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권 제 3장 다윗이 예루살렘을 포위공격하였으며 그 성을 빼앗아 가나안인들을 몰아내고 유대인을 그곳에 이주시킨 것에 대하여

 


제 3 장



   다윗이 예루살렘을 포위공격하였으며 그 성을 빼앗아 가나안인들을 몰아내고 유대인을 그곳에 이주시킨 것에 대하여



1.다윗이 여부스 사람에게서 예루살렘 성을 빼앗음〔삼하5 ; 6, 대상 11: 4 〕



   가나안 족속으로 예루살렘 성에 거하던 여부스사람들 (Jeb- usites)은 성문을 닫고 성벽 위로 눈 하나를 잃은 자, 다리 하나를 잃은 자, 여하한 이유든 절뚝거리는 자들은 다윗 왕을 조롱하기 위해 올라가게 했다.[㈜ 성벽을 기어 올라간 이야기 요세푸스에 의해서 첨가된 것이다. 요세푸스는 삼하 5:6 \”그 사람들(여부스사람들)이 다윗에게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 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에 나오는 여부스족에 관한 기사를 문자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들은 이 절뚝발이들이 다윗 일행이 들어오는 것을 제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들의 성벽이 철통 같음을 과시난 나머지 말 그대로 실행에 옮  겼다. 다윗의 분노는 끊어 올랐고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성을 단번에 함락시킴으로써 그의 능력을 과시하고 여  부스 사람들이 행한 것처럼 자신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일대 경종을 울리기 위해 집요한 열정과 노력을 보였는데. 하부 도시는[㈜ 예루살렘의 동쪽 언덕의 남쪽 부분으로 추정된다.] 무력으로 함락시켰으나 성채는[㈜ 이곳은 \”다윗의 성읍\”으로 불리웠던 곳으로서 위에서 언급 하였던 \”하부도시(lower city)\’의 북쪽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건재함에 따라, 다윗왕은 포상의 약속으로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결심을 하고 성채 밑에 있는 골짜기를 따라 성채 위로 올라가 그 곳을 함락시키는 자에게는 참전한 모든 백성의 총사령관으로 삼겠다고 제안하였다. 그들은 서로 올라가려고 경쟁하였고 총사령관이 되겠다는 열망 속에 어떤 어려움데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 자 다른 사람보다 훨씬 앞서 있던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정상에 다다랐을 때 총사령관 자리를 달라고 왕에게 외쳐 요구하였다 [대상 11:6]



2. 예루살렘 성이 다윗에 의해 요새화 됨  〔삼하5:9〕



  다윗은 여부스 사람들을 성채에서 쫓아냈을 때 예루살렘을 재건하여 다윗 성이라고 칭하고 그 통치 기간 동안 그곳에 계속 거하였다. 다윗은 헤브론에 7년6개월 동안 유다 지파만을 다스 렸었다.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후 하느님의 섭리하에 한층 더 많은 부귀를 누리며 번창해 갔다. 두로(Tyre)왕  히람(Eiromos)도[㈜ 성경의 히람, 혹은 후람. 70인역에는 ceiravm] 다윗에게 편지를 써서 수교와 동맹을 제의 하였고, 예루살렘에 있는 궁정을 건축하도록 예물과 백향목과 숙련된 목수와 건축 기사들을 보내 주었다. 다윗은 하부도시 주 위를[㈜ 다른 본문에는 \’상부도시\’. 고대 지형학의 불분명한 관점으로는 삼하5:9,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에 근거하여 요세푸스의 본문을 입증하기란 어려움이 있다. 본문의 뜻과 밀로의 위치는 불분명하다. 성경의 뜻은 다윗이 동쪽 언덕의 (성채)의 북쪽 부분과 남쪽 돌출 부분, 즉 요펠(하부도시)을 결합시킨 것을 의히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포함시켜 전체가[㈜ 문자적으로는 \’신체.\’] 하나가 되도록 성채와 연결시켰고. 이 주위에 성벽을 쌓고 그 관리를 요압에게 맡겼다.

  이리하여 최초로 여부스 사람들을 예루살렘에서 쫓아냈던 다윗은 그의 이름을 본타 성의 이름을 지었다. 이 성은[㈜ 즉, \’다윗의 성읍\'(왕상 3:1, 다윗성).] 우리 선조 아브라함 시대에는 솔리마(Solyma)라고 불리어졌는데 그후에[㈜ \’그러나 훗날에\’등의 뜻도 있음. 본문이 불확실함. 다른 사본들에는 \”그러나 어떤이는 말하기를 훗날 호머 (Homer)가 이곳을 \’히에로 솔리마\’로 부렀다\”고 나와 있다. 비록 아피.1권 22(172)에 나오긴 하지만 이 말들은 아마도 주석인 것으로 보인다. 아피.의 부분은 헤라 시인 Choerilus(Herodotus와동시대임)에게서 인용된 부분인데 그는 예루살렘과 같다고 하는 호머(\’오딧세이\’,ⅴ283)이후에 \’솔리마 언덕들\'(Solymian hills)을 언급한다. 멜기세덱을 언급하는 전쟁.6권 438이하의 관점에서 그는 이전에 솔리마라고 불렸던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 성읍에 붙였던 사람이다. 니이제(Niese)의 \’Praef\’1권.p.32에서는 본문을 다음과 같이 재정리 했다..\”이후에 가나안의 통치자였던 멜기세덱은 이를 둘러 성을 건축하여 안전케 했으며 이를 히에로 솔리마라고 불렀다.hierou는 히브리어로 \’안전\’을 뜻한다\” 니아제는 성정을 언급한 본문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만 요세푸스가 (니제의 말대로) hierou를 솔리마보다 오히려 안전, 즉 샬롬에 대한 히브리 단어와 관련시켰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신전을 \’솔리마\’라고 부르고, 성은 히에로솔리마 (Hierosolyma)라고 불렀다. 이 말은 히브리 방언으로 \’안전\’을  의미한다. 가나안 정벌 및 가나안 땅 분배를 지휘했던 총사령관 여호수아의 시대로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예루살렘에서 축출하지 못했다) 다윗이 그들을 포위하여 쫒아 낼 때까지의 기간은 총515년 이었다.[㈜ 이 숫자는 고대,8권 3:1(61) 나오는 수치와 일치한다. 요세푸스는 여기에서 출애굽으로부터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의 재위4년 까지를 592년으로 계산한다(왕상6:1에서는 480년이라고 기록한다). 그런데 만일 여기에서 77년(40년간의 모세의 활동과 33년간의 다윗이 예루살렘을 통치한 기간과 성전을 짓기까지의 솔로몬의 통치 기간4년을 합산한 기간)을 감한다면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한 때부터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때까지의 515년을 산출해 낼수가 있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고대.20권.10:1(230)이나 아피2권.1:2(19)에서 볼 수 있듯이 성경상의 수치와 다른 기록을 하고있다. 그는 출애굽 이후부터 성전을 짓기까지의 기간을 592년이 아닌 612년 이라고 기록한다. 더욱이 베이(Weill)는 고대5권-7권까지에서 수많은 사사들과 지배자들이 여호수아 이후로부터 솔로몬 시대까지 지배한 총 횟수가 불과 504년 6개월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3. 다윗의 자녀들 〔삼하5:12, 대상 3:5, 14:4〕



   나는 여기에서 예루살렘 함락시에 히브리인들에게 우호적이 고 헌신적이엇으며 친절하게 대했던 요유로 다윗에 으해 살해되지 않은 부유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Oronnas)에[㈜ 성경의 \’아라우나\'(역대기에슨\’오르난\’),70인역에는 !Ornav.성경에는 그에 관하여 삼하24:16에서 처음으로 언급을 하고 있다.] 대해 간단히 헌급하고 조금 후에 적절한 상황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 다.[㈜ 고대.7권 13:4(329)]다윗은 이미 얻었던 아내들 외에 다른 아내들과 첩들을 얻었는데 그들을 통해 열 한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들의 이름은 아마세(Amase), 암누(Amnu), 세바(Seba),나단(Nathan), 솔로몬(Solomon), 예바레(Jebare) ,엘리에스(\’Elies), 팔나게에스(Phalnagees), 나페스(Naphes), 예나에(Jenae), 엘리팔레 (Eliphale)였다.[㈜ 나단과 솔로몬을 제외한 요세푸스는 본문에 나와 있는 이름들의 정확한 형태를 재생한다는 것은 블가능하다. 더욱이 세개로 분리된 목록을 성경에서 말견할 수 있으며 히브리 사본이나 헬라어 사본과 이 다양한 목록들은 전혀 일치되지 않는다. 삼하 5:14의 첫행에 나오는 이름 목록  을 제시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디. :삼무아, 소밥, 나단, 솔로몬, 입할. 엘리수아,네백,야비아,엘리사마,엘랴마,엘리벨렛, 역대기에 나오는 두개의   목록들은 엘리벨렛을 반복하고 있으며 13개의 이름과 함께 노가를 첨가시키고 있다.] 딸의 이름은 다말(Thanara)이었는데[㈜ 성경의 다말. 70인역에는 qamavr] 이들중 아홉은 적자였고 앞에서 언급한 이들 중 마지막 둘은 서자였다.[㈜ 성경을 보면 대상 3:9에서 이 열 한명의 아들들중 한명도 첩의 아들이 없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다 다윗의 아들이요 저희의 누이는 다말이며 이외에 또 첨의 아들들이 있었더라.\”] 다말은 압살롬과 동복 남매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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