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권 제 4장 구다인들이 작업을 방해하는 가운데 성전이 순조롭게 건축된 과정에 대하여

 


 제 4 장



구다인들이 작업을 방해하는 가운데 성전이 순조롭게 건축된 과정에 대하여

                

1. 예루살렘에서 장막절을 지킴



  바벨론을 출발한 후 일곱번째 달이 되자,[㈜ 에스드라1서와 에스라에서는 \’칠윌에\’만을 기록할 뿐이다. 이 양서에는 성전 역사가 고레스 재위 시에 시작되어 다리오 시대까지 이어졌다고 기록된다. 요세푸스는 예수아와 스룹바벨이 고레스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지나침으로써 연대기적인 문제를 단순화한다. 참). 고대. 11권. 4 : 1(78).] 대제사장 예수아와 총감독인 스룹바벨은 백성들을 돌아보고 열정이 식지 않기 위해 전국민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모아 한 집단[㈜ 이 부분은 투키디데스식 표현이다. 참). 투키디데스,8 : 2.]이 되게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 제단을 만들었다. 그곳은 그 이전에 모세의 율법에 따라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단이 세워졌던곳이었다. 그러나 제단 쌓는 일을 하는데 있어 그들은 적대적인모든 인근 국가들의 불만을[㈜ 이 부분도 투키디데스식 표현이다. 참). 투키디데스, 1 : 99.] 사게 되었다. 어쨌든 그들은 그 당시 장막절 절기를 지냈으며 율법 이 명한대로 그대로 실행하였고 제사와 소위 번제를 계속 드렸으며 안식일 제사와 모든 거룩한 절기들을 지켰다. 그들은 7월 초하루부터[㈜ 에스라, 에스드라 1서 대부분의 사본들에서. B 사본은 \’처음부터\’.] 제사를 드리고 서원을 하였다. 그들은 또한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는데 석공들과 목수들에게 큰 액수의 돈을 지불하였으며 데리고 왔던 일꾼들의 생계에 필요한 액수를 지급하였다. 레바논에서 향목을 가져다가 그 통나무들을 한데 묶어서 그것을 뗏목에 급히 실어 요페(Jope)[㈜ 성경에는 욥바, 현 욥파(Joffa). 참). 고대. 9권. 10 :72(208).] 항구에 운반하는 일은 시돈 사람들(Sidonians)이 하기에 즐겁고도 쉬운[㈜ \’편하고 쉬운(hJdu; kai kou\’fon)은 몇몇 에스드라 1서 사본들에 나오는 cavra(기쁨)를 반영한다 : 일하는 사람들에게 공급된 물건 중에 다른 사본들은 karra(마차들), kavrua(견과류), karpouv\”(과일들)로 기록하고 있다. 참). 스 3 : 7, \’그들은 시돈인과 두로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일이었다. 사실 이것은 고레스 왕이 지시했던 것이었으나 실상은 다리오 왕의 지시로 이제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 참). 고대. 11권.4 : 1(75)]



2. 성전의 완성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지 2년 되던 해[㈜ 루키안 에스드라 1서는 \’다리오의\’를 첨가한다. 참). 고대. 11권. 4 : 7(106).] 2월에 성전건축이 착수되었으며[㈜ @suneiceto를 이렇게(맡다) 번역한 것은 고대. 11권. 4 : 7(106)에 함축된 연대기로 인해 지지받지만 고대. 11권. 5 . 7(171)에서 @sunevceinv은 \’계속하다\’라는 뜻인 것 같다. 스 4 : 24, 역사가 \’그쳐서 다리오왕 제 2년까지 이르니라\’ 라는 진술의 관점에서 본문에서는 \’다시 시작하다\’ (resume)로 해석되어야한다. ] 2월 1일에 기초를 세운 후에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성전 건축의 책임을 맡은 자들은 20세에 이른 레위지파들 가운데 몇 사람과 예수와 그의 아들과 형제들, 그리고 아미나다보스(Aminadabos)의 아들이자 유다(Judas)의 형제인갓미엘(Zodmielos)과[㈜ 異文은 졸리미엘로스(Zolimi핀os), 오브도일로스(OHoilos) ;에스라는 갓미엘 : 에스드라일서 A 사본은 카도엘(Kadwhvl), B 사본은 다마디엘(Damadihv;), 기타 사본들은 카드미엘 (Kadmihvl).] 그의 아들이 맡았다. 이들의 손에 성전건축 작업을 책임지고 감독하는 일이 맡겨지자, 이들은 온 열심과 성의를 다해 일을 진전시켜 성전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완성되었다.[㈜ 스 3 : 9, \’갓미엘과 그 아들들과 유다자손과 헤나닷자손과 그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느님의 전 공장을 감독하니라\’ 에스드라1서의 다른 사본들은 본문이 섞여 있다. 요세푸스는 성경에 나온 헤나닷을 아미나다보스로 한다. ] 성전이 완성되자 제사장들은 제사장 복장을 하고 나팔을 들고 있었으며 레위지파들과 아사프(Asaph)의 아들들은 일어나서 다윗이 제일 먼저 하느님을 높이 찬양하는 것을 보여준 것처럼 하느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불렀다.[㈜ 성경의 첨가분.] 그러나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과 가문의 나이든 지도자들은 엄청나게크고 웅장하고 화려했던 그전의 성전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어서 지금 완성한 성전은 초라하여 그전 것보다 미치지 못함을 보고 그들의 지난날의 번영과 성전다운 위엄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가를 생각하고 낙심했다. 이런 생각에 비통함을 자제할 수가 없어서 애통해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백성들은 현재의 모든 상태와 성전 건물에 만족해 하였으며 그전 것에 대한 기억도 하지 않았고 그것과 이것을 비교하면서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기쁨에 넘친 백성들은 새로 지은 성전이 그전에 파괴 되었던 것보다 못하기 때문에 통곡하는 나이든 자들이나 제사장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나팔소리 보다 더 컸다. [㈜ 약간의 부연.]



  3.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이 성전 건축을 돕겠다는 것을 거절함 (에스드라 1서 5 . 66, 스 4 . 1 )



  나팔 소리를 듣자, 유대와 베냐민 지파들과 적대적인 사마리 아인들은[㈜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 대적들은 사마리아에 거주했던 사람들이다. ] 이 시끄러운 소리가 왜 나는지 알고 싶어서 그곳으로 달려왔다. 얼마 후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이 성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자,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가문의 지도자들에게 다가가사 성전을 건축하는데 자신들도 건축에함께 참여 시켜줄 것과 그 건물을 함께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들도 여러분 못지않게 하느님을 경배하며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드립니다. 또한 우리는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Salmanasses)이[㈜ 수정된 형태 사본들은 Sal(a)manasares :성경은 에살핫돈 ;에스드라 1서 A 사본 !Asbasareq , B 사본은 !Asbakafavq. 루키안은 !Acordavn. A사본에 나오는 Asbasareth은 세스바살이라는 이름과 혼돈한데서 기인한 것 같다. 루키안의 Achordan은 Asorchadan(성경은 에살핫돈)이 변한 것이다. 참). C.C. Torrey, \’에스라연구\'(Ezra Studies), p. 169. 요세푸스는 왕하 17장에 나오는 성경의 설명에 일관성 있는 언급을 하기 위해 에살핫돈을 살만에셀로 바꾸었다. ] 구다(Chuthia)와 메대(Media)에서 이곳으로 우리를 데고 왔을때부터 하느님을 섬기는데 열심을 다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이같이 주장하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 그리고 이스라엘 가문의 지도자들은 성전을 함께 건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그것은 왜냐하면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그전에 첫 번째로 고레스 왕이, 그리고 이번에 다리오 왕이[㈜ 다리 오를 언급한 것은 성 경 의 첨 가. 참). 고대. 11권. 4 : 1 (75) 각주 64.] 우리에게만 명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두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에게는 그곳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말했으며 단지 다른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원한다면 함께 성전에 와서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것만은 허락하겠다고 말했다. [㈜ 성경의 첨가.]



4.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을 비난하다 [에스드라 1서 5 : 72, 스4 : 4]



[㈜ 요세푸스는 사건의 연대 순서를 보존하고자 에스라를 차치하고 에스드라 1서를 따라 다음에 나오는 (4 : 6이하) 유대인의 대적들이 아하수에로(Xer-xes)와 아닥사스다(Artaxerxes)에게 올린 고소문에 관한 언급을 지나친다(이것은 스 5 : 3, 에스드라 1서 6 : 3에 다시 나온다). 양서는 다음 절에 사마리아인들의 도움을 유대인이 거절하는 것이 나온다.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바사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왕 다리오가 즉위 할 때까지 의사들에 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해 하였으며.\’]  이 소식을 듣고 구다인(Chuthaeans) -그 당시 사마리아인들을 이렇게 불렀음-들은 몹시 분노하여 수리아(Syria) 총독들을 찾아가 전에 고레스(Cyrus)왕 때와 캄비세스(Cambyses)왕 때처럼 한창 진행중인 유대 인들의 성전 건축을 중단시키고 방해를 놓아 공사가 지연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와같은 시기에 수리아와 베니게(Phoenicia)의[㈜ 에스드라 1서. 에스라는 \’강 저편\’ 참). 고대. 11권. 2 : 1(25).] 총독인 닷드내(Sinsines)[㈜ 성경에는 닷드내 (Tatnai), 참). 고대. 11권. 1 : 3(12) 주 107.]와 스달보스내 (Sarabanes)라는 자가[㈜ 성경에는 \’스달보스내(Shethar-boalai)\’ 참.) 고대. 11권. 1 : 3(12).]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 지도자에게[㈜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 언급된 본문의 지도자들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이다. 참). 고대. 11권. 4 : 5(96).] 누구의 허락을 받고 성전이라기 보다는 요새로 보이는 건물을 짓고 있느냐며 왜 도시 주위로 회랑뿐 아니라 아주 견고한 성벽까지 지었느냐고 물었다. [㈜ \’기둥들\’과 \’강한 벽돌\’에 대한 언급은 요세푸스가 꾸민 설명이다. 에스드라1서에 나오는 관리들은 \’이 성전(문자적으로 집)과 이 지붕과모든 다른 것들\’에 대해 말하며 에스라에서는\’이 성전‥‥과 이 벽\’이 나온다. ] 이에 스룹바벨(Zorobabelos)과 대제사장 예수아(Jesus)는이렇게 대답하였다.[㈜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한 다음 말들은 에스드라1서와 에스라에서 닷드내와 스달보스내가 다리오에 게 쓸 편지에 인용한 것으로 소개된다. ]   \”우리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종입니다. 이 성전은 원래 지극히 영예롭고 덕스러운 우리 선왕 중의 한분이[㈜ 에스드라 1서 \’크고 위대한 왕\’, 에스라 \’큰 왕\’] 하느님을 위해 지어 오랫동안 존속되었었는데, 우리 선조들이 하느님 앞에 불경스러운 죄를 지어 바벨론과 갈대아의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강제로 함락시켰을 때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의 물건들을 약탈하고 불을 질렸으며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바벨론과 바사(Persia)의 왕이셨던 고레스가 성전을 세우라는 칙령을 내려주시고 느부갓네살이 전에 약탈해 갔던 성전 기물들을 스룹바벨과[㈜ 스룹바벨은 에스드라 1서에는 나오지만 에스라에 나오지는 않는다. ] 재무장관 미드르닷(Mithridates)에게[㈜ 어느 책도 이 부분에서 Mithridates를 말하진 않는다. 그러나 참), 에스드라1서 2 : 10, 스 1 ; 8에 관해 고대. 11권. 1 : 3(11)을 보라.] 돌려주시며 예투살렘으로 잘 가지고 가서 성전이 다 완공된 후에 원래대로 그 기물들을[㈜ 문자적으로는 \’그들 자신의 전\’.] 봉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또한 고레스 왕께서는 성전 공사를 신속히 진행시키라고 지시하셨고 세스바살(Sanabasaros)에게[㈜ 성경은 \’세스바살\'(SheshbaBar). 참). 고대. 11권. 1 : 3(11)]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건축하는 것을 보살펴 주라고 서한을 보내셨습니다. 고레스 왕의 서한을 받은 세스바살은 즉시로 예루살렘에 와 성전의 기초를 놓았고 그 때부터 성전 건축공사를 계속해왔지만 지금까지 완공을 하지 못한 것은 적들이 방해공작을 됐기 때문입니다. 총독님께서 이것이 사실인지를 꼭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다리오 왕께 편지를 쓰십시오. 다리오 왕께서 선왕들의 기록들을 살펴보시면 우리가 총독님께 한 말이 조금도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에스드라일 1와 에스라에 따르면 이것은 유대인이 아니라 도(都)들이다. 유대 인온 다리오더러 고레스의 조서를 찾으라고 요구했다. ]



 5. 선지자 학재와 스가랴 (에스드라 1서 6 : 6, 스 5 : 5)



  스룹바벨과 대제사장이 이같이 대답하자 신시네스와 그의 일행들은 자기들이 다리오 왕께 이것에 대해 보고할 때까지는 성전공사를 중단시키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즉시 다리오 왕께 이에 대한 편지를 보냈다.[㈜ 참). 고대. 11권.4 :·4(89).]  한편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대한 다리오 왕의 생각이 혹시 바뀌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몹시 불안해 하였다.[㈜ 유대인의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것은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서 언급되진 않는다. ] 그러나 이 때 선지자 학개(Hggai)와 스가랴(Zechariah)가 나타나서 백성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하며 하느님께서 미리 예언해주셨으니[㈜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 따르면 학개와 스가랴는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의 이름으로 예언한다\’ 라는 말만을 했다. 그들이 유대 인을 격려했다는 설명은 그들에 관해 나와있는 성경 내용에 근거한다. ] 바사인들의 행동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러한 선지자들의 말에 백성들은 신념을 갖게 되어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으로 성전 재건을 위해 힘썼다.



 6. 다리오 왕이 고레스 왕의 서신을 발견하다 [에스드라1서5:23,스 6: 1]



  한편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을 비난할 목적으로 다리오 왕에게 편지를 써 보내기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시를 요새화하고 있으며 성전을 짓고 있는데 그것은 성전이라기 보다는 성채로 보아야 할 정도이며 이는 다리오 왕에게 하등의 이익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들은 성전 건축을 금지시켰던 캄비세스 왕의 편지를 다리오 왕에게 보여주었다.[㈜ 사마리아인들에게서부터 다리오에 이르기까지 캄비세스(Cambyses)의 명령을 언급한 조서는 에스드라일서와 에스라에 나오지 않는다. 요세푸스는 본문에서 비슬람, 미드리닷, 다브엘과 다른 사람들이 아닥사스다에게 보내는 편지를 언급한다(스4 : 7이하) 에스드라 1서와 같이 요세부스는 성경에 따르는 난해한 연대기 -즉 아닥사스다가 다리 오 앞서는-때문에 이를 모방하진 않는다. 참). 고대. 11권. 4 : 4(88) .] 이들의 말을 들은 다리오 왕은 예루살렘 재건이 자기가 통치하는데 있어 안전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던 차에 신시네스의 편지를 받고 이 것에 관한 궁중기륵이 있는지 찾아보도록 명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메대에 있는 엑바타나(Ecbatana)[㈜ 에스드라 1서. 에스라는 악메다(Achmetha) 이곳은 바사왕들의 여름 휴양지이다. ] 요새에서 기록을 찾아내었는데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고레스 왕은 재위 원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라고 명하였다. 왕은 성전의 재단높이와 너비가 각각 60규빗이 되게 하며, 성전의 벽은 잘 다듬어진[㈜ 본문이 약간 불분명함.] 돌과 나라에서 제일 좋은 나무로 짓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이에 소요되는 비용은 모두 국고에서 충당하라고 명했고, 느부갓네살 왕이 성전에서 약탈해 바벨론으로 가져온 성전 기물들을 세스바살의 감독하에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려 보내라고 지시했다. 또한 수리아와 베니게의 총독과[㈜ 요세푸스는 Sanabassar?s(성경에는 세스바살)를 Sarabazanes(성경에는 스달보스내 )로 잘못 본것이 분명하다. 더우기 이것은 닷드내이고 스달보스내가 아니다.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 따르면 그는 수리아와 베니게의 총독이었다. 고대. 11권 4 : 4, 7(89, 104)에 나온다. 참). 다음 주.]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종인 유대인들과 그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는 것을 간섭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서는 Siskin?s(성경에는 닷드내)가 수리아와 베니게(성경에는 강 서편)의 총독이며, Sathrab?zan?s(성경에는 스달보스내)와그들의 동료들이 유대인 총독의 지도로 세운 성전을 멀리한다고 말한다. ]  또한 고레스 왕은 그들에게 유대인들이 성전짓는 것을 도와주고, 그들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거두어 들인 세금으로 유대인들이 제사드릴 때 필요한 수송아지, 양, 새끼염소,[㈜ \’새끼 염소\’는 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 나오지 않는다. ]고운 밀가루, 기름, 포도주 및[㈜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소금\’이 첨가된다. ] 기타 제사장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해 유대인들이 바사와 바사왕을 위해[㈜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왕과 그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고레스 왕은 이 명령들 중 하나라도 어긴 자가 있으면 잡아다가 십자가에 못박고 재산을 모두 빼앗아 국고에 넣으라고 지시하였다.[㈜ 몰수에 대한 설명은 아람어역 에스드라 1서에 나오는 해석에 근거한 것이다. 유대 주석가들은 \’그의 집을 거름 더미가 되게하라\’고 번역한다. 몰수는 스 7 : 26의 아닥사스다의 명령 비슷한 것이었다고 언급된다. ] 왕은 또한 하느님께 만약 누구라도 성천건축을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그 사악한 행위에 대한 응분의 천벌을 내려달라고 기도하였다. \”



 7. 다리오 왕이 총독들에게 유대인을 도우라고 지시하다 [에스드라 1서 6\’34, 스 6 . 12]



  다리오 왕은 고레스에 관한 왕궁기록을 읽고 신시네스와 그의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냈다. \”다리오 왕이 총독[㈜ 수정된 본문 ; 사본들은 \’hipparch\’.] 신시네스와 사라바자네스 및 그의 동료들에게 문안하노라. 내가 고레스 왕에 대한 기록들을 발견하여 베껴서 보내니 거기에 적혀진 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도록 하라, 이제 잘들 있기를 바라노라.\”[㈜ 스6 : 12 \’나 왕 다리오는 조서를 내렸노니 신속히 행할지어다\’.] 이에 신시네스와 그의 동료들은 그 기록을 읽고 다리오 왕의 의도를 알아 차린 후 그대로 시행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 건축의 성업(聖業)을 도왔으며 유대 연장자들과 의회의 지도자들을 도와주었다. 이렇게 하여 성전 건축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들을 통한 하느님의 명령과 고레스와 다리오 왕의[㈜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그리고 바사왕 아닥사스다\’ 물론 요세부스는 연대기적 문제 때문에 이 이름을 뺀다. ] 순종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성어린 노력으로 7년만[㈜ 이 생각은 에스드라 1서 5 : 56 이하에 나오는 설명 을 추정 한데서 나온것이다. \’그가 예루살렘 하느님의 성전에 온 후 두번째 해 두번째 달에‥‥‥요세푸스에 따른다면 성전이 다리오 제 9년에 완성되었기 때문에 이 건물은 7년이 걸렸어야 한다. ] 완공되었는데, 이 때가 다리오 왕 재위 9년[㈜ 다른 본문은 \’ll년\’. 에 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6년\’ 아피. 1권. 21(154)에는 \’고레스왕 2년에 이 기초를 놓고 결국 다리오 2년에 완공되었다. \’참). 이부분의 Dr. Thackeray의 주.] 12월 23일[㈜ 에스드라 1서에서. 에스라에는 3일.] 이었다. -12월을 우리는 아달(Adar)이라고[㈜ 에스드라1서와 에스라는 열 두번째 달인 아달에 관한 설명이 없다. ] 부르는데 마게도냐인들은 디스트로스(Dystros)라고[㈜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으로 대략 3월. 아달월이 디스트로스(Dys-tros)월과 같다는 것은 고대. 4권. 8 : 49(327), 11권. 6\’13, 12권. 10 : 5(412)에 나온다. ] 불렀다 – 한편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과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를 귀환후 옛날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성전이 재건된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100마리의 황소와 200마리의 숫양과 400마리의 어린 양과 12지파를 상징하는 12마리의 숫염소를 각지파의 죄를 속죄하는 의미에서 예물로 드렸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각 문마다 문지기를 두었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성전구내에 빙 둘러 회랑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받침대는 에스드라 1서에 만 나온다. 어떤 곳에도 주랑(柱廊, Porticoes)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



8. 유원절 축제 [에스드라 1서 7 . 15, 스 6 . 22]



  마게도냐 인들이 크산티코스(Xanthikos)라고 부르고 우리는 니산(Nisan)으로 부르는[㈜ 율리우스력으로 대략 4윌. 니산월과 크산티코스(Xanthikos)월이 같은 것은 고대. 1권. 3 : 3(81), 2권. 14 6(311), 3권. 8 : 4(201), 10 : 5(248)에나온다. ] 1월의 무교절(festival of Unlea-vened Bread)이[㈜ 양서,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무교절 곧 바로 앞인)유월절을 먼저 언급한다. ] 가까워 오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조상들의 율법을 따라 무교절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 처자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1월 14일에는 유월절(Pascha)[㈜ 참). 위의 주 116.]제사를 드리고 7일간[㈜ 유월절과 무교절은 한꺼번에 니산월 14-21일의 8일 동안 지낸다. 에스드라1서와 에스라에 나오는 7일 절기는 무교절만을 말한다. 부주의하게도 요세푸스는 이 본문에서 사용하고 있다. 참). 고대. 10권. 4 5(70).] 절기를 지키면서 경비를 아끼지 않고 하느님째 번제를 드렸다. 또한 하느님께서 바사 왕의[㈜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는 \’앗수르의 왕\’. 중세 유대 주석가들은 요세푸스와 같이 바사왕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 마음을 온유하게 해주셔서 다시 조상들의 나라에 돌아와 하느님의 율법을 지킬수 있게 해주신 은혜를 기리는 감사제를 드렸다. 그들은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아주 풍성한 제사를 드리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했는데 그들의 정부형태는 귀족정치(Aristocracy)이며 동시에 과두정치(Oligar-chy)이었다. 즉 대제사장들이 국가 최고 통수권자 역할을 담당했는데 이는 아사모네안가(Asamonaean family)의 후손들이 왕정을 세울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기 전에는 사울과 다윗때부터 532년 6개월 10일동안[㈜ 참). 고대 10권.8 : 4(143), 여기에는 다윗과 유다왕국의 종말사이를 514년 6개월 10일로 본다. 사울왕에게 20년을 더한다면 이 부분의 주를 보라) 534년 6재월 10일이 된다. 나는(Ralph Marcus) 필사가의 실수나 요세푸스 본문의 부주의로 인한 불분명한 것을 때고, 2년이 틀린 것에 대한 설명을 할 마음이 없다. 32년에 22년으로 교정한 어네스티(Ernesti)의 수정은 더 큰 모순을 남는다. ]  왕정(王政)의 형태를 취했다. 왕정 이전에는 사사와 군주(Judges and monarchs)들이 나라를 통치하는 정치 형태였는데 이것은 모세와 여호수아가 사망한 후 500년이상 동안 지속되었다. [㈜ 출애굽과 왕국이 시작한 사이의 간격에 관하여. 참). 고대. 10권. 8 = 5(147).] 이상이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고레스와 다리오 왕때 해방되어 고국에 돌아오게 된 경위이다.



 9. 유대인들이 다리오 왕에게 사마리아인들을 고소하다[㈜ 와 에스라서에 첨가시킨 부분이다. 이 삽입 부분



  유대인들에게 적개심과 시기심을 품고 있던 사마리아인들은 자기들이 바사국 출신이므로 자기들의 부와 힘을 믿고 유대인들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다. 그들은 자기 지역에서 거두어 들인 세금중 일부를 유대 인들에게 제산비로 지불하라는 다리오 왕의 명령을 무시한 채 총독을[㈜ 수정된 본문. 사본들은 \’hipparcht\’. 참). 고대. 11권.4 : 7(104) 각주 106.] 그들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이라면 자기들이 직접 나서거나 혹은 남을 시켜 무엇이든지 발 벗고 나서서 해치울 정도로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고소하기 위해 다리오왕에게 스룹바벨과 다른 네 명의 사신들을 보냈다. 이에 다리오왕은 사마리아인들에 대 한 사신들의 고소를 듣고 사마리아의 총독과 의회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써 보냈다. \”다리오 왕이 사마리아의 총독 타가나스(Taganas)와[㈜ Tattanaiv(성경에는 닷드내)가 와전된 것일 것이다. ] 삼바바스(Sambabas),[㈜ 異文에는 Sambas, Sambalas. 이 것은 사나발레스(Sanaballete\”)가 변한 형태이다. 느헤미야서와 유대나 사마리아 전통에 흔한 사마리아 이름이다. ] 사드라케스(Sadrakes), 부에돈(Buedon)[㈜ 異文은 Buelon,Butelon : \’사드라케스\’와 \’부에돈\’ 이라는 이름은 사드라부자네스(Saqrabouxavnh\”)가 나뉘어진 것으로 보인다(성경에는 스달보스내).] 및 그의 동료들에게[㈜ sumbouvloi\”(모사, 謀士)에 대한 네이버(Naber)의 추측은 거의 필요치 않다. suvndouloi는 칠십인역 에스드라이서 6 ; 13에 나오는 사마리아 지도자들이다. ] 편지하노라. 스룹바벨(Zorobab?los), 아나니아스(Ananias)와 모르드개(Mardochaios)등[㈜ 이 두이름(성경에는 하나냐와 모르드개)은 스룹바벨과 느혜미야와 관련된 지도자들로 성경에 나와 있다(스 2 : 2, 스 7 : 2).] 유대인 사신들이 내게 와서 그대들이 성전 건축을 방해하고 유대인들에게 제사비용을 지불하라는 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고 고소하였노라. 그러므로 이 서신을 받는 즉시로 사마리아에서 거두어 들인 세금의 일부를 국고에서 꺼내 유대인들에게 주어 그들이 바사국과 나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일이 하루도 거르지 않게 하라.\”이것이 다리오 왕의 서신의 주된 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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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권 제 4장 구다인들이 작업을 방해하는 가운데 성전이 순조롭게 건축된 과정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4 장


    구다인들이 작업을 방해하는 가운데 성전이 순조롭게 건축된 과정에 대하여

                    

    1. 예루살렘에서 장막절을 지킴


      바벨론을 출발한 후 일곱번째 달이 되자,[㈜ 에스드라1서와 에스라에서는 ‘칠윌에’만을 기록할 뿐이다. 이 양서에는 성전 역사가 고레스 재위 시에 시작되어 다리오 시대까지 이어졌다고 기록된다. 요세푸스는 예수아와 스룹바벨이 고레스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지나침으로써 연대기적인 문제를 단순화한다. 참). 고대. 11권. 4 : 1(78).] 대제사장 예수아와 총감독인 스룹바벨은 백성들을 돌아보고 열정이 식지 않기 위해 전국민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모아 한 집단[㈜ 이 부분은 투키디데스식 표현이다. 참). 투키디데스,8 : 2.]이 되게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 제단을 만들었다. 그곳은 그 이전에 모세의 율법에 따라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단이 세워졌던곳이었다. 그러나 제단 쌓는 일을 하는데 있어 그들은 적대적인모든 인근 국가들의 불만을[㈜ 이 부분도 투키디데스식 표현이다. 참). 투키디데스, 1 : 99.] 사게 되었다. 어쨌든 그들은 그 당시 장막절 절기를 지냈으며 율법 이 명한대로 그대로 실행하였고 제사와 소위 번제를 계속 드렸으며 안식일 제사와 모든 거룩한 절기들을 지켰다. 그들은 7월 초하루부터[㈜ 에스라, 에스드라 1서 대부분의 사본들에서. B 사본은 ‘처음부터’.] 제사를 드리고 서원을 하였다. 그들은 또한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는데 석공들과 목수들에게 큰 액수의 돈을 지불하였으며 데리고 왔던 일꾼들의 생계에 필요한 액수를 지급하였다. 레바논에서 향목을 가져다가 그 통나무들을 한데 묶어서 그것을 뗏목에 급히 실어 요페(Jope)[㈜ 성경에는 욥바, 현 욥파(Joffa). 참). 고대. 9권. 10 :72(208).] 항구에 운반하는 일은 시돈 사람들(Sidonians)이 하기에 즐겁고도 쉬운[㈜ ‘편하고 쉬운(hJdu; kai kou’fon)은 몇몇 에스드라 1서 사본들에 나오는 cavra(기쁨)를 반영한다 : 일하는 사람들에게 공급된 물건 중에 다른 사본들은 karra(마차들), kavrua(견과류), karpouv”(과일들)로 기록하고 있다. 참). 스 3 : 7, ‘그들은 시돈인과 두로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일이었다. 사실 이것은 고레스 왕이 지시했던 것이었으나 실상은 다리오 왕의 지시로 이제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 참). 고대. 11권.4 : 1(75)]


    2. 성전의 완성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지 2년 되던 해[㈜ 루키안 에스드라 1서는 ‘다리오의’를 첨가한다. 참). 고대. 11권. 4 : 7(106).] 2월에 성전건축이 착수되었으며[㈜ @suneiceto를 이렇게(맡다) 번역한 것은 고대. 11권. 4 : 7(106)에 함축된 연대기로 인해 지지받지만 고대. 11권. 5 . 7(171)에서 @sunevceinv은 ‘계속하다’라는 뜻인 것 같다. 스 4 : 24, 역사가 ‘그쳐서 다리오왕 제 2년까지 이르니라’ 라는 진술의 관점에서 본문에서는 ‘다시 시작하다’ (resume)로 해석되어야한다. ] 2월 1일에 기초를 세운 후에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성전 건축의 책임을 맡은 자들은 20세에 이른 레위지파들 가운데 몇 사람과 예수와 그의 아들과 형제들, 그리고 아미나다보스(Aminadabos)의 아들이자 유다(Judas)의 형제인갓미엘(Zodmielos)과[㈜ 異文은 졸리미엘로스(Zolimi핀os), 오브도일로스(OHoilos) ;에스라는 갓미엘 : 에스드라일서 A 사본은 카도엘(Kadwhvl), B 사본은 다마디엘(Damadihv;), 기타 사본들은 카드미엘 (Kadmihvl).] 그의 아들이 맡았다. 이들의 손에 성전건축 작업을 책임지고 감독하는 일이 맡겨지자, 이들은 온 열심과 성의를 다해 일을 진전시켜 성전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완성되었다.[㈜ 스 3 : 9, ‘갓미엘과 그 아들들과 유다자손과 헤나닷자손과 그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느님의 전 공장을 감독하니라’ 에스드라1서의 다른 사본들은 본문이 섞여 있다. 요세푸스는 성경에 나온 헤나닷을 아미나다보스로 한다. ] 성전이 완성되자 제사장들은 제사장 복장을 하고 나팔을 들고 있었으며 레위지파들과 아사프(Asaph)의 아들들은 일어나서 다윗이 제일 먼저 하느님을 높이 찬양하는 것을 보여준 것처럼 하느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불렀다.[㈜ 성경의 첨가분.] 그러나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과 가문의 나이든 지도자들은 엄청나게크고 웅장하고 화려했던 그전의 성전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어서 지금 완성한 성전은 초라하여 그전 것보다 미치지 못함을 보고 그들의 지난날의 번영과 성전다운 위엄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가를 생각하고 낙심했다. 이런 생각에 비통함을 자제할 수가 없어서 애통해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백성들은 현재의 모든 상태와 성전 건물에 만족해 하였으며 그전 것에 대한 기억도 하지 않았고 그것과 이것을 비교하면서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기쁨에 넘친 백성들은 새로 지은 성전이 그전에 파괴 되었던 것보다 못하기 때문에 통곡하는 나이든 자들이나 제사장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나팔소리 보다 더 컸다. [㈜ 약간의 부연.]


      3.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이 성전 건축을 돕겠다는 것을 거절함 (에스드라 1서 5 . 66, 스 4 . 1 )


      나팔 소리를 듣자, 유대와 베냐민 지파들과 적대적인 사마리 아인들은[㈜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 대적들은 사마리아에 거주했던 사람들이다. ] 이 시끄러운 소리가 왜 나는지 알고 싶어서 그곳으로 달려왔다. 얼마 후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이 성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자,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가문의 지도자들에게 다가가사 성전을 건축하는데 자신들도 건축에함께 참여 시켜줄 것과 그 건물을 함께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들도 여러분 못지않게 하느님을 경배하며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드립니다. 또한 우리는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Salmanasses)이[㈜ 수정된 형태 사본들은 Sal(a)manasares :성경은 에살핫돈 ;에스드라 1서 A 사본 !Asbasareq , B 사본은 !Asbakafavq. 루키안은 !Acordavn. A사본에 나오는 Asbasareth은 세스바살이라는 이름과 혼돈한데서 기인한 것 같다. 루키안의 Achordan은 Asorchadan(성경은 에살핫돈)이 변한 것이다. 참). C.C. Torrey, ‘에스라연구'(Ezra Studies), p. 169. 요세푸스는 왕하 17장에 나오는 성경의 설명에 일관성 있는 언급을 하기 위해 에살핫돈을 살만에셀로 바꾸었다. ] 구다(Chuthia)와 메대(Media)에서 이곳으로 우리를 데고 왔을때부터 하느님을 섬기는데 열심을 다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이같이 주장하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 그리고 이스라엘 가문의 지도자들은 성전을 함께 건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그것은 왜냐하면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그전에 첫 번째로 고레스 왕이, 그리고 이번에 다리오 왕이[㈜ 다리 오를 언급한 것은 성 경 의 첨 가. 참). 고대. 11권. 4 : 1 (75) 각주 64.] 우리에게만 명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두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에게는 그곳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말했으며 단지 다른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원한다면 함께 성전에 와서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것만은 허락하겠다고 말했다. [㈜ 성경의 첨가.]


    4.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을 비난하다 [에스드라 1서 5 : 72, 스4 : 4]


    [㈜ 요세푸스는 사건의 연대 순서를 보존하고자 에스라를 차치하고 에스드라 1서를 따라 다음에 나오는 (4 : 6이하) 유대인의 대적들이 아하수에로(Xer-xes)와 아닥사스다(Artaxerxes)에게 올린 고소문에 관한 언급을 지나친다(이것은 스 5 : 3, 에스드라 1서 6 : 3에 다시 나온다). 양서는 다음 절에 사마리아인들의 도움을 유대인이 거절하는 것이 나온다.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바사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왕 다리오가 즉위 할 때까지 의사들에 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해 하였으며.’]  이 소식을 듣고 구다인(Chuthaeans) -그 당시 사마리아인들을 이렇게 불렀음-들은 몹시 분노하여 수리아(Syria) 총독들을 찾아가 전에 고레스(Cyrus)왕 때와 캄비세스(Cambyses)왕 때처럼 한창 진행중인 유대 인들의 성전 건축을 중단시키고 방해를 놓아 공사가 지연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와같은 시기에 수리아와 베니게(Phoenicia)의[㈜ 에스드라 1서. 에스라는 ‘강 저편’ 참). 고대. 11권. 2 : 1(25).] 총독인 닷드내(Sinsines)[㈜ 성경에는 닷드내 (Tatnai), 참). 고대. 11권. 1 : 3(12) 주 107.]와 스달보스내 (Sarabanes)라는 자가[㈜ 성경에는 ‘스달보스내(Shethar-boalai)’ 참.) 고대. 11권. 1 : 3(12).]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 지도자에게[㈜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 언급된 본문의 지도자들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이다. 참). 고대. 11권. 4 : 5(96).] 누구의 허락을 받고 성전이라기 보다는 요새로 보이는 건물을 짓고 있느냐며 왜 도시 주위로 회랑뿐 아니라 아주 견고한 성벽까지 지었느냐고 물었다. [㈜ ‘기둥들’과 ‘강한 벽돌’에 대한 언급은 요세푸스가 꾸민 설명이다. 에스드라1서에 나오는 관리들은 ‘이 성전(문자적으로 집)과 이 지붕과모든 다른 것들’에 대해 말하며 에스라에서는’이 성전‥‥과 이 벽’이 나온다. ] 이에 스룹바벨(Zorobabelos)과 대제사장 예수아(Jesus)는이렇게 대답하였다.[㈜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한 다음 말들은 에스드라1서와 에스라에서 닷드내와 스달보스내가 다리오에 게 쓸 편지에 인용한 것으로 소개된다. ]   “우리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종입니다. 이 성전은 원래 지극히 영예롭고 덕스러운 우리 선왕 중의 한분이[㈜ 에스드라 1서 ‘크고 위대한 왕’, 에스라 ‘큰 왕’] 하느님을 위해 지어 오랫동안 존속되었었는데, 우리 선조들이 하느님 앞에 불경스러운 죄를 지어 바벨론과 갈대아의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강제로 함락시켰을 때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의 물건들을 약탈하고 불을 질렸으며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바벨론과 바사(Persia)의 왕이셨던 고레스가 성전을 세우라는 칙령을 내려주시고 느부갓네살이 전에 약탈해 갔던 성전 기물들을 스룹바벨과[㈜ 스룹바벨은 에스드라 1서에는 나오지만 에스라에 나오지는 않는다. ] 재무장관 미드르닷(Mithridates)에게[㈜ 어느 책도 이 부분에서 Mithridates를 말하진 않는다. 그러나 참), 에스드라1서 2 : 10, 스 1 ; 8에 관해 고대. 11권. 1 : 3(11)을 보라.] 돌려주시며 예투살렘으로 잘 가지고 가서 성전이 다 완공된 후에 원래대로 그 기물들을[㈜ 문자적으로는 ‘그들 자신의 전’.] 봉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또한 고레스 왕께서는 성전 공사를 신속히 진행시키라고 지시하셨고 세스바살(Sanabasaros)에게[㈜ 성경은 ‘세스바살'(SheshbaBar). 참). 고대. 11권. 1 : 3(11)]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건축하는 것을 보살펴 주라고 서한을 보내셨습니다. 고레스 왕의 서한을 받은 세스바살은 즉시로 예루살렘에 와 성전의 기초를 놓았고 그 때부터 성전 건축공사를 계속해왔지만 지금까지 완공을 하지 못한 것은 적들이 방해공작을 됐기 때문입니다. 총독님께서 이것이 사실인지를 꼭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다리오 왕께 편지를 쓰십시오. 다리오 왕께서 선왕들의 기록들을 살펴보시면 우리가 총독님께 한 말이 조금도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에스드라일 1와 에스라에 따르면 이것은 유대인이 아니라 도(都)들이다. 유대 인온 다리오더러 고레스의 조서를 찾으라고 요구했다. ]


     5. 선지자 학재와 스가랴 (에스드라 1서 6 : 6, 스 5 : 5)


      스룹바벨과 대제사장이 이같이 대답하자 신시네스와 그의 일행들은 자기들이 다리오 왕께 이것에 대해 보고할 때까지는 성전공사를 중단시키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즉시 다리오 왕께 이에 대한 편지를 보냈다.[㈜ 참). 고대. 11권.4 :·4(89).]  한편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대한 다리오 왕의 생각이 혹시 바뀌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몹시 불안해 하였다.[㈜ 유대인의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것은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서 언급되진 않는다. ] 그러나 이 때 선지자 학개(Hggai)와 스가랴(Zechariah)가 나타나서 백성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하며 하느님께서 미리 예언해주셨으니[㈜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 따르면 학개와 스가랴는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의 이름으로 예언한다’ 라는 말만을 했다. 그들이 유대 인을 격려했다는 설명은 그들에 관해 나와있는 성경 내용에 근거한다. ] 바사인들의 행동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러한 선지자들의 말에 백성들은 신념을 갖게 되어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으로 성전 재건을 위해 힘썼다.


     6. 다리오 왕이 고레스 왕의 서신을 발견하다 [에스드라1서5:23,스 6: 1]


      한편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을 비난할 목적으로 다리오 왕에게 편지를 써 보내기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시를 요새화하고 있으며 성전을 짓고 있는데 그것은 성전이라기 보다는 성채로 보아야 할 정도이며 이는 다리오 왕에게 하등의 이익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들은 성전 건축을 금지시켰던 캄비세스 왕의 편지를 다리오 왕에게 보여주었다.[㈜ 사마리아인들에게서부터 다리오에 이르기까지 캄비세스(Cambyses)의 명령을 언급한 조서는 에스드라일서와 에스라에 나오지 않는다. 요세푸스는 본문에서 비슬람, 미드리닷, 다브엘과 다른 사람들이 아닥사스다에게 보내는 편지를 언급한다(스4 : 7이하) 에스드라 1서와 같이 요세부스는 성경에 따르는 난해한 연대기 -즉 아닥사스다가 다리 오 앞서는-때문에 이를 모방하진 않는다. 참). 고대. 11권. 4 : 4(88) .] 이들의 말을 들은 다리오 왕은 예루살렘 재건이 자기가 통치하는데 있어 안전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던 차에 신시네스의 편지를 받고 이 것에 관한 궁중기륵이 있는지 찾아보도록 명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메대에 있는 엑바타나(Ecbatana)[㈜ 에스드라 1서. 에스라는 악메다(Achmetha) 이곳은 바사왕들의 여름 휴양지이다. ] 요새에서 기록을 찾아내었는데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고레스 왕은 재위 원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라고 명하였다. 왕은 성전의 재단높이와 너비가 각각 60규빗이 되게 하며, 성전의 벽은 잘 다듬어진[㈜ 본문이 약간 불분명함.] 돌과 나라에서 제일 좋은 나무로 짓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이에 소요되는 비용은 모두 국고에서 충당하라고 명했고, 느부갓네살 왕이 성전에서 약탈해 바벨론으로 가져온 성전 기물들을 세스바살의 감독하에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려 보내라고 지시했다. 또한 수리아와 베니게의 총독과[㈜ 요세푸스는 Sanabassar?s(성경에는 세스바살)를 Sarabazanes(성경에는 스달보스내 )로 잘못 본것이 분명하다. 더우기 이것은 닷드내이고 스달보스내가 아니다.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 따르면 그는 수리아와 베니게의 총독이었다. 고대. 11권 4 : 4, 7(89, 104)에 나온다. 참). 다음 주.]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종인 유대인들과 그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는 것을 간섭하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서는 Siskin?s(성경에는 닷드내)가 수리아와 베니게(성경에는 강 서편)의 총독이며, Sathrab?zan?s(성경에는 스달보스내)와그들의 동료들이 유대인 총독의 지도로 세운 성전을 멀리한다고 말한다. ]  또한 고레스 왕은 그들에게 유대인들이 성전짓는 것을 도와주고, 그들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거두어 들인 세금으로 유대인들이 제사드릴 때 필요한 수송아지, 양, 새끼염소,[㈜ ‘새끼 염소’는 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 나오지 않는다. ]고운 밀가루, 기름, 포도주 및[㈜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소금’이 첨가된다. ] 기타 제사장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해 유대인들이 바사와 바사왕을 위해[㈜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왕과 그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고레스 왕은 이 명령들 중 하나라도 어긴 자가 있으면 잡아다가 십자가에 못박고 재산을 모두 빼앗아 국고에 넣으라고 지시하였다.[㈜ 몰수에 대한 설명은 아람어역 에스드라 1서에 나오는 해석에 근거한 것이다. 유대 주석가들은 ‘그의 집을 거름 더미가 되게하라’고 번역한다. 몰수는 스 7 : 26의 아닥사스다의 명령 비슷한 것이었다고 언급된다. ] 왕은 또한 하느님께 만약 누구라도 성천건축을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그 사악한 행위에 대한 응분의 천벌을 내려달라고 기도하였다. “


     7. 다리오 왕이 총독들에게 유대인을 도우라고 지시하다 [에스드라 1서 6’34, 스 6 . 12]


      다리오 왕은 고레스에 관한 왕궁기록을 읽고 신시네스와 그의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냈다. “다리오 왕이 총독[㈜ 수정된 본문 ; 사본들은 ‘hipparch’.] 신시네스와 사라바자네스 및 그의 동료들에게 문안하노라. 내가 고레스 왕에 대한 기록들을 발견하여 베껴서 보내니 거기에 적혀진 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도록 하라, 이제 잘들 있기를 바라노라.”[㈜ 스6 : 12 ‘나 왕 다리오는 조서를 내렸노니 신속히 행할지어다’.] 이에 신시네스와 그의 동료들은 그 기록을 읽고 다리오 왕의 의도를 알아 차린 후 그대로 시행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 건축의 성업(聖業)을 도왔으며 유대 연장자들과 의회의 지도자들을 도와주었다. 이렇게 하여 성전 건축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들을 통한 하느님의 명령과 고레스와 다리오 왕의[㈜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그리고 바사왕 아닥사스다’ 물론 요세부스는 연대기적 문제 때문에 이 이름을 뺀다. ] 순종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성어린 노력으로 7년만[㈜ 이 생각은 에스드라 1서 5 : 56 이하에 나오는 설명 을 추정 한데서 나온것이다. ‘그가 예루살렘 하느님의 성전에 온 후 두번째 해 두번째 달에‥‥‥요세푸스에 따른다면 성전이 다리오 제 9년에 완성되었기 때문에 이 건물은 7년이 걸렸어야 한다. ] 완공되었는데, 이 때가 다리오 왕 재위 9년[㈜ 다른 본문은 ‘ll년’. 에 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6년’ 아피. 1권. 21(154)에는 ‘고레스왕 2년에 이 기초를 놓고 결국 다리오 2년에 완공되었다. ‘참). 이부분의 Dr. Thackeray의 주.] 12월 23일[㈜ 에스드라 1서에서. 에스라에는 3일.] 이었다. -12월을 우리는 아달(Adar)이라고[㈜ 에스드라1서와 에스라는 열 두번째 달인 아달에 관한 설명이 없다. ] 부르는데 마게도냐인들은 디스트로스(Dystros)라고[㈜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으로 대략 3월. 아달월이 디스트로스(Dys-tros)월과 같다는 것은 고대. 4권. 8 : 49(327), 11권. 6’13, 12권. 10 : 5(412)에 나온다. ] 불렀다 – 한편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과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를 귀환후 옛날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성전이 재건된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100마리의 황소와 200마리의 숫양과 400마리의 어린 양과 12지파를 상징하는 12마리의 숫염소를 각지파의 죄를 속죄하는 의미에서 예물로 드렸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각 문마다 문지기를 두었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성전구내에 빙 둘러 회랑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받침대는 에스드라 1서에 만 나온다. 어떤 곳에도 주랑(柱廊, Porticoes)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


    8. 유원절 축제 [에스드라 1서 7 . 15, 스 6 . 22]


      마게도냐 인들이 크산티코스(Xanthikos)라고 부르고 우리는 니산(Nisan)으로 부르는[㈜ 율리우스력으로 대략 4윌. 니산월과 크산티코스(Xanthikos)월이 같은 것은 고대. 1권. 3 : 3(81), 2권. 14 6(311), 3권. 8 : 4(201), 10 : 5(248)에나온다. ] 1월의 무교절(festival of Unlea-vened Bread)이[㈜ 양서,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는 (무교절 곧 바로 앞인)유월절을 먼저 언급한다. ] 가까워 오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조상들의 율법을 따라 무교절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 처자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1월 14일에는 유월절(Pascha)[㈜ 참). 위의 주 116.]제사를 드리고 7일간[㈜ 유월절과 무교절은 한꺼번에 니산월 14-21일의 8일 동안 지낸다. 에스드라1서와 에스라에 나오는 7일 절기는 무교절만을 말한다. 부주의하게도 요세푸스는 이 본문에서 사용하고 있다. 참). 고대. 10권. 4 5(70).] 절기를 지키면서 경비를 아끼지 않고 하느님째 번제를 드렸다. 또한 하느님께서 바사 왕의[㈜ 에스드라 1서와 에스라에는 ‘앗수르의 왕’. 중세 유대 주석가들은 요세푸스와 같이 바사왕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 마음을 온유하게 해주셔서 다시 조상들의 나라에 돌아와 하느님의 율법을 지킬수 있게 해주신 은혜를 기리는 감사제를 드렸다. 그들은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아주 풍성한 제사를 드리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했는데 그들의 정부형태는 귀족정치(Aristocracy)이며 동시에 과두정치(Oligar-chy)이었다. 즉 대제사장들이 국가 최고 통수권자 역할을 담당했는데 이는 아사모네안가(Asamonaean family)의 후손들이 왕정을 세울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기 전에는 사울과 다윗때부터 532년 6개월 10일동안[㈜ 참). 고대 10권.8 : 4(143), 여기에는 다윗과 유다왕국의 종말사이를 514년 6개월 10일로 본다. 사울왕에게 20년을 더한다면 이 부분의 주를 보라) 534년 6재월 10일이 된다. 나는(Ralph Marcus) 필사가의 실수나 요세푸스 본문의 부주의로 인한 불분명한 것을 때고, 2년이 틀린 것에 대한 설명을 할 마음이 없다. 32년에 22년으로 교정한 어네스티(Ernesti)의 수정은 더 큰 모순을 남는다. ]  왕정(王政)의 형태를 취했다. 왕정 이전에는 사사와 군주(Judges and monarchs)들이 나라를 통치하는 정치 형태였는데 이것은 모세와 여호수아가 사망한 후 500년이상 동안 지속되었다. [㈜ 출애굽과 왕국이 시작한 사이의 간격에 관하여. 참). 고대. 10권. 8 = 5(147).] 이상이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고레스와 다리오 왕때 해방되어 고국에 돌아오게 된 경위이다.


     9. 유대인들이 다리오 왕에게 사마리아인들을 고소하다[㈜ 와 에스라서에 첨가시킨 부분이다. 이 삽입 부분


      유대인들에게 적개심과 시기심을 품고 있던 사마리아인들은 자기들이 바사국 출신이므로 자기들의 부와 힘을 믿고 유대인들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다. 그들은 자기 지역에서 거두어 들인 세금중 일부를 유대 인들에게 제산비로 지불하라는 다리오 왕의 명령을 무시한 채 총독을[㈜ 수정된 본문. 사본들은 ‘hipparcht’. 참). 고대. 11권.4 : 7(104) 각주 106.] 그들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이라면 자기들이 직접 나서거나 혹은 남을 시켜 무엇이든지 발 벗고 나서서 해치울 정도로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고소하기 위해 다리오왕에게 스룹바벨과 다른 네 명의 사신들을 보냈다. 이에 다리오왕은 사마리아인들에 대 한 사신들의 고소를 듣고 사마리아의 총독과 의회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써 보냈다. “다리오 왕이 사마리아의 총독 타가나스(Taganas)와[㈜ Tattanaiv(성경에는 닷드내)가 와전된 것일 것이다. ] 삼바바스(Sambabas),[㈜ 異文에는 Sambas, Sambalas. 이 것은 사나발레스(Sanaballete”)가 변한 형태이다. 느헤미야서와 유대나 사마리아 전통에 흔한 사마리아 이름이다. ] 사드라케스(Sadrakes), 부에돈(Buedon)[㈜ 異文은 Buelon,Butelon : ‘사드라케스’와 ‘부에돈’ 이라는 이름은 사드라부자네스(Saqrabouxavnh”)가 나뉘어진 것으로 보인다(성경에는 스달보스내).] 및 그의 동료들에게[㈜ sumbouvloi”(모사, 謀士)에 대한 네이버(Naber)의 추측은 거의 필요치 않다. suvndouloi는 칠십인역 에스드라이서 6 ; 13에 나오는 사마리아 지도자들이다. ] 편지하노라. 스룹바벨(Zorobab?los), 아나니아스(Ananias)와 모르드개(Mardochaios)등[㈜ 이 두이름(성경에는 하나냐와 모르드개)은 스룹바벨과 느혜미야와 관련된 지도자들로 성경에 나와 있다(스 2 : 2, 스 7 : 2).] 유대인 사신들이 내게 와서 그대들이 성전 건축을 방해하고 유대인들에게 제사비용을 지불하라는 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고 고소하였노라. 그러므로 이 서신을 받는 즉시로 사마리아에서 거두어 들인 세금의 일부를 국고에서 꺼내 유대인들에게 주어 그들이 바사국과 나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일이 하루도 거르지 않게 하라.”이것이 다리오 왕의 서신의 주된 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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