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권 제 6장 느부갓네살이 애굽 왕을 정복하고 유대로 출정하여 어떻게 여호야김을 살해하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을 왕으로 세웠는지에 대하여

 


제 6 장



느부갓네살이 애굽 왕을 정복하고 유대로 출정하여 어떻게 여호야김을 살해하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을 왕으로 세웠는지에 대하여 



 1. 느부갓네살이 느고에게 승리를 한 것과 여호야김에게 조공을 받치게 함 [왕하 24 : 1, 렘 46 : 2 (70인



  여호야김 통치 4년에 느부갓네살(脚ebuchadnezgar)이 바벨론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왕위에 오름과 동시에 대군을 이끌고 유브라데 강유역에 있는 갈그미스(Karchamissa)[㈜ 성경에는 갈그미스(Carchemish), 70인 역에는 Karcameiv\”, 이문에는 Carmeiv\”, 갈그미스는 북 수리아 알레포(Aleppo) (현지명은 헬람 <Haleb>)의 남서쪽 약 60마일에 있는 유브라데 북서쪽의 현 예라불루스(Jerablus)바로 이웃에 위치하고 있다. ]시로 수리아 전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애굽왕 느고와 전쟁을 하려고 진격해 왔다. 느고가 바벨론왕의 목적과 자기를 공격하려고 하는 사실을 알자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느부갓네살을 대적하기 위해 대군을 유브라데 강변으로 보냈으나 싸움에서 패하여 수많은 병사들을 잃어버렸다. [㈜ 요세푸스는 예레미야 46장에 기록된 느고(Necho)의 패배에 관한 세부적 이고 시 적 인 서술을 생 략하였다. ] 그런 후 바벨론왕은 유브라데 강을건너 유대를 제외하고 펠루시움에까지 전 수리아 지역을 점령하였다. [㈜ 성경(열왕기하)에는 \”바벨론왕이 애굴의 강으로부터 유브라데 강에 이르기까지 애굽왕에 속한 모든 것을 취하였다\”로 표기.] 느부갓네살 통치 4년되던 해가 여호야김이 히브리 민족을 통치한지 8년이 되던 해였다. [㈜ 왕하 24 : 1에 따르면 여호야김(Jehoiakim)은 3년동안 느부갓네살 (Nebuchadnegsar)에게 예속되었다가 그를 반역하여 들고 일어났 다. 성경은 그 반역이 여호야김이 11년간의 치세를 끝내는 일이 되 었으며 여호야김은 그의 치세 제8년(혹은 9년)에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고대. 10권. 6 : 1(84)에서 요세푸스 는 느부갓네살의 제1년을 여호야김의 제4년과 동등시한다. 그러므 로 느부갓네살의 제4년은 여호야김의 제8년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제7년일 것이다. 더구나 렘 26 . 1이하에 따르면 여호야김의 바벨 론에 대한 도전이 그의 통치 초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이때 바벨론왕은 대군을 이끌고 유대를 진격하여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협박하며 여호야김에게 조공을 요구하였다. 이 협박을 받은 여호야김은 돈을 주고 평화를 획득하여 3년동안 그는 조공을 바치게 됐다. [㈜ 성경은 조공을 바친 것을 별도로 언급한 것이 아니라 \”그의 종이 되었다\”는구절 속에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 ]



 2. 예레미야가 애굽과 동맹맺는 것을 반대하다가 감옥에 갇힘 [렘 26 : 1(70인역 33 : 1)]



  3년이 지나고 애굽이 바벨론왕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여호야김은 조공 바치는 것을 중단하였다. 그러나 그는 애굽이 과감히 시행을 하지 못하자 그의 희망은 실망스러웠다. 이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매일매일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너희들이 애굽에게 도움을 구하려고 희망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헛된지 아느냐? 이 도시는 바벨론왕에게 파괴될 것이고 여호야김왕은 그에게 항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예레미야가 이런 일들을 예언해도 소용이 없었다. 왜냐면 백성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들었던 것을 무시하였고,[㈜ 성경에 따르면 제사장들과 거짓 예언자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배척하였으나 귀족들과 장로들은 그를 지지하였다. ] 예레미야의 예언에 화를 내면서 왕에게 좋지않은 예언을 한 것처럼 예레미야를 고소하여 법정에 끌고가 처벌을 요청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적대하는 투표를 던져 장로들의 충고를 거절하였다. [㈜ 본문과 의미가 확실하지 않음.]그러나 현명하게 이해하였던 장로들은 감옥에서[㈜ 요세푸스는 70인역이 램 32 : 2에서 히브리 hasar ham-mattarah(시드기야의 궁중의) \”시위대(侍衛隊) 뜰\”로 번역한 것처럼 여기서는 aujlh; rh\’\” fylakh\’\”를 명백히 암시하고 있다. 요세푸스가 여 호야김 통치시의 및몇 사건들을 시드기야 통치시의 사건들과 혼돈하 는 것은 그다지 놀랄 만한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의 히브리 본문과 헬라어 본문에서의 연대기가 혼돈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여호야김 통치에 관한 이야기가 시드기야 통치를 다룬 본문 후에 다 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Weill)는 성전의 뜰을 여기서의 aujlh\’\”로 이해한다. 참). 램 26장(70인역에는33장) 7절 이하, 그러나 이 예는 적절하지 않다. ] 예언자를 풀어주고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말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충고해주었다. 장로들이 그 이유를 말하였다. \”예레미야가 이 도시는 멸망하리라고 예언했던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 예레미야 이전에 미가(Michaia)도[㈜ 70인역과 동일함(이문(異文)에는 Meicaiva\”) ;성경에는 미가(Micah) 로 표기.] 다른 많은 선지자들처럼 이와 같은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어떤 사람도 그 당시 왕에 의해 고통당하지 아니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선지자로 존경을 받았었습니다. \” 이런 말로 인해 장로들은 백성들의 마음을 누그러 뜨리고 경멸을 받았던 형벌에서 예레미야를 구해주었다.



 [예레미야가 예투살렘이 멸망할 것이라는 그의 예언을 공개적으로 읽다 렘 36 : 9(70인역 43 : 9)]



  그후 선지자는 자기의 모든 예연을 기록하였고, 여호야김 통치 5년 9월이[㈜ 히브리사본과 대부분의 70인역 여러 사본들과 동일함 ; 70인 역 cod. B 8th.] 될 때 백성들이 금식을 하며 성전에 모여 있을때 선지자는 예루살렘과 성전과 백성들에게 임할 것들에 관해 기록한 책을 읽었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그것을 듣자 그 책을 빼앗고 선지자와 그의 서기관 바룩(Baruch)에게 자신들에게서 떠나 아무에게도 보이지 말라고 하였다. 그들이 그 책을 가져가 왕에게 드렸다 그러자 왕은 자 친구들과 같이 있는 곳에서 그의 서기관에게 주어 큰소리로 읽도록 하였다. 그러나 왕은 그 책에있는 것을 듣자 화가 나서는 갈기갈기 찢어 화로에 던져버렸다. 그후 왕은 예레미야와 그의 서 기관 바룩을 찾아 벌을 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분노에서 피할 수 있었다. [㈜ 이 마지막 문장(o|utoi me;n ou )은 그들의 탈출 이야기가 요세푸스의 본 문으로부터 누락되었거나 아마도 렘36(10인역 43) : 26 \”그리고 야훼께서 그들을 감추셨다\”라는 성경구절의 의미에 관한 의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의해 생략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



 3.여호야김이 느부갓네살에게 죽임을 당하다 [왕하 24:2, 대하 36:6, 렘 22:18]



   그러나 오래지 않아 바벨론왕은 여호야김을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오자 여호야김은 선지자가 예언했던 것으로 인 해 두려움이 생겨 바벨론왕을 영접하였다, 이렇게 했던 것은 자기가 성문을 굳게 닫지 않고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해 를 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도시로 돌아오자 바벨론왕은 자기 맹약을 지키지 않고 예루살렘 안에 있는 가장  원기왕성하고 훌륭한 주민들과 같이 여호야김왕을 죽여버렸다.[㈜ 랍비들과같이 요세프스는 렘 52:28((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옮긴 백성이 이러하니라. 제 칠년에 유다인이 삼천 이삽 삼이요:) 에 언급된 유수를 여 호야김(Jehoiakim)의 통치와 연결시키고 있다. 열왕기하 혹은 역대하에 서 는 여호야김의 통치시 유대인의 어떠한 유수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여호야김을 성벽앞에 묻지 말고 버리라고 하였다.[㈜ 참). 램 22:19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역대하에 따르면 여호야김은 선조들과 함께 매장되었었는데, 그의 처형 방법에 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다: 역대하에 따르면 그는 바벨 론에 묶여 끌려갔다고 되어 있다. (요세푸스가 무시한)이러한 차이점을 조 화 시키고 있는 랍비전승에 관해선 Ginzberg ⅳ : 285를 참조]



 [여호야긴의 승계와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유대인들 왕하 24:6]



  그리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 (Joachimos)을[㈜ 성경에는 여호야긴 (Jehoiachin). 70인역 열왕기하에는 !Iwakeivm (이문에는 !Iwaceivm), 역대하에서는 !Iwconiva\”. 오세프스의 여러 사본들은 고대. 10권. 11:2(229)에서 로 되어 있다.] 유대와 예루살렘의 왕으로 임명하였으며 무력으로 3,000명이나[㈜ 참). 위의 주151. (아마도 요세푸스의 본문엔 aujtou\’(\”그의\”)를 펌가한 이문은 숫자가 요세푸스에 의해 만들어져서 성경에 덧붙여졌음을 가리키고 있는 서기(書記)의 주이다)]되는 사람 들응 바벨론으로 잡아갔다. 그들 중에는 에스겔 선지자가 있었는 데 그때는 소년이었다,[㈜ 참). 겔 1:1] 여호야김의 나이 36세, 그의 통치 11년을 이렇게 마감하였다.[㈜ 왕하 22:36=대하 36:5에 의하면 여호야김은 25세에 왕위를 계승 하여 11년간 통치하였으므로 36세이다.]왕위를 계승받은 여호야긴은 그의 어머니가 예루살렘 태생인 누후스다(Nooste)이었고,[㈜ 성경에는 느후스다(Nehushta), 70인역에는 Nesqav,루키안에는 Neesqavn] 석달  열흘을 통치하였다.[㈜ 역대하는 동일함 : 열왕기하에서는 3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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