이다. 그런 쓰라린 과거의 아픔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길르앗(Galaditis)이라 불리워지는 지역에서[㈜ 성경에는 (좀더 정확하게) “돕(Tob) 땅에”라고 되어 있음(삿11:3).]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지 수용해 주었으며, 그들에게 급료를 줘 가면서까지 살면서이처럼 큰 세력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이스라엘인들이 그에게 강력하게 자기들을 다스려 줄 것을 요청하면서 평생 동안그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겠다고 맹세를 하자 그는 그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기로 약속했다.
9. 전쟁 전의 사절단 [삿11:11]
입다는 즉시 전황을 살펴 본 후에 그의 군대를 미스바(Mas-phathe)에[㈜ 성경에는 미스바(Mizpah, 칠십인역 Mashfav)인데 위치는 확실치 않음.] 진치게 하고 암몬인들에게 사신을 보내어 왜 남의땅을 침범했느냐고 항의했다. 이에 암몬 왕은 입다의 입장과는 정반대 되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해 왔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사실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자기네들이 옛적부터 조상에게 물려 받았던 유업인 아모리 족속의[㈜ ‘아모라이아’ (Amoraea)는 아르논(Arnon)강 북쪽에 있는 국가이다. 참).고대.4권.5:1(85).암몬(Ammonite)국가는 얍복강(the river Jabbok)에 있는 성경상의 랍바(Rabbah)인 라바타(Rabatha)에 수도를 가지고 있으므로 훨씬 더 북쪽에 있다. 참). 고대. 4:98.] 땅을 반환해 줄 것을요구해 왔다. 이에 입다는 응답하기를 적들은 이와 같은 문제에대해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으며, 도리어 모세가 정복했을 수도 있었던 암몬족속의 땅을 남겨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이 땅은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것이며 이미 300년이나 이 곳에서 살아 왔으므로 이 땅을 그들에게 넘겨 줄 수 없는 것이라면서[㈜ 약간 불확실한 본문. 그가 그 땅을 떠날 것(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가능하다(Weill).] 그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10. 입다의 승리 : 그의 딸의 운명 [삿11:30]
이렇게 일축함으로써 입다는 사신들을 되돌려 보냈다. 그리고 그는 승리를 위한 기도를 드린 후에[㈜ 혹은 ‘언약하면서’.] 그를 무사히 돌아올 수만 있게 해 주신다면, 그는 돌아올 때 자기를 마중하러 나온 첫 생명은 무엇이든지 하느님께 제물로 바칠 것이라고 서원하였다. 그는 적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으며 민닛(Maniath)[㈜ 삿11:33에는 민닛(Minnith)으로 나오는데 확실하지 않은 장소이다.] 성까지 추격하여 적들을 완전히 섬멸하였다. 그 후, 그는 암몬인의 땅까지 쳐들어 가서 재물을 약탈하였고 18년간의 종 생활로부터 동족들을 구해내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올 때 대승을 거둔 것과는 달리 큰 불행을 만나게 되었다.[㈜ 투키디데스(Thucidides), 3:113,3에 근거한 어법(語法).] 그를 처음 마중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딸이었는데, 그의 딸은 아직 어린 아이였을뿐만 아니라 처녀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입다는 그가 당한 큰 고통으로 인하여 심히 해통해 했으며, 왜 앞장 서서 자기를 마중하러 나와 하느님께 제물로 바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느냐고 딸을 책망했다. 그러나 딸은 아버지의 승리와 동족의 자유를 위해죽는 것이라면 기꺼이 죽겠다고 말했다. 딸은 아버지에게 꽃다운 나이에 죽느니 만큼 친구들과 원 없이 울 수 있도록 두 달 간의여유를 달라고 부탁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아버지께서 하느님께 맹세하신 대로 하셔도 좋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기간이 지나지 입다는 그의 딸을 제물로 하느님께 바쳤다. 그러나 이러한 제사는 율법에 적합하지도 않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실에 대해 듣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신중하게 고려해 보지도 않고 행한 무분별한 행위였던 것이다.[㈜ 경솔한 약속은 랍비전승에서는 비난받는 것으로 되어있다(베이(Weill)는 ‘Genesis Rabba’ 60을 인용함).]
11. 입다와 에브라임 지파 간의 싸움 [삿12:1]
에브라임 지파는 입다가 암몬 원정을 떠날 때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으며, 혼자만 영광을 독차지하고 전리품도 차지해 버렸다고 비난하면서 싸움을 걸어왔다. 이에 입다는 그들에게 응답하기를 첫째로 자기 형제 지파가 포위된 줄도 모르고 있었으면서 이제 와서 헛소리하는 그들이 한심하며, 둘째로 설사 도움을 요청하지 않더라도 어려울 때는 알아서 도와줘야 하는 것이 옳을텐데 지원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체 하고선 이제 와서 딴소리 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그는 적들과싸울 때는 우물쭈물하던 자들이 동족을 치기 위해서는 이처럼신속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너무나 우습지 않느냐고 비난했다.입다는 그들이 이처럼 어리석게 행동하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경고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입다의 말을 듣지 않자, 그는 길르앗주민들을 동원하여 그들을 쳐부수고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는요단강 길목에 미리 군사를 배치하여 그 곳을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에브라임 병사들을 추적하여 요단강 길목에서 42,000여명을 살해했다.[㈜ 요세푸스는 아마도 발음상의 차이가 헬라 독자들에게 명쾌한 부분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십볼렛(Shibboleth)의 발음을 씹볼렛(Sibboleth)으로 발음함으로 도망치는 에브라임 지파(Ephramites)를 검색하는 사사기 12:5-6의 상술(詳述)은 빠뜨리고 있다.]
12. 입다의 죽음 [삿12:7]
6년간의 통치를 마치고 입다는 죽었다. 그리하여 고향인 길르앗 지방에 있는 세베에(Sebee)에[㈜ 삿12:7 “길르앗의 한 성읍에”라고 한 부분은 와전되었다. 이것은 아마 ‘길르앗 미스바(Mizpha of Gilead)에 있는 그의 성에서’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미스바(Mizpha)에서 M자의 탈락으로 칠십인역의 몇몇 사본에서는 ejnSefev 혹은 ejnSevf으로 나오며 더 나아가 요세푸스는 세베(Sebee)라는 이름으로 기록한다. ] 장사되었다.
13. [입산의 통치]
입다가 죽게 되자 유다 지파의 베들레헴 출신인 입산이 그의 후임자로 통치권을 이어 받았다. 그는 60명의 자녀를 두었는데,그 중에서 아들이 30명이었고 나머지는 딸이었다. 그는 아들과 딸을 결혼시켜 사위와 며느리를 맞아 들였다.[㈜ (고대.5권. 7:15(274)에서처럼) 부연설명.] 그는 7년 동안 특기할 만한 일이나 기념할 만한 일을 하지 못한 채 나이 들어죽었으며 그의 고향에 장사되었다.
14. [엘론의 통치]
입산이 죽은 후, 그의 뒤를 이어 통치권을 행사한 엘론은 10년동안 아무 특기할 만한 업적도 남기지 못했다. 그는 스불론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15. [압돈의 통치]
에브라임 지파의 힐렐(Eldon)의 아들로서, 비라돈(Phrath0-n)[㈜ 히브리어로는 ‘비라돈 사람'(the Pirathonite)현재는 세겜(shechem)남서 6마일 떨어진 곳에 페라타(Feratha)임.] 출신의 압돈(Abdon)이 입산의 뒤를 이어 통치권을 얻게되었다. 그는 행복한 가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전해지는 바가 없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이스라엘 전국이 비교적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을 때였기 때문에 뛰어난 업적을 남길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아들이 40명이나 되었고그 아들들에게서 낳은 손자들이 30명이나 되었다. 그는 말을 잘 타는[㈜ 성경에는 “어린 나귀를 탔었더라”로 되어 있음.] 자손 70명을 데리고 위풍당당하게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그는 나이가 들어 죽었으며[㈜ 성경에는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된 지 팔 년이었더라”로 나옴.] 비라돈에서 장엄하게 장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