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요한이 그의 형제 예수아를 성전에서 어떻게 살해 했는지, 그리고 바고세스가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혔는지, 산발랏은 무슨 행동을 하였는지에 대하여
1. 대제사장인 요나단과 바고세스 [느12:10]
[㈜ 요세푸스는 5:9(183)에 했던 팔레스틴에 있는 사건들의 이야기를 여기서 다시 시작한다.]
대제사장인 엘리아십(Eliasib)이[㈜ 성경에는 엘리야십(Eliashib ; \’Elyasib), 70인역은 !El(e)isouvb ; 제사 장직에 대한 그의 계승은 5 :5(158)에 나온다.]죽은 후, 그의 아들 요야다(Jodas ; Judas)가[㈜ 성경에는 요야다(Joiada ;Yoyada), 70인역은 !Iw(a)sav.] 대제사장 직에 올랐다. 그런데 요야다가 죽게 되자 그의 아들인 요나단(joannes ;Johanan)이[㈜ 성경에는 요하난(Johanan : Yohanan), 70인역은 !wanavn(느 12:11 에는 요나단(Jonathan : Yonathan)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70인역은 !Iwnaqavn)] 대제사장 직을 맡게 되었다. 아닥사스다 Ⅱ세의[㈜ 즉. 아닥사스다 Ⅱ, 므네몬(Artaxerxes Ⅱ. Mnemon. 주전 404-359) : 그러ㅗ나 만약 \”두번째\”(a#llou)단어가 삽입된 것처럼 괄호 안에 있 다면, 니이제(Niese)와 몇몇 다른 학자들이 제안한 것처럼 왕은 아닥 사스다 Ⅲ세, 오쿠스(artaxerxes Ⅲ. Ochus, 주전 359-338)일 것이 다. 여기에 인용된] 군대 장관인 바고세스(Bagoses ; Bagoses)[㈜ 다른 본문에는 바고아스(Bagoas : Diodorus Siculus에 그렇게 나옴) ; 엘레파티네(Elephantin?)의 아랍어 파피루스들에는 이 평범한 바사 이 름은 Bag?(H)i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히브 리 본문에는 Bigwai로 되어있다. 그 바사어의 기원은 유스티(f. Justi), \’Iranisches Namenbuch\’, pp.59이하에 설명하고 있다. 즉 첫부분에 하 나님을 나타내는 Baga와 같이 이름의 약어로 설명한다. Bagoses에 대 한 것은 주 329를 보라.] 성전을 더럽히고, 유대인들에게 매일 번제를 드리기 전에 숫양 한 마리당 50드라크마 씩을 공금에서 지불해야 된다고 공물을 부과하게 된 것은 대제사장인 요나단을 통해서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요나단의 동생 예수아(Jesus ; Jesus)는[㈜ 히브리어 Y?s?a가 헬라화한 형태.] 바고세스의 친구였는데 바고세스는 예수아에게 형 요나단으로부터 대제사장직을 빼앗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바고세스의 후원을 등에 업고 예수아는 성전에서 요나단과 싸움을 벌여 요나단을 분노하게 하여 결국 요나단의 손에 죽고 말았다. 요나단이 대제사장으로서 자기 동생을 죽이는 죄를 범한 것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사이에서도 그처럼 잔인하고 불경스러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없었기에 이 일은 더욱 끔찍한 일이었다.[㈜ 본문이 확실치 않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일을 그대로 지나쳐 버리지 않으셨다. 이 일로[㈜ 수정된 본문 ; 사본들 \”바로 이것으로\”.] 인해 백성들은 바사인들에 의해 포로가 되었고 성전은 더럽혀졌다. 아닥사스다 왕의 군대 장관인 바고세스는 유대의 대제사장인 요나단이 성전에서 자기 동생 예수아를 살해했다는 것을 알고는 즉시 유대로 올라가서 분을 내며 이같이 소리쳤다. \”네 놈들은 어떻게 감히 성전에서 살인을 범할 수 있는가!\” 그 후 그가 성전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유대인들이 말리자 그는 이렇게 울부짖었다. \’내가 성전에서 살인한 자보다[㈜ 다른 본문에 나오는 \”살해했던 그\”(he who slew)는 어떤 학자들이 지 지하는 것이다. 이는 바고세스의 풍자적인 표현을 놓친 어떤 서기관에 의해 소개되었던 것이다. 유대인의 율법에 의하면 시체는 성전을 불경 스럽게 한다.] 더 깨끗하지 못하단 말이냐?\” 그는 이렇게 소리 친 후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 바고세스는 이것을 구실로 삼았고 유대인들을 예수아의 살해 사건을 이용하여 7년 동안이나 괴롭혔다.
2. 대제사장의 동생인 므낫세와 사마리아인들 [느 13 : 28]
요나단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야두아(jaddus ; jadd-us)가[㈜ 다른 본문에는 요아두스(Joaddus) : 성경에는 야두아(Jaddua :Yaddua), 70인역은 !Iadaovu.]가 대제사장직에 올랐다. 그에게는 또한 므낫세(Mana-sses ; Manasseh)라는[㈜ 히브리어 Menasseh(성경에는 므낫세, Manasseh)의 헬라화한 형태 ; 성경은 이와 관련하여 그런 사람을 언급하지 않는다.] 동생이 있었다. 마지막 왕 다리오(Darius)가[㈜ 다리오 Ⅲ세 코도마나누스(Darius Ⅲ. codomannus, 주전 331-338). 성경(느 12 :22)은 야두아를 다리오 Ⅲ세와 동시대 인으로 만든 기간 에 요세푸스와 일치한다. 다리오Ⅲ세는 \”바사인 다리오\”(Darius the Persian)으로 불려졌다.] 사마리아에 총독으로 보낸 산발랏(Sanaballetes; Sanballat)이라는[㈜ 성경에는 산발랏(Sanballat ; Saneballiat),70인역에는 Sanabllavt . 본문에서 언급된 느헤미야서의 산발랏과 엘레판티네 파피루스에 나오 는 산발랏과의 관련에 대해서는 부록을 보라. 성경에 의하면(느13 :28)본문에 나오는 것을 산발랏의 딸과 결혼한 \’요야다의 아들들\’중의 하나였다(즉 요야다의 아들, 요하난의 형이지 요세푸스가 말한 것처럼 요하난의 아들 야두아의두아의 형은 아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용법에 의하면 \’아들 중의 하 나\’는 일반적으로 \’손자\’ 또는 \’자손\’을 의미한다. 이런 경우 요세푸스 는 산발랏의 사위 야두아(Jaddua)의 형이라고 한 성경과 일치하고 있 다.] 사람이 있었다. 그는 구다(Cuthaean) 출생이었으나 족보를 따져 보면 사마리아인도 되었다. 산발랏은\’예루살렘이 유명한 도시이며 예루살렘의 왕들의 앗수스와 코엘레 – 수리아(Coele-Syria)의 주민들에게 큰 고민거리였다는 것을 알고 그의 딸인 니카소(Nikaso ; Nicaso)를[㈜ 라이나흐(T. Reinach)는 이 부분이 그의 주에서 요세푸스가 사마리아 의 바사 총독에게 \’전혀 그럴것 같지 않은\'(contre toute vraisemblance)헬라어 이름을 가진 딸의 칭호를 붙여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니카소(Nikaso)란 이름은 전혀 헬라어가 아니고 셈어 (Semitic), 즉 아람어 nikesa, \’희생하다\’라는 뜻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 는 이름이 헬라화된 형태이다.] 기꺼이 므낫세에게 아내로 주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정략 결혼이 유대국가로 인해 자기가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증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